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내가 가장 많이 다투는 주제는 바로 '사과'였다. 갈등이 생기면 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남편은 바로 풀기를 원했다. 남편 말대로 즉각 맞대응하면 큰 싸움으로 번지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했다.
어느 날, 남편은 나에게 장난치듯 이야기했다.
“안강최의 얽힌 이야기 알아? 최 씨가 강 씨 1,000명을 못 이기고, 강 씨 1,000명이 안 씨 1,000명을 이기지 못한대. 좀 져줘라.” 라며 알 수 없는 고집을 피웠다.
사이가 좋을 때는 더없이 좋았지만, 싸울 때는 서로 맹수가 됐다. 마치 사자와 호랑이처럼. 남편도 주관이 확실했는데, 연애할 땐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 그 강한 주관이 때로는 가장 미운 모습이 됐다. 나 또한 내 주관이 만만치 않다는 걸 인정한다,
우리의 싸움 끝에는 늘 남편이 먼저 사과하고, 손을 내밀었다.
어느 날, 여느 부부처럼 아주 사소한 다툼으로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남편이 내게 말했다.
“내 탓하지 말고, 자기 잘못을 이야기하자. 서로 풀 때, 잘못한 점만 지적하면 도돌이표야. 왜 해루아는 먼저 인정 안 하고 사과를 안 해?”
내가 답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잖아. 그리고 난 납득이 돼야 해. 억지로 사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남편은 황당한 얼굴로 이어 말했다.
“나는 먼저 사과하잖아. 나도 매번 고비야. 하지만 ‘그래, 내가 먼저 풀어야지’ 하면서 너에게 다가간다고!”
“그렇다고 상대방에게 사과를 강요하는 건 아니야.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바로 사과를 하지. 그런데 그게 아닌데 왜 먼저 사과를 해야 해? 억울한 거야?”
“억울? 그렇게 말하지 마. 원인이 있으니까 결과가 있는 거야. 인정을 좀 해라!”
남편과 이런 대화가 오갈수록 두통이 왔다. 정말이지 집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두 시간쯤 흘렀을까. 남편은 다시 내게로 와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미안해. 우리 다시 이야기할까?”
다시 식탁에 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우리의 눈빛에서 경계심이 사라지고 차분한 평정심이 돌아왔다.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스스로 잘못한 것 먼저 이야기할게. 내가 사과받으려고 기대했던 것 미안해. 마음에 그동안 쌓였었나 봐. 내가 서운한 감정을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해버렸어. 우리의 싸움이 항상 논리와 합리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다는 걸 알아. 그런데 자기가 항상 감정보다 사실에만 초점을 맞춰서 서운했나 봐. 그래서 내가 자기를 '고집'스럽다고 만 생각했어. 기분 나쁘게 만들어서 미안해.”
그 말을 들으니 매번 알아달라고 공감을 원했던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사실 매번 '미안하다'라고 손 내밀기 쉽지 않은데… 열 번 중 아홉은 먼저 남편이 갈등을 풀으려 노력했다. 그때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내게는 남편의 행동을 분석하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먼저라 매번 사과가 늦어졌던 게 미안했다. 어쩌면 남편이 나보다 포용력이 더 큰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문제를 시시비비, 맞고 틀리고를 따져 내 감정만 우선시하고, 남편의 감정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못했던 날들이 스쳐지나갔다.
-미안하지 않아도 사과하는 남자의 마음은, 진정으로 그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만한 '마음의 힘'이 있고 '건강한 사람'이다.
<김창옥 님의 강연 내용 중>
이 말들을 통해 성향이 나와 다른 남편을 이해하려는 내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사과'의 의미를 단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상대방의 상처받은 감정을 위로하고 공감하여 관계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다시 생각하게 됐다. 앞으로는 나도 먼저 손 내밀고 공감하는 사과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