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역전의기량 Jan 13. 2021

익숙해서 편안한 이름 '불행'

어릴 적 나와 다시 만나다.

 






남편과 결혼한 지 9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10년 전  친구의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남편은 유방암 수술을 하고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시작한 자취생활에 정적을 깨워주는 빛 같은 존재였다. 서울 어느 한 지역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는데 둘이  공통점이라고는 술을 잘 먹는다는 것이었다.   대낮에 만나서 하루 종일 술을 7병을 마셨으니까......  

장소를 옮겨가며 마신 술병은 어느새 7병이 되었고  긴 시간 동안  처음 만난 것 치고는 진솔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무렵 참 많이도 소개팅을 했었는데  내 종착지는 남편이었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난다고 했다. 장남 장녀의 만남  둘 다 자취생끼리의 만남이라  통했는지  닮기도 많이 닮았었다.  술을 먹으면서 남편은  내가 아침 먹고 다닌다는 소리에 내 손을 잡으며  " 자기는 아침 먹고 다니는 사람이 너무 좋다며" 얘기했는데  밖에서 사 먹는 아침이라는 소리를 못 들은 남편은  그날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기도 했다.


남편의 집은 인천이고 나의 집은 서울인 것도 거리상 쉽지 않은 만남이지만 나는 그때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는 회사를 다녔고  남편은 교대 업무라  주간 업무를 하는 사람하고는  스케줄이 잘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만나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서로에 관해 잘 알아가는 시간이  많아질 수 록  가끔은 연락이 뜸 할 때도 있었다. 

 

한 번은 남편은 교대업무를 하는 사람이라  쉬는 날이면 하루 종일 잠을 자곤 했는데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자는 날도 있고 일이 있어  외부에 나가는 날도 있었는데  나한테 말없이 움직이는 날이면 안 해도 되는 전화를 20통 이상 하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같이 있을 법한 사람에게 전화해서 연락 유무를  확인하곤 했다.  그것도 모자라 한 번씩 싸우기라도 하면   하루 종일 전전긍긍하는 날도 많았는데......


대체 왜 그래야만 했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남편을 더욱더 옮아 매고 있었던 것이다.  불안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지나 차게 매달리게 되면  상대방은 질리게 된다.    반대로 상대가 언젠가는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작용하게 되면  상대방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대하여 관계가 멀어지게 되기도 한다.  속마음과는 달리 매번 말을 다르게 내뱉는 나 때문에 남편과 많이 싸우기도 했었다.

    

이처럼 버림받음에 대한 불안은  어린 시절 기억으로 인한  정상적이지 못한 행동이다.  16년 전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돈에 대해 관대하지 못했다.  돈을 벌어서 집에  갖다 드려야 하는지 모르고 회사생활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엄마도 동생도 없이 나랑 아빠만 둘이 같이 살고 있었는데 아빠가 밖에서 술을 드시고 오셨는데 또 집에서 술을 드신다고  소주 한 병을 드시더니 술병을 깨서 피가 한가득한 유리조각을  들면서  집을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하셨다.


나는 어린 나이에 너무 무서웠고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됐었다. 친구 집으로 도망갔다 출근하고 주말에 다시 집으로 찾아갔는데 아빠는 이미 내 짐을 다 싸서 나한테 나가라고 얘기하셨다.  나는 나가지 않으면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릴까 봐 나갈 수밖에 없었다.   가방을 들고 동생과 엄마가 있는 집으로 가서 살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못해  아빠가 살고 있는 동네 큰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아빠의 죽음' 아빠는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살다 쓸쓸히 돌아가셨다.  나는 아빠를 보내면서 그때 아빠와의 마지막을 아직도 후회한다. 내가 만약 그때 아빠를 혼자 두고 오지 않았다면 아빠를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에 한으로 남아있다.


이런 정상적이지 못한 기억은 과거의 불행을 계속 반복하게 만든다. 내가 이런 상황에 자랐기에 내 자식에게는 같은 되물림을 남기려 하지 않고 내 남편에게는 좋은 배우자가 되려고 애쓰지만  자기도 모르게 배우자와 아아들에게 상처를 준다.  상처를 주고 감정이 상하고 나서야  나 자신을 발견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절망해하거나 우울해한다. 


사람은 자라면서 특정한 역할과 대우에 익숙해 있다. 

만약  학대나 비난, 방치하는 환경에서 자랐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환경에 처했을 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감정을 느낀다.   학대는 때리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어릴 적 기억인지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학대를 일삼고 있다.   아이에게 핀잔을 주고 필요 이상으로 아이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하지 말라고 과잉보호하는 것처럼 아이 스스로 선택하게 하지 못하는 등 학대의 종류는 다양하다.  


말로는 하지 말자고 얘기하면서  학대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난 후 후회하면서까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는 멀까?  잘못된 행동방식이지만 부모 자신이 자라난 환경과 가장 유사한 환경을 추구하고 조성하기 때문이다.  변화하려 하기보다  편안한 환경을 추구하려는 본능으로  자신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반복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런  대처 방식은  정상적이지 못한 행동을  끓임 없이 반복하도록 유도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성인이 되서까지 연장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어릴 적 잊지 못하는 자신의 상처가 자기가 아는 전부이고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악순환의 고리를  잘라내지 못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아빠와의 기억으로 내가 만약 결혼을 한다면 맞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에게 돌아가신 아빠의 이야기를 했었고 자랐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들려주며 우리는 서로 싸우지 말고 살자고 서로 이야기하고 다짐하며 결혼했다. 그런데 막상 결혼해서 살아보니  내가 생각했던 다짐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30년 이상을 살던 사람들의 만나서 사는 가정이란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맞추어 가는 기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익숙해지어야 하는 기간 동안   다짐했던 것처럼 되기보단 자신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부정적인 패턴을 반복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한 번은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남편과  크게 싸운 적이 있었는데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남편이  이해가 되지 않아  기분이 상하다 보니 마음 하고는 다르게  입에선 나쁜 말이  연달아 튀어나오게 되었다.  남편은 상대방 말을 잘 들어주는 성격이라 들어주다가도 한 번씩 화가  치밀어 오르면 상황을 걷잡을 수 없도록 만들 때가 있는데  그걸 알면서도 내 기분이 상하다 보니 그만 해도 되는 상황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게 되다 보니  결국 남편은 화장품을 집어던졌고 잘못 맞아  내 얼굴에 상처가 생겼었다.   


 그때 말고도 조용히 지나갈 수 있었던 상황들을 감정을 격하게 만들어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적도 많았다.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닌 일이었는데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남편에게 서운한 나머지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계속되는  상황을 해결하지 못해 마음 아파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 주지 않으면 그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한다.   나는 환경이 변화하고 사람이 바뀌면 자연히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며 입으로는 어린 시절 그 모습 그대로 살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남편을 향해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내뱉으면서 아빠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과거의 불행한 패턴을 이어가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인지치료의 아버지로 인정받고 있는 정신과 의사 아론 벡은 이러한 불행의 반복적인 패턴을 도식이라 불렀다.  도식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독특하고 습관적인 방식을 말한다.   도식의 내용이  개인의 자아존중감과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이해할 경우 더 많은 도움을 얻는다.  남편과 내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30년을 살다가 만났듯 도식의 내용 또한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  자아 존중감에 도움을 주는 긍정적 도식에 반해 문제는 부정적 도식의 경우다. 부정적 도식의 경우 심리 문제를 일으키는 근원적인 역할을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듯이 불행을 되풀이하는 강박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행동 패턴을 발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불행을 불행이라 맡겨두지만 말고  계속되는 반복성이 발견된다면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불행을 반복하려는 자신에게 말을 걸고 불행을 멈추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 나이에 누려야 하는 일들을 뒤로 한채  집안일이 우선이 되었고 아빠한테 엄마가 맞는 날이면 눈치를 살피며 숨죽이는 날들이 많았다. 아빠한테 맞은 다음날도 누워있기는 커녕 장사하러 나가는 엄마를 도와야 했고 , 혹여나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가슴 졸이며 시간을 보냈다. 마음 졸이며 살다 보니  내 인생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누가 조금만 잘해주면 혼자 좋아하기 바빴고 그 사람들은 곧 다른 사람을 만나가는 것을 반복했다.  떠나가는 사람을 보며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던 부모님으로  인해  결혼 생활에 불신도 물론이거니와 불안감에 휩싸여 결혼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사람이  남편과 만난 지 1년 만의 결혼을 했다.  집안의 장녀가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에 엄마는 만난 지 6개월 만에 남편을 소개받았고 순식간에 결혼을 하도록 모든 일을 진행시키셨는데  결혼한 지 한동안은 결혼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에 눈물로 지새운 적도 많았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계속되었던 불행의 시작은 불안감을 잠재우지 못하고 지속된 결혼 생활의 이유도 있었던 것이다.    


세상일이 다 그렇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생길 때가 많다.  결혼생활도 그렇고  생각지도 못한 참 다양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에 따라 다음일들이  행운이나 불행으로 다가올 수 있는데  행운도 불행도  선택은  그 누구도 해주지 못하는 자신 몫이다.   매 순간의 선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반복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불행을 계속 불러오는 것이다.    

  불행의 반복의 이유를 몰랐다면 평생 모르고 나 자신을 괴롭히며 살아갔겠지만   나 자신과의 대화로 느꼈듯 불행의 선택도 나 자신이 할 수 있기에 나는 오늘부터 부정적인 생각이 반복될 때마다 선언하고자 한다.

"불행이여 이제 그만. 나는  내 안의 나와 함께 행복해지기로 했다."


한 번의 시작으로 모든 것을 잠재울 수는 없겠지만  작은 시작이 소중한 가족과 함께 사는 찬란한 미래를 비출 것이라 믿기에 나는 내 안의 나에게 이야기하며 세상과 더불어 사는 연습을 한다. 

작가의 이전글 어린 시절 무던히도 외로웠던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