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허기지면 신경이 예민해진다는 것.
그래서 식사 후에는 꽉 막혔던 마음의 응어리가 스르르 풀린다. 어찌 보면 참 단순한 일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우리에게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생겼다.
이제부터 대문자 F인 남편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결혼 3년 차, 나는 매일 요리한다. 배달 앱조차 없다. 요리가 즐겁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맛있게 먹는 남편을 보는 것이 좋다. 남편은 500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대기업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 경상도에서부터 고군분투하며 상경했고, 15년째 독립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원하던 기업에 합격한 뒤로는 신입 때부터 쭉 기숙사 삼시세끼 밥이 전부였다. 찐 밥이라 배도 빨리 고파지고, 어머니의 집밥을 그리워하는 남편을 보면 늘 마음이 아렸다. 그래서 이 남자와 결혼하면 매일 맛있는 집밥을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을 자주 요리해 줬다. 매일 질릴까 봐 요리법을 다르게 해서 저녁상에 올리곤 했다. 남편은 불맛 나는 제육볶음을 특히 좋아하는데, 역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고기다. 그렇게 집밥을 즐기던 우리는 오랜만에 저녁 외식을 하기로 했다.
메뉴는 바로 '미나리 삼겹살'이다.
남편과 나는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삼겹살 2인분을 빛보다 빠르게 주문하고 솥뚜껑 위에 잘 눕혀진 고기들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키며 구워지는 고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커다란 솥뚜껑 위에는 고기와 함께 잘 익은 김치, 콩나물, 그리고 솥뚜껑을 가득 채운 미나리가 노릇노릇, 탄 듯 안 탄 듯 겉바속촉으로 익어갔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고소한 냄새만으로도 이미 포식한 기분이었다.
남편은 배가 고팠는지 제일 좋아하는 마늘을 재빨리 불판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파겉절이와 함께 고기를 쌈 싸 먹었다. 그렇게 평화롭게 고기를 먹던 중,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갑자기 남편의 얼굴이 벌게지더니 배를 부여잡는 것이 아닌가. 허기조차 잊은 채 남편을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남편이 겨우 입을 열었다.
"속이 쓰려."
"왜?"
"마늘 잘못 먹었나 봐."
"헉… 그거 중국산 마늘이라서 엄청 맵고 아린가 보다. 많이 아파?"
"아니, 괜찮아… 배고픈데 얼른 먹어."
"아니야, 아프면 내가 약 좀 사 올까? 바로 편의점도 있고… 약국이라도 다녀올까?"
"괜찮아, 배고프잖아. 일단 먹어."
"응…"
남편의 말에 나는 다시 삼겹살 흡입에 집중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의 표정을 보자 그제야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짜 괜찮아?"
"어… 근데 속이 좀 아프네?"
"지금이라도 안 늦었잖아, 자기도 배고픈데, 내가 지금 약 사 올게."
"아니야… 괜찮아." "진짜지? 괜찮은 거 맞지?"
"…………."
나는 다시 남은 삼겹살을 마저 해치웠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물었다.
"볶음밥 주문해도 돼?"
남편의 얼굴은 일그러지다 못해,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볶음밥?????"
나도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니야, 안 먹을래. 바로 약국 가자."
나는 서둘러 옷을 챙기고 계산한 뒤, 재빠르게 두둑한 배를 챙겨 약국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남편은 약을 먹더니 곧장 침대에 누웠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남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진짜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
"응? 뭔데?"
"아까 볶음밥이 배에 들어가? 난 이렇게 아파서 한 입도 못 먹고 있는데, 고기 먹고 볶음밥까지 먹어야 했어? 나랑 다르다. 난 자기 아프면 아무것도 입에 들어가지 않던데… 좀 충격이다."
"무슨 말이야~ 내가 먹다가 걱정돼서 몇 번을 말했잖아, 딴소리하기는. 중간중간 내가 먹으면서 '어? 약국 갔다 올까?'라고 물어봤는데 본인이 계속 괜찮다고 말했잖아."
"하… 답답하다. 그 친구 누구지? 베프한테 전화해 봐. 내가 냉정하게 물어봐야겠다."
"뭘 물어봐?"
"아니, 내 심정을 알아주지 않잖아. 그 친구 나랑 같은 F잖아. 와… 오늘 너를 제대로 알게 됐다. 완전 T였구나."
"아니, 봐봐. 솔직히 아프면 약 사 와서 빨리 먹고 나중에 마저 먹는 게 낫지. 서로 불편하고 비효율적이잖아. 그리고 난 내가 죽을병 아니면 그렇게까지 안 해. 빨리 낫는 게 중요하지."
남편은 다시 한숨을 쉬더니 말을 잇다가 멈췄다.
"아니. 나도 알아. 해결 방안을 말해달라는 게 아니라고. 난 그저 공감을 원했을 뿐이야. 근데 자긴 먹는 데만 열중하잖아. 진짜 서운하더라…"
내가 이어 말했다.
"설령 내가 아파도 자기가 먹고 나를 간호해야 힘나지. 왜 둘 다 그러고 있어야 돼? 상황을 빨리 해결해야지."
남편은 연이어 얼굴이 붉으락해지더니 말을 뻥긋하다가 결국 멈췄다.
이 사건을 통해 남편은 나를 대문자 T, 나는 남편을 대문자 F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부부 사이에서 별것도 아닌 일로 마음이 다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별것 아닌 것'이 사실은 '별것'이었다. 아주 작은 것 하나에도 마음이 크게 다칠 수 있는 것이다.
고기 앞에서 극명하게 갈라졌던 우리의 마음은 결국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이 곧 우리의 '다정한 거리'를 만든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감정적 공감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F(Feeling) 남편은 아픔을 함께 나누고 그 감정에 머물러주기를 바랐고,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려는 T(Thinking) 아내는 아픔을 빠르게 극복하고 상황을 개선하려 했다.
이처럼 서로의 시선이 달랐던 순간은, 우리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해결책이 아닌 공감일 때도 있고, 때로는 감정적 지지보다 현실적인 도움이 절실할 때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때로는 한 발짝 떨어져 서로의 시선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그 어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깊은 공감과 유대감을 선물한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아끼며 함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