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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F 남편의 다정한 거리

by 해루아 healua


결혼 전, 제 머릿속에 강하게 맴도는 말이 있었다.


그 말을 해주신 분은 35년간 결혼생활을 이어온 지인이자, 인생 선배였다.


“결혼은 뽑기 같은 거야. 그전엔 몰라. 뽑아봐야 알지, 꽝인지, 상금인지. 어쩌면 운의 영역일 수도 있어. 정말 신중해야 해.”


이 이야기를 귀에 피가 나도록 많이 들었다. 안 그래도 알겠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참고만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내 결혼이기에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막막했다. 그리고 남편과 갈등이 생기면 어김없이 그 말이 생각나곤 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당사자들만 아는, 내가 이 남자에게 깊이 마음이 기울었던 계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와 내 남편을 이어준 대학교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와 같은 대학교 다른 학과였다. 난 중국어학과, 친구는 법학과.


우리는 함께 통학하면서 가까워졌고, 졸업을 해서도 자주 만남을 이어갔다. 심지어 내가 중국 유학생활을 할 때, 함께 북경을 여행했던 친한 사이였다. 그 친구는 남편과 러닝 모임으로 알게 된 지인이었다.


당시 나는 솔로로 지내기로 마음먹고, 20년 지기 친구와 우울한 실버타운의 낭만을 꿈꾸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소개해준 그 친구의 결혼식을 다녀온 후에 얼마 뒤 그 친구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너 소개팅 안 해볼래?"


"소개팅? 흠... 또? 괜찮아, 고마워."


"아니야, 이번에 한 번만 더 받아봐. 너랑 진짜 잘 맞을 것 같아."


사실 나는 그동안 내가 만남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가는 편이었지, 소개팅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정말 나이가 들수록 소개팅 기회가 없어질 것 같아 노력했다. 사실 이 친구에게 이전에 소개받았던 남자는 겉모습과 달리 너무나 미성숙했다.


한 번 만났는데 은근슬쩍 손을 잡으려 하지 않나,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6억짜리 자가를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지 않나, 궁금하지도 않은 자신의 특허증까지 들이밀며 자랑하지를 않나. 속이 울렁거렸다.


그런 남자는 딱 질색이다.


그래서 소개팅이 끝난 후 먼저 친구에게 솔직하게 고백했다. 마음은 고맙지만 그 남자는 정말 무례하고 별로였다고. 친구는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며 모임에서는 참 좋은 남자였다고 말했다.


그렇다.

모임에서의 친구 관계는 알 수 있지만, 이성 관계로서는 전혀 알 수 없다. 아무리 친해도 진실을 알 수 없다.


그 남자는 그 후에도 장문의 사과와 고백의 메시지를 보냈고, 나는 받아주지 않았다.


1년 뒤,

친구가 또 소개를 시켜준다길래 뜸을 들였다. 친구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지 이렇게 말했다.


"이번엔 그냥 밥만 먹고 와. 그 사람 테니스 잘 치고, 조경 쪽에서 일하고, 담배 안 해."


역시나 매력적이지 않았다. 내가 테니스를 좋아하지도 않고, 조경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 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말에 친구에게 '알겠다,고맙다'라고 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카톡 프로필 사진도 보지 않았다. 남자들도 여자 얼굴과 사진이 다르면 실망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도 보정 안 된 얼굴로 프사를 바꾸려다가 풍경사진으로 바꾼 상태였다.


소개팅 당일, 약속 장소에서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첫인상은 정말 평범한 사람 같았다. '느낌이 온다' 하는 강렬함은 없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더 편해졌다.

처음 만났을 때는 몰랐는데, 식당에 앉고 보니 서울말이 아니었다.


"혹시 고향이 어디세요? 억양이 사투리 같아서...

맞죠?"


"아. 네. 저 경상도에서 왔습니다."


나는 사투리가 정겹고 좋다. 특히 경상도 사투리는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남편이 대화 도중에 무슨 말을 해도 그저 사투리만 써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투리로 말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이렇게나 배꼽 잡게 했나?


그런데... 식당을 걸어올 때부터 약간 시큰했던 나의 뒤꿈치가 점점 더 이상해졌다. 식사 도중, 뒤꿈치가 저리고 쓰라렸다. 살짝 보니...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고, 부끄러웠다. 그 구두는 얼마 전에 구매한 새 구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 간다고 말하고 편의점으로 쩔뚝거리며 걸어갔다.


편의점이 가까이 있을 줄 알았는데... 10분은 걸어간 것 같았다.




무사히 도착해서 대일밴드를 사고 붙이려 할 때쯤, 카톡이 울렸다.


"어디세요?"


"아... 죄송해요.

사실, 뒤꿈치가 까져서 편의점에 왔어요."


"저에게 편하게 말씀하시지. 여기도 레스토랑이라 대일밴드가 있을 거라 제가 말하면 되는데..."


순간, 이 따뜻함은 뭐지?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자상함과 다정함은 이런 것이었나?


"아... 네... 많이 기다리셨죠? 얼른 갈게요!" 나는 서둘러 대일밴드를 붙이고 레스토랑으로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저 멀리서 내 핸드백을 조심스럽게 들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설마 그 사람인가?' 했는데, 설마였다.


"뭐 하세요? 제 가방 안 들고 계셔도 되는데..."


"아니에요, 해루아 씨 가방은 잃어버리면 안 되잖아요. 잘 챙겨야죠. 발이 많이 아파 보여요.


시간도 늦었으니 집 앞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아니에요. 그냥 제가 갈 수 있어요."


"저도 이렇게 첫날 다친 상태로 그냥 가시면 마음이 불편해요. 그리고 소개팅 첫날이라도 저 또한 데려다준 적은 처음이에요. 오늘은 그냥 타세요."


이 남자의 다정함이 진짜일까? 내가 알던 경상도 사람의 이미지와는 달랐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자연스러움과 부담스럽지 않은 멘트와 제스처 모두 좋았다. 늘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나의 이상형, 바로 그 다정한 성격이었다. 이날의 다정함만으로 나는 이 남자에게 조금 마음이 기울었다.


하지만 사실, 이 남자가 내 인생의 동반자가 될 거라고확신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그 후의 어느 밤에 제대로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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