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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냐, 사랑이냐?

by 해루아 healua

부부싸움의 단골 주제, 바로 '소비 습관'이다. 많은 부부가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우리 부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남편의 빈틈없는 소비 생활은 내게 때로는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때로는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남편은 지방에서 상경해 신입 시절부터 월급의 70%를 저금했다. 5년 치 가계부를 엑셀로 말끔하게 정리해 내게 보여줄 땐 그 치밀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이지 단 하나의 빈틈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숨 쉴 틈이 없었다. 지난 일이지만, 실수로 날아가 버린 5년 치 가계부에 남편은 한 달 내내 우울해하며 자신의 역사가 없어졌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주말 어느 오후, 남편은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씨익 웃었다.


"자기야, 내가 재밌는 거 보여줄까?"


"응, 뭐야?"


"내가 신입 시절에 야근할 때 늘 회사 주변 7~8천 원짜리 식당만 찾아다녔어. 맛있는 것보다 돈 모으는 게 재밌었거든."


그때 겉으로는 대단하다며 극찬했지만, 속으론 불편했다. 사실 멋있는 부분임은 분명했지만,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가계부에는 7~8천 원대의 저녁 외식 지출 기록만 빼곡했다. 만 원이 넘는 밥값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약속이 있는 날이 아니면 커피는 사무실 내 커피 머신을 이용했고, 회사 사택에 살며 삼시 세끼를 거의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는, 그야말로 '알뜰살뜰' 그 자체였다. 담배도피우지 않으니 나갈 돈이 더 없었다.


결혼 후, 남편의 옷들을 정리하다가 더 놀라웠다.

거의 모든 옷이 7년 이상 입은 옷이었고, 마치 새것처럼 애지중지 관리되어 있었다. 모자, 신발 할 것 없이 모두 말끔했다. 속옷들까지 애지중지 관리했다는 점에선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제 이 남자와 함께 살아야 하는데, 내 눈앞이 조금 캄캄하다...'


물건에 크게 애정 없이 털털하게 관리하는 나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프러포즈 날, 내게 명품 가방을 선물해 주었을 때의 놀라움은 몇 배나 컸습니다. 가방보다도 '남편이 그 물건을 살 때의 심정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남편은 말했다.

"내가 돈을 아끼지만, 해루아를 더 아끼니까 받아. 결혼식 갈 때 여자들은 다들 메는데 하나정돈 있어야 되잖아."


가방보다 그 말과 진심 어린 눈빛에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한편으론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감사히 받았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서로의 다름 속에서도 깊은 사랑과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결혼 후, 남편을 위해 요리를 매일 했다. 친구와 약속이있어도 퇴근 시간 안에는 들어와 모든 요리를 준비했다. 결혼 전까지 회사에서 대충 끼니를 해결했을 남편이 집밥을 그리워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 새벽 6시~6시 반에 일어나 아침엔 제철 과일, 야채주스, 토스트, 견과류 등을 준비하고, 저녁에는 한식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제육볶음, 김치찌개는 물론 우삼겹 된장찌개, 토란국, 고추장 애호박찌개 등 새로운 메뉴들을 끊임없이 선보였다.


"어떻게 매일 요리를 해?" 아마 궁금할 것이다.


현재 아이를 준비하며 일을 쉬고 있다. 남편도 그걸 원했다. 직전 고된 회사생활 끝에 심한 방광염으로 매일 고생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제안했다.


"내가 일하면 되니까, 자기라도 하고 싶은 일 맘껏 찾아봐. 독서도 많이 도움 돼. 이왕 이렇게 된 거 좋게 생각하고 우리의 아이를 먼저 준비해 보자."


남편의 배려 덕분에 건강도 되찾고, 밤 낮이 바뀌었던 생활 패턴을 바꾸고, 11시 전에 매일 잠드는 남편과 같이 잠들다 보니 7시간 이상 숙면도 취하고, 2025년 1월부터는 블로그에 글을 써왔다. 현재는, 독서모임도 운영하고 있으며, 브런치 작가도 되었다.





다시 소비 습관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남편과 돈을 합치고, 외벌이 생활비와 용돈 안에서 알뜰하게 쓰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매일 다른 메뉴로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어 식재료를 왕창 샀다가 남편과 트러블이 생기고 말았다.


"해루아, 난 색다른 음식 안 먹어도 돼. 다 맛있어. 식비를 아껴보자."


"해루아, 계속 쿠*, 컬*를 몇십 분째 보는 거야? 멤버십 해지하는 게 좋겠다."


"해루아, 이 옷과 비슷한 것 집에 있지 않아?"


스트레스였다.


먹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맛있게 해 주려 노력하는데 자꾸 으름장을 놓는 남편이 미웠졌다.


그 이후 난 'K-주부'로서 마트와 인터넷에서 가격을 비교하며 식재료를 저렴하게 구매했다.


그런데 그때, 남편은 내게 또 이렇게 말했다.


"해루아, 고민하고 결정하는 시간이 아깝다. 가격 차이 안 나면 그냥 사."


그 말에 나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아니, 자꾸 왜 아끼라는 소리만 하는 거야! 외식도 이 정도면 아끼는 거고, 나에게 이 정도 생활비를 줬으면 전적으로 맡겨야 하는 거 아니야? 결국 아낄 거면서 왜 생활비를 그 정도 주는 건데? 용돈도 왜 터치하는 건데?!"


화내는 모습에 남편도 당황했다. 서로 풀다가도 다시 부딪히기를 반복하며, 우리는 서로가 생각하는 '돈'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급기야 내가 좋아하던 요리에 대한 마음마저 식어버렸다.


나는 '먹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기에, 결혼하며 먹는 것까지 아껴야 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갈등으로 1년여 동안 서로의 소비 습관 차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괴롭고 힘들었다.


하지만 서로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있었다.


난 무지했던 경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위해 경제 관련 서적도 보고, 실용적인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며 경제관념을 키웠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남편의 생각을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반대로 남편은 나를 보며 자신을 옥죄었던 '돈'에 대해 여유가 생겼다. 무조건 참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 '돈' 때문에 소중한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함께 노력하며 변해가고 있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의 소비 습관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돈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에 대한 감정을 먼저 풀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의 감정과 인식을 맞추는 연습이 필요했다. 우리는 오해가 생기기 전에 '소비'에 대한 생각들을 솔직하게 대화하며,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감정까지 다 들춰내었다. 마침내, 우린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이전의 소비 습관보다 소비를 반 이상 줄여 남편에게 도움이 되려 노력하고 있다. 남편은 자신의 소비 기준에 나를 맞추려 하지 않고, 내가 하는 노력들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받아들여주었다.


그제야 비로소 '가정의 평화'가 찾아왔다.


이제는 '소비 문제'로 더 이상 크게 다투지 않는다.

그랬다면, 이러한 글조차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돈'보다 서로의 '감정'을 먼저 나눈다.


결국, 우리 부부는 '돈'이 아닌 '마음'을 합치면서 비로소 진정한 동반자가 되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나아가는 이 과정이, 어쩌면 모든 부부에게 가장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숫자 뒤에 숨겨진 서로의 진심을 먼저 헤아리는 것, 그것이 바로 관계의 깊이를 더하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는 지금도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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