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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전의기량 Feb 24. 2021

더 많은 후회와 만나기 전  건강지킴이!

코로나가 바꾼 일상


이번 11월이면  두 번째 유방암 수술 후 산정특례 기간이 끝난다.  

산정특례 기간 동안에는 6개월에서 1년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추적검사를 받는다.   

 CT, 유방 촬영 등 검사를 받으면 일주일 뒤에 담당교수님 만나 결과를 들으러 간다.


담당교수님 만나러 가는 길은 어찌나 조마조마 한지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첫 번째 유방암 수술은 28살에 받았다.   적지 않게 몸에 혹을 달고 살던 나였기에  맘모톰 수술을 몇 번 하고  조직검사 결과에 암이 발견되어 대학병원에 가서 수술받게 되었다.


맘모톱이라 하면 부분 마취를 하고  맘모톰 바늘을  해당 유방 조직까지 위치시킨 후  진공을 통해 패인 홈으로 유방을 당긴다. 함 내에 들어온 조직을  회전 칼날로 제거해 조직을 인체 바깥으로 꺼낸다.  보통은 금요일에 연차를 내고 맘모톱 유방 조직 적출 수술을 하면  주말을  쉬고  월요일 이후 다시 출근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평생 살면서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수술을 나는  열 손가락이 다쓸 정도로 받았었다.


두 번째 인지 세 번째 인지  몇 번째 맘모톰 수술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맘모톰 수술 후  보통은 일주일이 지나면  조직검사 결과를 들을 수 있다.   다른 때 같으면 일주일 지나 진료만 받으면 됐었는데  그날은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조직검사에서 유방암 조직이 발견됐어요.


 아니 놀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혹만 제거해도  여러 번 제거 수술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는데 유방암이라.....  눈 앞이 새하얗게 질리면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우선 병원에 오시면 자세한 이야기는 말씀 드릴 테지만  대학병원에 예약하고 수술 날짜 잡으셔야 할 것 같아요.


 진료일에  병원에 가서 상황 설명을 들어보니 다행히 암이 0기 암이라  전이된 것도 없고 착한 암이라 했다. 그러나 제거 수술은 받아야 한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몇 군데  대학병원을 소개해 주었다.  그중에 나는  그때 다니던 회사에서 가까운 곳으로 병원을 정했다.  지금은 대학병원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경험이 많이 생긴지라 잘 알고 있지만  처음 유방암을  선고받았을 때는  대학병원 가서 진료 하나 받는 것 만으로  기력이  쇠하고  힘들었었다.  예약도 오래 걸려서 할 수 있었고  미리 가서 대기하고 30분 넘게 기다리면  담당교수님을 만날 수 있는데  그것도 10분 남짓으로  끝났다.  10분 남짓으로 진료받는데 진료비는 왜 그렇게 비싼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어쩔쏘냐.  병원에서 지정해준 날짜에 맞게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수술을 받고  퇴원하는 기간 동안 회사에 휴가를 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막내로서 회사에서  해야 할 일도 만만치 않았고  갑자기 생긴 공백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아픈 것은   죄가 아니지만  프로는 몸 관리도  철저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상사분께 말씀은 드렸으나  어찌나 눈치가 보이던지......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대학병원에서 지정해 준 날짜에 수술을 받았다.  경과가  나쁘지 않아 일주일 후에 회사에 복귀했다.    경과가 좋았다 해도  전신 마취하고  수술을 받았던 지라   조금 더  쉬어야 하는 것인데  회사에 더 휴가를 낼 수가 없어 출근해야만 했다.


이건  웬일!!! 분명 일주일밖에 자리를 비우지 않았는데  자리에는 서류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 서류들을 보아하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는데 자리를 비운 시간이 있어 머라 말도 못 하고  서류들을 하나씩 처리 하기 시작했으나  몸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결과물이 마냥 좋을 수는 없었다.    결과물이   빈틈이 생길수록 나는 상사분께 혼날 수밖에 없었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서도 일을 해야 하는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었다.   분명   오래 살고 싶으면  술을 끓으라 했거늘  스트레스가 쌓이니  다시 친구를 만나  술과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지금은  그때처럼 운동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저  화가 쌓이면 친구 만나 소주에 안주로  하루를 마감하기도 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 했다.

평생을 건강할지 알았던 28살 처음 유방암 선고를 받고도 0 기암이라는 것이  대수롭지 않았는지 스트레스를  또 술로 풀기  시작하니 몸이 성할 리가 없었다.   막 많이 마셨던 것도 아니지만 술 마실 시간에  다른 건전한 일을 했다면 지금보다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7년 다닌 회사를 관두고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으나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직장동료 아니면 친구를 만나  치맥을 하거나 쏘맥을 하기도 했다.  아마 생각해보면  스트레스를 집에다 가져가기는 싫고   밖에서 풀고 가고 싶었는데 나름의 방법으로 선택했는지 모른다.   


섬유선종이나  유방암이 생기는  제일 큰 이유는  비만에서 비롯된다.  비만은  습관에서 반복되는 것이 제일 큰데   하루 일정 시간 균일하게 운동해주지 않고  기름진 음식이나 술로 축적했을 때는  비만을 막을 수 없다.  일 때문에 운동을 못한다고 사무실에  온종일 앉아만 있고 스트레스를 술과 안주로 풀었다면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나는 하루 출퇴근 시간이 3시간 되니 그 시간 동안 걷기로 운동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걷는 것도  운동이 되도록 바른 자세로 걷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2번째 유방암 수술


첫 번째 유방암 수술을 하고 나는 5년 동안 추적 관찰을 해왔다.  유방암 수술을 하면 호르몬 제거 약도 꾸준히 복용해 주어야 하는데  호르몬 불순으로  결혼하게 되면 아이 임신하는데 문제가 생길까 봐 먹지 않았다.  5년 동안 검사도 꾸준히 받아   괜찮은 줄 알았다.    완치 판정을    받고 싶었으나 내 몸속에 자리 잡고 있는  혹 들 때문에  완치는 어렵다고 했다.   혹들을 제거하면 혹시나  가능할까?  없는 돈을 탈탈 털어  맘모톰 수술을 첫 번째 유방암 수술을 하고도 계속해서 했지만  몸속에 혹은 말끔히 제거되지  않았다.


여러 번의 맘모톰 수술을 통해 2번째 유방암 조직도 발견하게 되었다.   첫 번째 유방암 수술을 받은 곳 반대쪽으로 유방암 조직이 발견되었다.  첫 번째 유방암 수술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또 수술을 받아야 한단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가 수술 날짜 받은 전달에 엄마도 폐암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엄마도 폐암   단계가 높지 않았지만 엄마는 나이가 있어서 수술 후에  몸을 회복하는데 많이도 힘들어했다.  엄마는 회복 중이었고 나는 두 번째 유방암 수술을 받으러 갔다.     인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들이 연거푸 생기다니  기가 막혀서 할 말이 없었다.  내 몸속에 혹이 계속 생기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수술 전에 담당교수님을 만나는 자리가 있는데  해답을 얻고 싶어 질문을 했다.


"교수님  제 몸속 혹은 언제 없어질 수 있을까요?"

교수님은  내 질문을 들으시더니 아빠 미소를 하시면서  얘기하셨다.

" 혹은, 할머니 되면 없어진답니다."  


할머니라   두 번째 수술받을 때 나이 36 이인데  할머니 될 때까지 어떻게 기다려야 한다 말인가?  교수님 말씀은 우리 엄마가 맨날 나한테 얘기했던 것처럼  "  심보를 곱게 쓰고 맘 편히 살아야 한다."   마음을 닦달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들렸다.   내가 지금 당장 해볼 수 있는  답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채  두 번째 유방암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 전 CT 결과에 따라 유방 전 절제를 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다행히 검사 결과가 좋아서  전 잘제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또 한 번 재발을 한다면  전절제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전신 마취가  몸에 유해하다고는 하지만 수도 없이 전신마취를 하고  크고 작은 수술을 했었기에  전절제를 하는 것은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고  더 이상은 수술대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내 인생에  더없이 중요한 큰  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수술을 하고 다시 회사에 복귀했지만  나는 전처럼 술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식습관도 조정하고 아침은  아이 밥그릇으로  작게 줄이고 점심은 닭가슴살, 양배추, 두부 등으로 저녁은 곡물 셰이크로  먹기 시작했다.  물은 하루에 2리터를 꼭 챙겨 마시고  하루에 2만 보이상을  6개월 동안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란 마음 가짐으로 독하게 움직였고  6개월 이후 10KG 감량에 성공했다. 10KG 감량에 성공하고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 습관이라는 것은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다시 돌아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물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진 않지만  비슷한 상황까지는 갈 수 도 있다.    체중 조절에 성공하고  아예 금주할 줄 알았던 술을 가끔씩 다시 찾기도 했고  기름진 음식을  한 번씩  다시 찾기도 했다.   6개월 동안 체중 조절하면서 닭고기와 두부만 먹었더니  닭이 새로 태어나는 줄 알기도 했었다.  다행인 건 원래 대로 돌아가지는 않아서  병원 추적관찰에서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엄마의 병 '치매'

가끔씩 술을 먹을 때면 정신줄을 놓고 먹는 날도 있었고  다음 날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난해한  경우도 많이 있었다.  그래도 가끔 먹는 술은 포기할 수 없었는데  작년 7월  마냥 건강할 줄 알았던 엄마에게 병이 찾아왔다.   시작은  뇌경색이었지만  한쪽 마비로 결국 치매까지 찾아왔다.  골든 타임을 놓치고  마비된  뇌와 편마비로  찾아오는 치매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는 힘들다고 했다.  치매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엄마의 치매는  전두엽 치매로  먹은 것도 잃어버리고 먹는 것을  찾기도 하면서  한 가지 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아픈 것은 죄가 아닌데 엄마가 치매라는 병을 앓아가면서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보자니  엄마와  비슷한 몸 구조를 가진  나로서는  나 자신을 단련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마저 내 딸에게   아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더   술과의 안녕을  선언하고  매일 아침 달리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건강한 습관으로 하루를 마감하니 이제 정말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일주일 전에  검사 예약일이 되어 병원에 검사받으러 갔었다.  코로나 이후의 병원의 일상은  사전 검진 문을 작성하고 가야 한다.   들어가는 입구에  사전 검진 문을 작성하지 않으면 입장 제한이 있다.  들어가면서부터 사전 검진 문을 보여 주고   동관에서 서관으로  서관에서 검사실로  옮기는  곳마다 손 소독은 기본으로 해야 한다.   검사받는 동안 대기하는 좌석에도  거리두기로  사람 간 간격을 두고 앉아야 한다.

마스크는 이미 필수가 된 지 오래고  검사받는 내내 마스크를 벗으면 검사를 받지 못한다.  


검사는 피검사와 CT 그리고 유방 촬영으로 이루어진다.  체취 된 혈액으로  유방암 유전자와  재발 가능성 여부를 확인한다.  CT와 유방촬영은  유방암으로  발견될 수 있는 혹이 있는지 검사를 한다.   검사 시간은 생각 외로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데 일주일 뒤 결과가 걱정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완치라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반  아무 일 없겠지 하는 조바심 반  반반의 마음이 왔다 갔다 하면서 감정 기복을 일으킨다.   조바심 느끼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이라  마음을 안정시키고   집에 돌아가  일주일을 보냈다.


일주일 뒤, 담당 교수님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갔다.   대학병원에는 오후보다 오전에 사람이 많았고  입장하는 길에   사전검진 문을 준비해서 열체크받기 위해 줄지어 서있는  사람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나도  확인을 받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실 입장  확인을 하면  체중계에 체중과 키 체크를 한다.   유방암 환자는 급격하게  체중 증가나 감소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매번 갈 때마다  체크를 한다.    몸무게와 키를 체크를 하고 진료실 앞에 대기를 하고 있었다.   내 이름이 호명되자마자 들어갔더니 담당 교수님께서는   일주일 전에 했던 검사에 대해 결과를 이야기해주셨다.


" 다른 수치는 괜찮은데, 빈혈 수치가 너무  안 좋은데요.

12g/dl 미만이면 빈혈이라 볼 수 있는데  지난번 검사 때는  9g/dl 되어서 철분제로 처방했었거든요.

이후 피검사 결과가 좋아져서 약을 더 드시라 안 했는데 이번 피검사에는 7g/dl 이하로 떨어졌네요.

분명 이 수치라면 두통도 심했을 것이고 피곤함도 계속되었을 텐데 못 느껴지셨어요?"


빈혈은 이미 예전에도 많이 있었다.  결혼하기 전에도  있었고  임신에서도 있었던 지라  

철분제를 달고 살았었는데 철분제를 복용하면 변비도 올 수 있어서 수치가 좋아지면  안 먹기도 했다.

나이를 한 살 먹고 나서부터 유독 몸이 힘들고 , 머리가 자주 아팠다.  아프고 나면 괜찮겠거니 했지만  투통 주기가 심해지는 날도 있었고 생리 양이 많은 달엔  몸이 두배로 힘들기도 했었다.  숨이 헉헉 차고  자리에 앉았다 일어나면 현기증도 많이 났지만 그저 마흔이 되어 마흔 앓이라 생각했거늘  담당 교수님의  검사 결과를 듣고 몸은 아무 이유 없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교수님은 이번엔 철분약 되신  빈혈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처방을 해주셨다.   헌혈을 해도 모자랄 판에  빈혈 주사라니!!!!!  


빈혈 주사를 주사실에서 맞고 있는데 엄마가 생각나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지지고 볶더라도  엄마는 내가  아프다 하면  몸에 좋은 음식을 사다 만들어 주곤 했었다.  기력에 회복하라고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달려와  맛있는 음식도 해주던 엄마였는데  내가 아파도 이제  엄마에게 이야기할 수 없고  엄마가 해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옛말에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고 가족은 있을 때 잘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는 내가 직접 겪기 전까지는  잘 들리지 않는다.  직접 겪은 후에야  그 사람이 그랬지!!라고 후회하곤 한다. 그러나  배 떠나고  후회해봤자  그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내 몸은 조금이 나마 건강할 때 지켜야 하고   엄마가 남은 삶을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더 많은 후회를 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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