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덕마을.
함덕해수욕장. 관광객들에게는 하와이, 괌에 버금가는 맑고 푸른빛을 선사하는 곳이다. 서우봉이 보초를 서고 파도의 반짝임을 지켜준다.
남편은 자활센터 소속이었다가 사업부로 업무분장되어 3년간 함덕 공장으로 출근했다. 그곳에서 귤과 고사리 같은 제주 특산물을 말리고 유통하여 판매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사회복지사가 유통이라. 흠. 처음에는 좌천된 거 아니냐며 마누라는 걱정을 했더랬다. 하지만 남편은 서류에 치이는 업무보다 현장업무가 몸에 맞다며 본인이 지원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덕과 친구가 되었다.
1년에 한두 번 갈까 말까 한 그곳을 마트처럼 들락날락하게 된다. 우리가 함덕 함덕 하니, 아이는 아빠 회사 이름이 ‘함덕’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렇게 함덕이 우리의 놀이터이자 남편의 생활반경이 되었다.
예를 들면 공장에 불을 안 끄고 왔다거나, 비 오는 날 물이 샌다거나, 택배가 왔는데 어서 안으로 들여야 된다거나 갑작스레 함덕으로 출동할 일이 있을 때 나와 아이는 산책 겸 나들이 겸 동행을 한 것이다.
함덕 버스 종점이고, 바로 앞에 차고지가 있어서 그나마 저녁에는 빛이 보이지만, 막차가 끊기면 그 동네는 암흑이 된다. 밤에 갑자기 공장에 갈 일이 있을 때는 남편도 무서웠는지, 우리가 동행하면 입꼬리가 올라가곤 했다.
어제 오랜만에 다 함께 함덕으로 드라이브를 가게 되었다. 남편이 육아휴직 중이니 함덕에 안 간지도 1년이 다 되어 간다. 육아휴직이 끝나면 퇴사를 할 예정이라 이제 함덕은 원래의 함덕으로 돌아가겠지. 옆 동네처럼 드나들었던 곳이 우리에게도 관광지가 되지 않을까.
오랜만에 함덕 바다를 보니 애잔한 마음이 앞선다. 16개월 둘째는 바닷바람을 가르며 아장아장 걸어 다녔다. 함덕 해수욕장 옆에 트랙과 잔디, 운동기구가 있는 공원이 있다. 우리는 정신연령이 아직 꼬마라서 아이들하고 놀이터에서 잘 논다. 놀다가 너무 몰입해서 진짜 삐지기도 한다. 실컷 놀다 보니 비가 내렸다.
고향도 아니고 실 거주지도 아니고 나의 직장이 있던 곳도 아닌 애매한 함덕동네.
우리 집 아빠에게 야근과 월급을 주었던 동네. 남편에게 직장이 아닌 새로운 꿈을 심어준 동네다.
육아휴직 후 퇴사만 남은 남편은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있지만, 나는 엄마 된 입장으로 조금 두렵기도 하다. 함덕으로 다시 보내버릴까 싶기도 하고.
중년이 되어버린 남편이 더 늙어버리면 새로운 도전을 시도조차 못할지 모른다. 그래도 우린 지금 젊으니 해보고 싶은 것은 해보라고 하고 싶다. 한 달에 한 번 꼬박꼬박 찍히던 남편의 월급이 많이 그리울 거다.
함덕아, 그동안 고마웠다.
더 행복해져서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