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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신고 언제 할 거야?

현실 탐험의 종착점

by 해루아 healua


남편을 만났을 때, 나는 사계절까지는 아니어도 세 계절을 함께 보내고 나서야 결혼을 결심했다. 그전의 쓰라린 연애 경험 때문이었다. 어렴풋이 기억난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과거의 상처는 무뎌지는 것이지 결코 잊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자는 사랑을 운명이라 믿고, 남자는 사랑을 선택이라 여긴다. 그래서 같은 사랑을 하면서도 다르게 끝난다."


내 마지막 연애의 끝은 이랬다. 그 깊은 상처를 메우는 데는 '공백의 시간'과 나를 지키려는'치열한 노력' 모두 필요했다.


결혼은 제2의 인생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그러니 아무리 고심해도 쉽지 않은 것이 바로 결혼이다. 30대가 되면 어느 순간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날카로워진다. 남녀는 서로의 조건, 성격, 외모를 빠르게 스캔하고 결정을 내리곤 한다. 나는 더욱 그랬다. 상대방이 나를 너무 맞추려 하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결혼 후에도 이렇게 맞춰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절대 아니다'였으니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 하는 건 당연하다. 연애 초반을 지나 중반, 내가 편해질 때쯤 상대방의 본모습을 파악하는 편이다. 술자리나 여행, 그 사람의 친구들과 부모님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어느 순간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시간을 헤아리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확신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의 확인 차원에서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또 변수는 있더라. 아무리 내가 결심이 섰다 해도, 결혼 후에는 또 모를 일이니까. 미디어 때문인지, 드라마 때문인지, 지인들의 말 때문인지, 원래 긍정적인 말보다 부정적인 말이 더 강력하게 다가온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결혼을 하기 위해선 나를 잘 알고(자기 객관화) 내가 나를 온전히 사랑해 줄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남편을 보는 나의 신중함은 어느새 의심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 또한 운명이 아닌 '선택'으로 남자를 만났고, 그 선택한 남자는 내 남편이 되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남편은 순수함이 남아 있었으며, 다정하고 유쾌했다. 친한 친구들도 '천생연분'이라며 나와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을 만났다고 축하해 주었다.


결혼 후, 우리는 서로 사랑했지만 신혼 초에 겪어야 할 갈등들이 꽤 많았다. 서로 다른 사소한 습관조차 갈등을 빚었다. "결혼식 하고 나면 정말 현실이다"라는 말이 딱 맞았다. 그래서 크고 작은 다툼들을 겪으면서, 혹시 남편이 돌변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어 결혼 후 '혼인신고'는 최소 2년 뒤에 하자고 마음먹었다. 혹여나 남편이 혼인신고를 이야기할 때면 재빨리 화제 전환을 했다.


혼인신고를 미루고 싶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우선순위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이 사람을 정말 믿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남편에 대한 내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일단 살아보면서 결정하자'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컸다.


둘째, 다시 이직할 경우 혼인 여부가 커리어에 미칠 수 있는 우려.


셋째, 아이를 출산하거나 자녀 계획이 확실해지면 하고 싶다는 생각.


넷째, (가장 후순위였지만) 신혼부부 특별공급이나 전세자금 대출 등 주거 관련 혜택에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미혼' 상태가 더 유리하다는 현실적인 이유.




어느 날, 또 사소한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뱉어버렸다.


"이래서 자기랑 혼인신고는 못 해. 혹시 모르니까…"


남편은 충격을 받은 듯, 다시 되물었다.


"뭐라고 말한 거야? 혹시 뭘 몰라? 설마…."


"아니… 난 이렇게 해선 확신이 안 생겨."


"그럼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고만 이야기하면 되지, 왜 선을 넘으려고 해."


"나도 모르게 묵혀 있던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나 봐."


남편은 깊은 한숨을 쉬며 나에게 말했다.


"진짜 서운하다. 나는 너랑 결혼한 후 혼인신고는 바로 하고자 마음을 굳게 먹고, 남편으로서 책임감을 다하자고 다짐을 했어. 남자가 혼인 신고 한다는 마음도 굉장히 의미가 큰 거야. 난 아이 계획도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항상 널 기다렸어. 해루아, 너는 아니었구나… 나만 혼자 생각했네."


그 순간, 긴 정적이 흘렀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말 예쁘게 안 해서 미안해,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나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했고, 그 시간은 1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남편이라는 사람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은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부족한 부분은 '그러려니' 하면서 남편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고단하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니, 비로소 희망이 보였다. 점차 남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자리 잡았고, 이제는 함께 나아갈 수 있겠다란 확신이 들었다.


우리는 마침내 결혼한 지 1년 1개월 후인 2024년 12월 31일에 혼인신고를 하게 되었다.


그날, 법적인 부부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종이 한 장의 의미를 넘어, 지난 1년 간의 고민과 노력을 끝내고 서로에게 온전히 확신을 주는 순간이었다.


우리의 혼인신고는 오랜 시간을 거쳐 단단해진 우리 관계의 상징이자, 앞으로 함께 만들어갈 삶에 대한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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