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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전의기량 Dec 01. 2020

사과도 방법이 있다.

나 답게 사는 인생 찾기 여행




"잘못이라 생각한다면 사과도 적절한 타이밍에 해야 한다. 

때를 놓치고 하는 사과는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



언젠가 말을 제대로 못 하는  저에게 제 지인이 하던 이야기에 뜨끔한 적이 있었다.

화해의 손을  제때 내밀지 않고 자존심만 세우다 갈등의 앙금을 남긴 기억이 불현듯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 사소한 다툼으로 불편하게 지내던 직장동료가 있었다. 토라지기 전에는 꽤 돈독한 사이였지만, 자존심 탓인지 먼저 잘못을 시인하려 하지 않았다. 나도 그 동료도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복사실에서 만난 직장동료에게 사과주스를 건네주고는 도망치듯 사라졌다.

어찌나 얼굴이 빨개지던지 , 사과주스의 사과가 내 얼굴로 뛰어 올라오는 듯했다.


말로 사과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사과주스를 전달하고 직장동료가 사과주스를 마시는지 안 마시지는 지 궁금했다. 


복사실 문턱에서 빼쭉 얼굴을 빼고 

복사하고 있는 직장동료를 보니  처음에는 주스를 쳐다보다  빨대를 꼽고 마시면서 미소가 바뀌는 것을 보았다.


그때 그 일은 더 늦지 않게 사과를 건넨 것이다.


돌연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지금은 코로나라 가족 회식을 맘 놓고 못하지만  예전에 가족회식한다고 큰 놀이방이 있는 오리고깃집을 간 적이 있었다. 


 꽤 넓은 식사 공간이라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식당이 꽤 넓어서 아이가  돌아다니기도 좋은 곳이라는 것이다. 

주의를 주어도  얼마 가지 못하고,  원치 산만한 아이라서 불안 불안했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밥 다 먹고 식당을 종횡무진하던 아이 

만들어진 음식을 가지고 나오는 아줌마와  부딪히면서 음식 담긴 그릇이  쨍그랑 소리와 함께 깨졌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아이는 울고 그릇은 깨지고 분명 아이가 잘못한 것이었는데 

아줌마에게 사과를 하기는커녕,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바빴다.


정신이 혼미해진 사이  아줌마의 한마디가 더 화나게 했던 것이다

" 사람 많은 식당에서 아이를 막무가내로 돌아다니게 하면 안 되지 않나요?"

잘못인 줄 안 상황인데도  아이가 우니 말하는 아줌마보다 더 큰 목소리로 얘기했다.


"어린아이가 그럴 수도 있죠. 아이 우는 건 안보이시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이지만, 목소리만 크면 이긴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나는 손님이고  밥 먹으러 왔으니 있을법한 일이 일어났다고 우기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아무도 사과 없이  지나간 식사

밥 먹으러 갔는데 영혼도 맛도 못 느끼고 돌아왔다. 그때 그 일을 돌아보면서  지금의 나를 보며 생각했다. 


높은 사람들과 있을 땐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면서 늘 전전긍긍하고 

나보다 낮은 사람들하고 있을 땐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지려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 

그러면서 간단히 끝날 일인데 늘 사과를 타이밍 놓쳐가니까 대화도 늘 제자리였던 것이다. 


이런 나를 보며 한참 재미있게 보던  런닝맨 게임이 생각났다.

게스트와 멤버들이 나란히 서서 헤드폰을 쓰고  들려 나오는 노래 말고  제시하는 제시어에 따라   몸동작을 하는데  동문서답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게임은 재미있었으나 들리지 않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원하는 답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앞도 뒤고  안 가리고 아이만 챙겼던 나 자신을 본 것이었다.


재미난 게임 같은 상황은 아니나  옆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동문서답하는 일들은  나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야근으로 온몸이 피곤해서 지하철에서 잠 좀 자려고 졸고 있는데 잘 듣지 못하는 내가 시끄럽게 들릴 정도로 크게 통화하는 사람이나 만원 버스에서  사람을 밀치 고도 내릴 정거장이라고 내리는 사람들 


사람을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하는 사람들  

이기주의가  염치없이 사치가 된 당연 주의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 보며 한마디 못하는 나, 약한 사람들에게 말하는 나는 염치없는 얌 체면서 이기주의가 였다.


물론 사과는 어렵다. 쉽지 않은 말이다.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렵다.

엘튼 존이 부르던 노래도 있지 아니한가? " 미안하다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말인 것 같아"


사과는 도대체 뭐길래, 나이가 들수록 고집만 세지고 더욱이 하기 힘든 것일까?

나보다 기운 센 사람에겐 늘 겁내 하면서 나보다 여린 사람에겐 미안해라고 먼저 말하면 내가 지는 느낌이었다.

강한 사람한테 혼나고 여린 사람에겐 이기고 싶은 마음. 패자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사과란 본디 'Applogy'는 그릇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이라는 뜻이 담긴 그리스어로 'Apologia'에서 유래했다. 얽힌 일을 처리하려는 의지와 용기를 지닌 자만이 구사할 수 있는 승리의 언어가 사과인셈이다.


사과의 한자를 살펴보면 그 뜻이 분명해진다. 사과의 사에는 본해 '면하다'혹은 끝내다는 의미가 있다. 과는 지난 과오로 지난 일을 끝내고  상황을 전환하는 행위가 바로 사과인 것이다.

먹는 것이 당도가 중요하듯 말로 하는 사과 역시  타이밍과 진정성이 중요한 것이다.


그동안의 나는 간단히 끝날 일을  뒤늦게 사과하면서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데 계속 듣지 않으면서 

쏟아 부치듯 꼭 한 번씩 하는 말이 있었다.


그때 바로 사과하지 못해 미안했어.
 하지만 이 부분은 내 잘못이 아니야."


늦게 말하면서 책임회피까지 단어까지 사용하며 하는 사과를 보며 그 누가 나를 받아줄 쏘냐. 

몰랐다. 어떤 사과가 진정 사과인 건지 내가 왜 그동안 착한 사람인척 하면서 왜 많은 사람들이 내 곁에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닌지 말이다.  


내가 나 스스로 나를 가두면서 한 번씩 내뱉는 말에 모두를 상처가 되게 하고 있었다.


내 안의  내가 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니 모두를 이기려고만 했으니 

나도 상대방도 깊은 대화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진정성 있는 사과란 다른 것이 아니고



미안해,  너를 아프게 해서 나도 아프다는
사과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었다.


어렵게만 생각하지 않으면 모두를 행복할 수 있게 하는 말 한마디가 사람의 일상을 변하게 하는 것이다.

사과하는 방법도 모르고  헤매던 나는 이렇게 하나둘씩 방법을 찾아 서툴지만 바른 인생을 살아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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