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수많은 시간을 견뎌온 당신에게

by 해루아 healua

오늘 오후, 짚 앞 도서관 햇살 가득한 창가에 앉아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다시 펼쳤다.

며칠째 손에서 놓지 못하던 책인데도 밑줄 그은 문장들은 여전히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러다 문득,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구절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인생은 치과 의자에 눕는 것과 같다. 최악의 고통이 곧 닥칠 거라 두려워하지만, 돌아보면 이미 끝나있다.”


짧은 문장 하나가 내 삶의 불안과 두려움을 정확히 꿰뚫는 듯했다. 덕분에 지나온 시간들을 가만히 되짚어보게 되었다.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밤잠을 설치던 신입사원 시절의 내 모습, 결혼과 함께 애써 쌓아 온 경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던 수많은 밤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비슷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당장 내일의 업무 보고를 걱정하는 청년 직장인도, 잠 못 드는 아이를 안고 지쳐버린 부부도, 다가올은퇴를 준비하며 마음이 복잡한 중장년도, 우리 모두 아직 오지 않은 고통을 미리 끌어와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불확실한 미래와 끝없는 경쟁 속에서, 어깨를 짓누르는 불안감은 이제 너무나 익숙한 감정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막상 그 시간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나면 깨닫게 된다.


‘어떻게든 버텨냈구나. 내가 생각보다 훨씬 단단한 사람이었구나’ 하고 말이다.


돌이켜보면 늘 그랬다.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질 것 같던 그 순간들도, 우리는 결국 지나왔다.


결국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건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곧 최악의 순간이 닥칠 것이라는 '상상'이다.


치과 의자에 눕기 직전의 그 두려움처럼... 정작 치료는금방 끝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하는 대신, 이미 수많은 시간을 묵묵히 견뎌온 나 자신을 믿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조용히 말을 건네고 싶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치과 의자'를 통과해 온 사람들이라고.


고통보다 더 무서운 건 우리의 상상이지만, 다행히 그 상상을 넘어설 힘 역시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한다.


우리 모두가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오늘의 이 힘겨운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그저 웃으며 말할 수 있는 ‘한때의 에피소드’로, 나를 더욱 단단하게만든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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