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다정함을 만나다
첫 만남의 다정함만으로도 나는 이 남자에게 마음이 기울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F 남편이 내 인생의 동반자가 될 거라는 확신, 그 결정적인 사건은 첫 만남 후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어느 밤에 제대로 드러나게 된다. 지금도 생각하면 이불킥을 백 번 하고 싶지만, 그만큼 이 사람의 진가를 알게 된 날이기도 하다.
어느 날, 나와 남편, 그리고 소개해준 친구 부부까지 다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친구 부부는 술을 잘 마시고, 또 잘 취하는 편이었다. 평소 나는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고, 필름이 끊기는 일은 36년 인생에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술자리가 끝나면 취한 친구들을 데려다주는 역할을 도맡아 해왔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술이 달았고, 양고기도 맛있었고, 함께 한 사람들이 좋았다. 모든 것이 좋은 날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결국 나는 친구들을 데려다 주기는커녕, 내가 사고를 치고 말았다.
술자리가 끝났을 때, 친구 부부는 이미 만취 상태였고, 우리 중 남편만 비교적 멀쩡했다. 마지막 기억에는 2차꼬치집에서 넷이 즐겁게 술잔을 부딪히며 웃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남편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내가 꼬치집에서부터 필름이 끊긴 것 같다고 했다. 내 친구는 만취하면 손가락을 이리저리 찌르며 춤을 추고, 함께한 사람과 꼭 셀카를 찍는 주사가 있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친구와 화장실에서 셀카를 찍고 그 뒤로는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나 역시 술에 취해 꼬치집 앞 삼거리에서 고꾸라져 대자로 누웠다고 했다. 힘이 빠져 있는 상태라서 힘겹게 일으켜 세우면 다시 앞으로 인사하듯 쓰러짐이 반복되어 위험해 보였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같이 일으켜 세울 정도였다고... 난 절대 믿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내가?...
그 후,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는데, 이미 나는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지경이었다. 간신히 집 앞택시에서 내리면서 비틀거리다 그만 발을 헛디뎠다. 쿵! 넘어지면서 머리를 찧었는데, 심지어 우리 집 문 앞에 얼굴을 돌진해 박아버렸다. 그리고... 그 충격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너무 취해서였을까. 집 앞 자동문 앞에서 그대로 토를 하고 말았다.
정말이지, 살면서 그런 추태는 처음이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남편은 당황했을 텐데도 묵묵히 나를 부축했고, 내 핸드폰으로 급하게 연락을 받은 남동생이 집에서 내려왔다. 상황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남동생은 수건을 들고 나와 내가 토한 것을 치우고, 남편은 흔들리는 나를 안아주고 어깨를 두드려주며 괜찮다고 다독였다. 옷을 거꾸로 입는 것도 잘 모르는 둔한 나는, 앞니가 부러진 것도 다음날이 돼서야 알았다. 입술도 터져있었다. 아픔보다 더 큰 것은 수치심이었다. 나라면 창피할 법도 한데, 남편은 곁을 떠나지 않고 남동생과 함께 뒷수습을 도왔다. 그 모든 상황이 수습되고 나서야 남편은 혼자 택시를 타고 새벽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숙취보다 더한 것은 전날 밤에 대한기억의 부재와 끔찍한 부끄러움이었다.
남동생은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누나, 아빠랑 똑같네. 어제는 왜 이렇게 술을 먹었어!"
"..............."
"그나저나 어제 그 사람 누구야? 남자친구야? 누나보다 나이 많아 보이던데?"
"어... 남자 친구야... 아... 그리고 나랑 동갑이야."
"근데 그 남자는 진국인 것 같더라. 남자는 남자가 알잖아.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누나 남자친구들 중에서 제일 낫네. 누나를 많이 아끼나 봐. 아니면 그렇게 절대 못하지."
동생이 저렇게 말한 것을 보니 최악의 모습이었던 것이 확실하다. 원래 빈말이라곤 절대 안 하는 팩트 폭격이 같은 남동생이었다. 손에 쥐어있는 핸드폰 카톡에 1이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하나는, 남편의 카톡 메시지. 다른 하나는, 친구가 보낸 사진 한 장과 카톡 메시지였다.
부끄러운 마음에 실눈을 뜨고 두 번째 손가락으로 살짝 카톡을 눌렀다.
"괜찮아? 어제 많이 놀랬을 텐데..." 남편의 카톡이었다.
그다음, 친구의 카톡을 보았다. 맙소사. 화장실에서 찍은 셀카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놀랐을 정도면, 내가 도대체 어떻게 행동했을까, 얼마나 망가진 모습을 보였을까.' 이불킥을 백 번 해도 모자랄 것 같았다. 볼 낯짝도 없었다. 도저히 궁금증을 참을수 없어 집 1층 CCTV를 돌려봤다.
그리고 마주한 나의 모습은... 와, 이건 뭐. 하, 말이 안 나왔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심하고 처참한 모습이었다. 나라면 상대방에게 저런 추태를 봤을 때 그냥 돌아섰을 수도 있을 텐데. 영상 속 남편은 시종일관 나를 부축하고, 넘어졌을 때는 안아주고, 당황한 기색 없이 모든 것을 묵묵히 내 더러운 토를 치워주고 있었다. 심지어 나를 다독이며 안심시키는 모습까지...
그 영상을 보고 나는 확신했다. '이런 남자가 어딨냐.' 내 모든 추한 모습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사람. 나의 가장 밑바닥까지도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 최단기간에 이런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에 난 자괴감이들었고, 남편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겉으로 드러나는 다정함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극한의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헌신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이 남자야말로 내가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날 밤의 사건은, 나에게 이 남자와의 결혼을 결정하게 한 진정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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