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투가 내 입에서 나왔다

거울 속의 엄마를 이해하고 비로소 친구가 되기까지

by 해루아 healua

엄마의 별명은 ‘오드리 헵번’이었다. 오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똑 부러진 성격에 인형같이 총명했던 엄마는 외가 식구들에게 귀하디 귀한 존재였다. 짙은 쌍꺼풀과 큰 눈, 오뚝한 콧날을 가진 엄마는 동생과 나의 자랑이기도 했다. 제일 젊고 예뻤기 때문이다. 학교 친구들도 엄마가 오면 부러운 눈빛을 보냈고, 항상 나보단 엄마가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엄마는 과거 배구 선수를 꿈꿨을 만큼 에너지가 넘쳤고, 여대를 다니며 누구보다 찬란한 미래를 그리던 청춘이었다. 그런 엄마가 열 살이나 많은, 고지식한 아빠를 만난 건 운명의 장난 같은 세차장 현장이었다. 외가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선택한 결혼. 어쩌면 그것이 엄마의 ‘오드리 헵번’ 같던 삶이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 뒤로 숨어버리는 시작이었다.


엄마는 스물셋이라는 이른 나이에 나를 낳았다. 대학 졸업장 대신 1종 보통 트럭 운전대를 잡았고, 만삭의 몸으로 아빠를 도와 쌀가마니를 날랐다. 하루 벌어 집 한 채를 살 정도로 돈을 벌었으나, 아빠의 고집과 세대 차이는 엄마의 젊음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엄마는 어딜 가나 영재 소리를 듣던 나를 유학 보내려 할 때마다 아빠의 완고한 벽은 여지없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 억눌린 욕망 때문이었을까. 엄마는 나를 ‘공주’로 키우는 데 집착했다. 백화점에서 비싼 옷을 사다 나르며 아빠와 싸우면서도, 나에게 가장 좋은 것만 입히고 싶어 했다. 어린 시절 사진 속의 나는 예쁜 옷을 입었지만 정작 얼굴은 투박한 아이였다. 이웃들이 "애가 참 예쁘네"라는 말 대신 "옷이 참 예쁘네"라고 돌려 말할 정도였다는 이야기를 엄마는 지금도 우스갯소리로 던진다. 하지만 그 말속엔, 투박한 딸을 기어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아이로 만들고 싶었던 엄마의 눈물겨운 대리 만족이 담겨 있었음을 이제는 안다.



엄마는 언제나 나의 가장 든든한 방패였다. 중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이 나를 믿어주지 않았을 때 엄마는 단호하게 내 손을 잡고 전학을 시켰다. “선생님을 잘 만나야 해. 우리 딸은 내가 믿어.”


북경 어학연수를 갈 수 있었던 것도, 내가 하고 싶다던 다양한 취미를 아낌없이 지원해 준 것도 모두 엄마 덕분이었다. 아빠가 날을 세울 때마다 그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안심시켰던 사람.

“천천히 가도 돼, 우리 딸 너무 잘하고 있어. 최고야.” 그 한마디는 무너지지 않게 지켜준 방패였다.


그러나 엄마는 늘 잔잔하지만은 않았다. 아빠가 술에 취해 들어오고, 거래처에서 돈을 받지 못해 엄마가 대신 험한 소리를 하며 수습해야 하는 날들이 반복될수록 엄마는 점점 거칠어졌다. 아빠를 향한 분노가 터져 나오는 날이면,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창이 되어 아빠의 자존심을 긁었다.


그 장면을 무한 반복 보고 자란 나는 다짐했었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단란한 가족으로 살겠다고. 그래서 나는 아빠를 닮지 않은 남자를 택했지만, 엄마의 말투는 끝내 버리지 못했다. 결혼 후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이 오면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쏘아댔다.


“책은 뭐 하러 읽어? 변하지도 않을 거면서.” 나는 남편의 가장 아픈 곳을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거울을 보듯 마주한 내 모습 속에는, 아빠라는 벽에 부서진 엄마의 날카로운 파편들이 고스란히 박혀 있었다. 혼자 살 땐 몰랐던 또 다른 내가, 결혼이라는 거울 앞에서 소스라치게 드러났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이제 나는 엄마를 비난하기보다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우리 두 여자는 연인보다 더 다정하게 데이트를 즐긴다. 얼마 전, 함께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도 우리는 밤새 수다를 떨며 친구처럼 웃었다. 아빠라는 벽 앞에서 숨죽였던 두 영혼이 비로소 자유롭게 파도를 타는 기분이었다.


내가 조급해할 때면 “천천히 가도 돼”라며 다독여주고,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게 날카로운 촉으로 길을 잡아준다. 그런 엄마와 마주 앉아 있으면 엄마의 젊은 날이, 내 삶에서 다시 꽃을 피웠다. 5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여전히 눈시울이 붉어지는 여린 엄마를 보며, 나는 내 말투 속에 박힌 엄마의 아픈 파편들을 하나씩 뽑아내려 한다.


언젠가 다시 태어난다면 결혼 대신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보고 싶다던 엄마. 이번 생에서 그 꿈을 다 이루지는 못했을지라도, 지금 나란히 걷는 엄마는 여전히 나의 ‘오드리 헵번’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아이가 기대어 쉴 수 있는 바다가 되고 싶다.



나는 엄마의 말투 대신, 엄마의 마음을 닮아가기로 했다.

그것이 평생을 바다처럼 일렁이며 나를 키워낸 엄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다정한 보답일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