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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전의기량 Jan 09. 2021

어린 시절 무던히도 외로웠던 아이

어릴 적 나와 다시 만나다.





무던히도  어린 시절을 외롭게 보낸 한 아이가 있었다.  학교를 다녀오면 어김없이 장사하시는 엄마를 도와 드려야 했고 동생이 둘이나 있었으나  힘들면 힘들다 이야기 한번 못해본 채 집안의 어린 가장으로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지치고 힘이 들 때면 방 한쪽 벽을 보고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벽 말고는 아무도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 아이는 이제 자라서  40대를 바라보는 한 가정의 엄마로서 한 남자의 부인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는  지금도 외롭다.   남편이 자기를 사랑해도  아이가 엄마를 필요로 해도 언제나 가정 안에서 겉돌고 있다.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볼 때도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어린 시절 외로움에 사무친 채 벽보고 이야기하던 때처럼 방의 한쪽 벽면을 보고 혼자 이야기하려 한다. 마음속에서 스스로  가족들과 거리감을 두고 자신의 오랜 상처를 만지고 있는 것이다.


일을 손에 놓으면 안 된다는 그녀의 어머니의 뜻을 따라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일을 시작했고  한 번도 일을 쉰 적이 없었다. 결혼한 후에는 한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부인 역할도 중요한 것인데 그녀의 머릿속엔 늘  일 생각뿐이었다.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그녀는 아이를 그녀의 엄마의 손에 맡기고 다시 일을 시작했는데  시종일관 일만 하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도 그녀를 이해해주려고 했었다.  그녀의 엄마가 집안일을 봐주신다고 했지만 평생을 일만 하시던 그녀의 엄마가  도와줄 수 있는 집안일도 한계가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길 바랬으나  여기저기서 잡음이 나는데 해결은 원만하지 않고  늘 일만 하는 아내 때문에  그녀의 남편은 마음이 허전했을 것이다.   그녀는  돈을 벌어야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아이를 남부럽지 않게 키울 수 있다며 성실하게 일을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한 최선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고 했었다.  공휴일에도 주말에도 심지어 집에서도 그녀는 항상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 모든 엄마들이 당신처럼 일하지는 않는다"라며  한 번씩 자조 섞인 말을  건네는 남편의 말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일이 우선이라고 믿고 했었다.   그녀가 일을 우선시하고  가정을 소홀히 하는 것은  남편과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족들을 위해 최선이라고 믿고 있었뿐이고 가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 스스로가 만든 외로움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한 번은 외로움의 굴레를 스스로 만들어 무던히도 외로워하는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렸을 때 상처 받거나 좌절하면 누구에게 먼저 달려갔습니까?  

그녀는 질문의 대답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힘들거나 지칠 때 가장 가깝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의지하면서  위로받곤 하는데 그녀의 어린 시절에는 어느 누구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준 적이 없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 부모님은 항상 바삐 일하셨다.   아버지도 노점 장사를 하셨고 그녀의 어머니도 세 딸을 키우기 위해 사계절 일을 하고 계셨다.  언제나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그녀의 어머니이지만  일하다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집안이 조용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끝없는 의심 그리고  어머니를 향한 구타가 그녀의 어머니를 집에서 떠나게 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떠난 후, 세 딸은  작지 않게 티격태격 싸우곤 했는데  애들이 싸우는 날이면 그녀의 아버지는  아이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한 번은  그녀의 초등학교 6학년 운동회 전날,  세 자매는 어떤 일 때문에 싸웠는지는 기억에 남지 않으나 그날도 어김없이 싸우기 시작했다.  싸우는 소리를 듣고 나오신 그녀의 아버지는 또 아이들을 때리기 시작했고 그녀는  맞다 맞다 못해 강목으로 팔을 맞았는데 팔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머리가 울리면서도 그녀는 그다음 날 운동회에 참가했다.   맞아서 움직이지 않은 팔과  울리는 머리를  지탱하면서 계주 달리기를 하면서도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아프다 말하지 못했다.  운동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 뜨거운 수건에  아픈 팔을 감싸주는 아버지의 모습과 함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이다.


무언가에 상처를 받았을 때 누구에게도 갈 수 없다는 것은 한 번도 사람을 통해 상처를 치유받은 경험이 없다는 뜻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한 번도 아파도 아프다고 말해본 적이 없기에 잘못된 습관이 몸에 배어버리듯 자기감정에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가족, 부부, 속해있는 기업, 커뮤니티에  속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마음의 안정을 누린다.  자기가 속한 곳에서 버림을 당한다는 것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마음속 깊은 곳에 얻은 상처는 밖으로 폭력성을 통해 표현하기도 한다. 


오늘도 여김 없이 신문과 텔레비전에서의 뉴스는 가족 안에서 벌어진 수많은 비극적인 범죄 사건들을 보도한다.  사는 게 쉽지 않고 퍽퍽할수록  모르고 지냈던 마음속 깊은 곳 상처들은  몸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는데  코로나로 순식간에  많은 것을 변하게 한 지금   특히나  서로가 서로를  가장 많이 보듬어 주어야 할지 모르는 가족 간의 관계가 무참히 깨어지고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범죄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   이처럼 자신이 속해 있던 곳이나  함께했던 사람에게서 버림받는다는 것은 잊지 못할 깊은 상처를 남긴다.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의 원천이란 가족과 깊게 연결되어 애착을 잘 형성할 때  이루어지는데  혼자가 아니라 가족에 속해 있고 그들도 나에게 속해 있다는 느낌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분명하게 답을 주고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그녀는 평소 다니던 세 번째 회사에서 5년 만에 인원감축과  업무조정으로 그만 나와도 된다는 회사의 통보를 받았었다.  청천벽력 같은  회사의 통보를 받는 날  자신을 무가치하고 아무짝에 쓸모없는 사람이라 느끼며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셨던 것만큼의 눈물을 많이 흘리면서도 다음날 또다시 살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아마도 그녀는  김미경 강사님이 퇴학일 뻔 한 아들을 자퇴시키면서 아들에게  자퇴는 또 다른 시작이라며 아들을 보듬어 주셨던 것처럼  가족 중 누군가는  그녀에게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며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라고 얘기해주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 그녀의 가족 중 누구도 이야기해준 적은 없었다.   

 

이후에도 쉼 없이 그녀의 일은 계속되어야만 했는데, 어느 누구도  그렇게 열심히 일하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고 달려갔던 것뿐이었다.  이처럼 가족에게 소속되지 못하고 거부당한 경험을 반복한 사람은 자기 정체성과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이런 심리가 속마음 과는 다르게 가족들에게 무관심하고 자기 일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치는 것이다.


가족과 깊게 연결되어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사람은  특히나 다른 사람의 평가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한다.  다른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크게 반응하고  의견 충돌이 있었을 땐 해결하지 못해 몹시 힘들어한다.  이는 인생을 좀 더 풍요롭고 다양하게 살 수 있는 즐거움도 앗아간다. 이런 갈등이 반복되면 될수록 점점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소외로 인해 상처 받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생각과는 다르게 하면 안 되는 말을 하면서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 낸다.


쓰라린 아픈 상처를 상처로만 남기지 않기 위해 그녀가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자신의 아이에게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대물림해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녀의 바람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원하는 대로 이루기 위해서 대단한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제일  먼저  매일 숨 쉬고 살아가는 가정을 따뜻한 둥지로 만들어  그 안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가족 구성원 모두가 노력이 필요하다. 외로웠던 어린 시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어린아이였지만 지금은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성인이기에 현재의 모습을 부인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나답게 인정하면서 자신의 가족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씩 시도하면서 어린 시절의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자신의 감정을 돌보고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외로움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고  이겨내기 위해서는 해야만 한다. 모두와 더불어 사는  혼자가 아닌 더 나은 밝은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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