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가는 세상.
문득 몇 년 전 지역아동센터에서 근무할 때 만났던 별이가 생각났다. 별이(가명)는 아빠와 단둘이 사는 2학년 친구였다.
얼굴은 까무잡잡하고 머리는 곱슬머리에 태권도 띠를 항상 아무렇게나 묶고 다녔다. 바지는 소변을 보고 나서 대충 훅 올린 듯 허리춤이 엉덩이로 내려와 있고, 책가방은 늘 지퍼가 내려가 반쯤 열려있었다.
아빠는 건설 일용직으로 근무하는데, 별이를 챙겨 줄 시간이 없다. 별이는 아침 7시에 아빠 출근 시간에 맞춰 학교를 가기도 했고, 아빠가 먼저 나가버리면 혼자 학교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아귀찜 가게 뒷골목에 딸린 집에서 초등학교까지 먼 거리가 아니어도 혼자 아침밥도 못 먹고 책가방 지퍼가 열린 채로 터덜터덜 등교하는 모습이 그려지니 안쓰러웠다.
아이들은 아이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은 그런 별이를 알음알음 놀리고, 따돌리고 무시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따끔하게 혼을 내었지만, 아이들은 내 앞에서만 조심할 뿐, 그 분위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별이는 아이들이 다 돌아간 후에 남아서 아빠를 기다릴 때도 있고, 태권도학원 차가 와서 데려가기도 했다. 가장 늦게까지 혼자 남을 때면 화장실로 데려가 머리를 감겨주었다. 머리에 항상 비듬이 보였고, 씨 같은 게 생길까 걱정이 되었다. 드라이기를 서랍에 두고 한 번씩 머리를 감겨서 말려주면 별이는 캬아 하며 아저씨처럼 감탄사를 뱉어내곤 했다.
별이 엄마는 지적장애가 있었다고 했고, 별이 또한 경계성 장애가 있어 보였다. 아빠는 별이가 조금 늦을 뿐 엄마를 닮은 것은 아니라 여기고 있었다.
토요일인데 별이가 나오지 않아, 끼니가 걱정되어 센터장님이 별이를 데리러 집에 갔다가 경악한 일이 있었다. 집안이 온통 쓰레기에 술병 천지라 발 디딜 틈이 없다는 것이다. 별이를 데려다주며 나도 집을 들여다보았는데, 입을 틀어막았다. 설마 했는데, 뉴스에 나올 수준이었다. 센터장님과 나는 의논 끝에 아동보호기관에 신고를 했지만, 집이 더럽고 아이가 방임된다고 해서 보호자와 분리시킬 수는 없었다. 아빠는 별이에게 더 신경을 쓰겠다 했지만, 그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별이는 꿋꿋하고 당찬 아이라 아이들에게 기죽거나 눈치를 보는 성격이 아니었다.
가끔 속상함에 눈물을 보였지만, 아이답게 금방 잊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 한편에 늘 상처가 있었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며 별이는 센터를 그만두었다. 엄마는 육지에 살고 있다고도 했고, 서귀포 어딘가에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오곤 했다. 별이는 지금 고등학생이 되어 있을 것이다. 머리숱이 많아 머리를 말리는데도 한참 걸렸던 별이, 지금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길 가다 만나도 어쩌면 못 알아보지 않을까.
사람 살아가는 게 참 다양하다. 그 다양함 중에 빈부격차가 가장 불공평한 것 같다.
모두에게 출발선이 공평하게 주어질 순 없을까. 함께 출발해도 가다 보면 격차가 벌어지는 인생인데, 출발선이라도 차이가 나지 않았으면 한다.
별이가 건강하고 꿋꿋한 성인으로 자라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