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과 세심함 사이, 나의 시선이 만든 경계
남편은 아직도 화들짝 놀랜다. 내가 물건을 조심히 다루는 않는 것을.
난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남편, 미안해. 연애할 때는, 조신한 척 좀 했어."
가끔 남편은 말한다.
“우린 성별이 바뀐 것 같아. 자기가 남자고, 내가 여자 같아. “
처음엔 웃으며 넘겼다.
"뭐야,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래~“
하지만 함께 살아보니,
이 '다름'은 생각보다 깊고 넓은 강처럼 다가왔다.
여름엔 내가 힘들고, 겨울엔 남편이 힘들어지는 계절이 온다. 여름과 겨울, 몸에 열이 많은 나는 침대에서 창가 쪽은 늘 내 자리다.
더운 여름에도 에어컨을 켜고 싶지만 남편은 “배가 아프다”며 조심스레 부탁했다. 스파이더맨처럼 벽에 붙어 찬 기를 느끼며 잔 날도 많았다.
비 오는 날엔 빗소리 들으며 자고 싶었는데, 남편은 또 이야기한다.
“나 빗소리 때문에 잠을 잘 못 자겠어. 내일 출근인데, 좀 배려해 주면 안 될까?”
최근엔, 새들이 2층 창문에 날아왔나 보다. 나는 곤히 잠들어 있었고, 창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자기야, 새가 우는 소리 때문에 아침잠을 설쳤어. 지금이라도 이중 창문 닫아줘.”
“응 , 그래… 시끄러웠어? 하하하. “
나보다 힘들어할 남편을 위해 배려를 계속해왔다.
하지만 좋을 때는 괜찮았던 이 배려가, 싸울 땐 불만으로 쌓였다.
“왜 자기는 맨날 자기만 생각해! 나는 등에 땀띠 생길라 그래. 알아? 아우. 짜증 나. 오늘은 거실 소파에서 편히 잘 거야.”
나는 방문을 닫고 나와 에어컨 빵빵한 소파에서 편히 잠들었다.
그때, 남편은 나를 바로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아, 그래도 이건 아니지. 계속 이렇게 더울 때마다 싸울 때마다 소파에서 잘 꺼야? 안돼. 내가 사과할게. 내생각만 했어. 미안해. “
이렇게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마주하며 매일 살아가고 있다.
사실, 연애 시절 내가 남편에게 반한 이유는 ‘섬세함’ 때문이었다. 세심함과 남자다움은 공존하기 어렵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였다. 나는 섬세한 사람과 평생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남편은 조경학을 전공했고, 수목원에서 올해로 11년째 일하고 있다. 매 계절마다 조경 설계도에 맞춰 꽃과 나무의 색감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그 일처럼, 그는 우리 사이의 대화와 감정도 섬세하게 조율하려 애쓴다.
그 덕에 옷을 고를 때도 색의 조합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글씨를 쓸 때도 정성껏 마음을 담는다. 심지어 글씨체도 웬만한 여자 손글씨 보다 더 예쁘다. 편지를 읽다 보면,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감동이 진하게 전해진다. 올해 1월 남편과 나는, 함께 네이버 블로그 글쓰기를 시작했다. 남편은 나와 달리, 짧은 시간 안에 글을담백하면서도 단단하게 써 내려가서 놀랄 때가 많았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낯선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도 그는 늘 ‘경청’으로 마음을 전한다. 이 모든 성향은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다.
그 뿌리는, ‘세심함’이다.
물론 이 세심함은, 때로는 '예민함'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는 결국 나의 시선과 태도에 달려 있었다. 누군가는 피곤해할 ‘디테일’이 나에게는 다정한 배려로 느껴졌고, 그 다정함이 쌓여 오늘의 우리가 되었다.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려는 그의 태도는 나에게도 잔잔한 울림을 주었고, 우리가 함께하는 매일은 더 재밌고, 더 기대되는 하루로 채워지고 있다.
결국, 결혼 3년 차가 느낀 '결혼 생활'은 얼마나 잘 맞는지보다, 서로의 다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태도로 함께 살아가려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사랑은 성격이 잘 맞아서 유지되는 게 아니라 태도를 맞춰가며 지켜내는 것이다. 결혼 생활은 두 사람의 합이 아니라, 두 사람의 ‘노력’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리듬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지치고, 흔들리기도 한다.
만약 우리처럼 '다름'으로 인해 지치고 힘들어하고 있다면, "지금의 당신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꼭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연애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 서로를 처음처럼 바라보려는 태도가 결국 결혼생활의 따뜻한 온도와 다정한 거리를 지켜준다. 당신의 관계 속에서도, ‘다름’을 ‘다정함’으로 바꾸어가는 자신만의 태도를 만들어가길 바라본다.
작게 품고 있는 소망이 있다면, 언젠가 이 이야기가 책과 유튜브를 통해 생생한 웃음과 따뜻한 감동으로 전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