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문장들과 헤어지는 법

조급함에게, 이제 그만 안녕

by 해루아 healua
언제부턴가 쓸 거리가 무르익은 삶을 미리부터 살아 놓고 쓰자는 식으로 글과 세계를 바라보는 순서가 뒤바뀐 것 같습니다. 글을 쓰겠다는 막연한 조급함을 앞세우기보다 그전에 이야기가 될만한 삶을
먼저 살아내자는 것입니다.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 내용 중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의 한 구절이 쿵, 하고 마음에 내려앉았다. 며칠이고 머릿속을 맴돌던 이 문장은, 끝내 나를 멈춰 세웠다. 하얀 모니터 앞에서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스스로를 다그치던 시간들. 어쩌면 나는 그동안 글과 삶의 순서를 완전히 거꾸로 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마음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써야 한다'는 중압감과 '잘 써야 한다'는 강박감이 뒤엉켜, 조급함에 등을 떠밀리듯 노트북 앞에 앉기를 반복했다. 애써 긁어모은 단어들은 아무런 향기도 없이 메마른 활자의 나열일 뿐이었다.


'조급함'이라는 감정은 사람을 참 작아지게 만든다. 특히 글을 쓸 때 이보다 더 해로운 감정은 없을 것이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손이 이끄는 대로 자유롭고 풍성하게 뻗어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의 싹을 잘라버리니까. 어서 결과물을 내놓으라며 스스로를 닦달하는 동안, 정작 글의 씨앗이 될 소중한 순간들은 무심히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의 나와 다른 태도로 오늘을 마주한다면, 매일 반복되는 풍경도 결코 똑같을 수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늘 지나치던 길가의 이름 모를 들꽃에 눈길을 주고, 매일 마시는 차의 첫 모금이 주는 온기에 집중하는 순간. 세상을 보는 각도가 아주 조금 달라졌을 뿐인데,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는 우주처럼 무궁무진해진다.


결국 좋은 글은 '잘 쓰는 기술'이 아니라 '잘 사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좋은 삶'이란 거창한 모험이나 극적인 사건을 겪는 것이 아니다. 내게 주어진 하루를 치열하게 관찰하고, 섬세하게 느끼고, 진솔하게 부딪히는 모든 순간이 바로 '이야기가 될 만한 삶'이 아닐까?


이제는 조급함 대신 충만함을 채우고 싶다. 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다 보니 쓸 이야기가 쌓이는 삶. 나의 서랍 속에 억지로 채운 글이 아니라, 충실히 살아낸 삶의 반짝이는 조각들이 저절로 쌓여가기를.


그렇게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내 삶 자체가, 어쩌면 가장 진솔한 한 편의 글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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