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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건넨 프러포즈

무뚝뚝한 경상도 남편의 감동적인 반전

by 해루아 healua

결혼에 대한 로망이 크게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결혼을 준비하면서 내 마음속 로망은 하나둘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중 첫 번째는 바로 '프러포즈'였다. 뻔한 프러포즈가 아니어야 했다. 여자인 내가 먼저 프러포즈를 하고 싶었다. 남편에게 먼저 표현해주고 싶었다.


나는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두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 계획은 무조건 성공해야만 했다. 눈치 빠른 남편에게 들키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터였다. 이전에 먼저 프러포즈를 했던 지인이 내게 강력하게 추천해 준 방식이 있었다. 오히려 프러포즈를 준비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더 커지며 확신하고, 결혼 전 메리지 블루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는 친한 친구의 경험담을 들었다.


프러포즈 디데이는 7월 16일, 결혼식 4개월 전이었다. 우리가 함께 여행 갈 숙소에서 몰래 준비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남편이 저녁 장을 보러 간 사이, 퀵으로 받은 꽃다발과 함께 서둘러 준비를 시작했다.


프러포즈 준비물은 이러했다. 우리 사진으로 레터링 된 케이크, 승진 축하 토퍼 (남편이 결혼과 동시에 빠르게 초고속 승진했다.), 꽃다발, 그리고 제작한 액자 편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USB에 담긴 프러포즈 영상이었다.


내 친구들과 남편의 여동생을 비롯해, 중고등학교 찐친들, 대만 친구, 개그맨 친구 부부, 우리를 소개해준 대학교 친구, 그리고 회사 동료 등 정말 많은 지인들이 이 이벤트에 기꺼이 동참해 주었다. 그들의 진심 어린 축하 메시지에는 깊은 울림이 고스란히 영상에 담겨 있어 감동이 밀려왔다. 영상을 편집하는 내내 나 또한 울컥했고, 행복이 가득했다.


영상 속 나는 남편에게 진심을 전했다. 남편에게 건넨 마지막 말은 우연히 알게 된 '짝지'였다. 경상도에서는 친한 짝꿍이자 평생의 파트너를 뜻하는 말인데, 이 특별한 단어에 마지막 위트를 담고 싶었다.


"너를 만나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고, 그렇게 이끌어 준 너에게 너무 고맙다. 앞으로 모든 순간을 함께하고 싶어, 내 짝지 할래?"


드디어 문 도어록에서 삐비빅 소리가 들렸다. 남편의 깜짝 놀라는 표정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삼각대를 몰래 설치해 놓고 TV에 USB를 꽂아둔 채 식탁에 앉아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남편이 들어서자, 피곤할 테니 잠시 쉬고 있으라고 말하며 동시에 TV 영상을 틀었다.


15분의 긴 고백 편지의 영상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갑자기 두 눈이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영상이 끝나기도 전, 눈물은 이미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렀다.


그러고는 나에게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여자가 먼저 프러포즈를 하다니... 남자로서 꽃을 받아보는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야. 내가 먼저 했어야 했는데... (짧은 침묵)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영상을 보며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잘 느껴져서 너무 감동이다. 진심으로 고마워. 내가 더 잘할게."


남편의 눈시울을 붉게 한 내 프러포즈는 성공적이었다.

그것은 바로, 무뚝뚝한 경상도 남편에게서 터져 나온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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