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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미 Oct 03. 2024

암흑기는 청춘이다.

유의어의 관계.



 엄마는 내가 선생님이나 간호사가 되길 바랐다. 나는 교사도 간호사도 별 관심이 없었다. 동양어문계열 학과에 원서를 넣었지만 보기 좋게 떨어졌다. 사실 합격해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는 취업이 잘되는 간호과에 가야만 등록금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 성적으로 진학이 수월했던 전문대 간호과에 가는 것이 나의 정신건강에도 좋았다.



 2년을 다니며 도내 종합병원 세 군대에서 실습도 마쳤다. 3학년은 수도권 상급병원에서 실습을 하고 국가고시를 준비한다. 나는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다. 그때 우리 집 상황은 최악을 달리고 있었고 통학할 교통비가 없어 수업에 빠진 적도 많았다. 지금은 버스요금이 시내요금 수준으로 통일이 되었지만, 그때는 시외버스 요금이 비싸 통학도 자취생만큼이나 부담이 되는 시기였다.

 내가 독하게 마음을 먹고 학업과 알바에 불사 질렀다면 졸업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내 마음이 동해 다닌 곳이 아니라 그런 에너지는 없었다.



 휴학을 하고 일본어학원을 다니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때 막내 고모가 일본에서 ‘부산항’이라는 한식 선술집을 하고 있었는데, 조선족 아르바이트생이 그만두었다며 직원 구하기가 힘들다고 아빠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너 일본 가서 살아볼래? “

아빠의 물음에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가겠다고 했다. 가서 돈도 벌고, 일본어도 배우고, 일본 대학도 다녀보자 하며 꺼져있던 불꽃이 휘리릭 불타올랐다. 3개월 관광비자로 출발을 했다. 원래 관광비자를 받으면 일은 할 수 없는데, 나는 도착한 다음날부터 고모 식당에서 일을 했다.


노동으로 다져진 작은 몸뚱이는 젊음이 더해져 오봉을 들고 날아다녔다. 오후 3시부터 새벽 3시, 오픈부터 마감까지 고모를 도왔다. 관광비자가 끝나 다시 제주도에 갔다가 3개월 관광비자를 또 받아서 일본으로 갔다. 그때는 어학원에 다니며 일을 했다.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어학원, 오후 3시부터 새벽 3시까지는 식당에서 일하는 패턴이 3개월간 이어졌다. 새벽 3시에 마감을 해도 마무리를 하고 집에 귀가해 잠에 들면 새벽 5시가 되었다.



 일본에 가면 일도 하지만 공부도 하고 관광도 다니며 나의 청춘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식당, 집, 식당, 집이었고 어학원에 가있는 시간은 꿈을 꾸는 듯 피곤에 절어 정신이 몽롱했다. 그래도 결석 없이 3개월 단기 코스를 마무리했다. 그러곤 다시 제주도로 왔다. 단기 코스를 수료하니, 잔고 증명만 하면 학생비자가 나올 차례였다. 고모의 도움으로 잔고 증명도 하고 비자도 나왔지만, 이제는 정식 비자로 떳떳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나는 일본행을 포기했다. 일본에 도착해서 출입국 심사를 받으며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직원에게 말했다.


 비행기가 없어 부산을 경유하고 제주도로 온 나는 잡히면 죽인다는 아빠와의 전화통화로 제주시 찜질방을 오가며 숨어 지냈다. 그때 언니의 남자친구였던 큰 형부가 나를 많이 챙겨주었고, 나는 결국 아빠와 고모에게 사죄하며 유학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다.


 나는 유학을 갔을까, 가지 않았을까? 

일본어는 못 한다. 귀가 트여간다 싶을 때 공부를 지속하지 않으니 다 잊어버렸다.

그 후로 일본에 가본 적도 없다. 유학 사건 이후, 나는 어렵사리 혼자서 전문대를 졸업하여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가끔 식당에 가면 앳되보이는 외국인들이 일하는 걸 보게 된다. 그들을 볼 때면 유학 아닌 유학시절이 생각나곤 했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나의 암흑기다.



암흑기가 없었다면 내가 사회복지사로 보육원에 근무하는 시간이 오지 않았겠지. 보육원 수학선생님이었던 남편도 만나지 않았겠지. 그럼 지금의 두 아들은 내 몸 세포로 남아 있겠지.


인생은 알 수가 없지만, 암흑기도 나름 의미가 있다. 지금 나의 가족을 보고 있노라면 말이다.

암흑기의 유의어를 청춘이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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