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지금, 글로 누군가의 길잡이가 되고 싶다.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고, 좋은 대학을 간 것도 아니었다.
그저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불렀고, 그걸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충분하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예상 밖으로 흘러간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중국어는 내가 가장 싫어하던 과목 중 하나였다.
한자는 복잡했고, 성조의 억양은 낯설었고, 성적도 바닥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무역 일을 하셨고, 방학이면 중국을 오가며 낯선 거리를 마주하게 됐다.
점점 변해가는 내가 낯설고 신기했다.
처음엔 음식이, 그다음엔 소리가, 조금씩, 천천히 중국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대학교 2학년,
북경에서의 유학 생활은 내게 많은 걸 남겼다.
그곳에서 연극부 단장이었던 한 친구를 만났고, 긴 연애를 하며 자연스럽게 중국어는 내 안에 스며들었다.
대학교 4학년.
운이 좋게 과 4등으로 교직 이수를 마쳤고,
'중국어 정교사 자격증 2급'도 손에 쥐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모교에서 교생 실습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이라는 꿈을 조심스럽게 마음속에 품기 시작한 건, 바로 그 무렵 스물네 살이었다.
아직은 많이 서툰 나이였지만 아이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나는 그 부름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애썼다.
사립 고등학교라 당시 나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들은 그대로 교직에 계셨다.
나를 따뜻하게 반겨주셨지만, 조금은 의아해하시기도 했다.
"중국어를 그렇게 못하더니, 네가 교생 실습을 나오다니..."
경험은 인생을 바꾼다.
나는 그 말이 정말이라는 걸, 나를 통해 증명하게 되었다.
한 달 동안, 내가 좋아했던 중국어를 아이들도 좋아하게 만들고 싶었다.
중국에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을 있는 그대로, 진심으로 전하고 싶었다.
존경하는 스승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던 내가 맡은 아이들에게만큼은 기억에 남는 교생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이제 작별할 시간.
아이들이 건넨 편지와 작은 선물들을 받아 들고 나는 조용히 울었다.
한 남학생이 기억난다.
“선생님 덕분에 중국어를 공부해보고 싶어요”라며 교무실로 찾아와 그렇게 말하던 아이의 눈을 마주치던 순간, 나는 알았다.
선생님이라는 것은, 지식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건네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날,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
그래서 스승의 날이 되면 고3 시절,
나를 믿어주었던 담임 선생님도 떠오르지만 무엇보다 그 교생 실습 시절의 아이들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 맑은 눈동자와, 말 없는 응원. 그리고 나를 ‘선생님’으로 만들어준 조용한 시간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선생님을 꿈꾸게 된 가장 깊은 뿌리에는 어릴 적의 상처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삶에서 가장 예민하고 흔들리던 시절,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큰 상처로 나는 결국 전학을 선택했다.
만약 그때 그 선생님이 단 한 번이라도 나를 믿어주었다면 내 인생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누군가의 가능성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 되자고.
그게 내게 ‘선생님’이라는 이름이었고, 지금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글도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건네는 '삶의 방향'일지도 모른다.
스승의 날.
나는 오늘도 그 아이들의 눈동자를 떠올린다.
그리고 글을 쓰는 나를 바라보며 내 마음속 또 다른 스승과 조용히 마주 앉는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삶에 작은 방향 하나쯤은 건네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누군가의 조용한 길잡이였을지 모른다.
그때 아이들의 눈빛이 내게 가르쳐준 것.
믿음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다는 것.
그건 한 달도, 한 문장도, 누군가의 삶을 바꾸기에 충분하다는 것.
나는 이제야 안다.
‘선생님’이라는 이름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이름도,
결국은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누군가의 가능성을 끝까지 믿고 싶은 마음.
그 하나면,
나는 앞으로도 이 길을
조용히 그리고 기꺼이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