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아저씨가 내한까지 했다는데 나만 몰랐네
시리즈를 열광적으로 좇는 팬은 아니다. 톰 크루즈를 좋아하는가 하면, 오히려 어딘지 억울하게 생긴 사이먼 페그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더운데 집에만 있기는 싫고, 영화나 볼까 검색하던 차에 미션 임파서블이 개봉했다는 걸 알게 됐다. 비틀어 말하자면, 미션 임파서블이 개봉하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는 말이다. 가장 가까운 시간을 골라 예매하고 극장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두 석 중 한 석이었다.
시리즈 6편에 해당하는 이번 미션 임파서블의 부재는 폴아웃이다.
네이버 영어사전에 명사 ‘fallout’을 입력하면,
1. (방사능) 낙진
2. 좋지 못한 결과
라는 검색 결과가 뜬다.
감독 크리스토퍼 맥쿼리가 의도한 바는 둘 다였다고 한다.
“The title has multiple meanings in the film, from the literal to the figurative. There is the threat of nuclear terrorism hanging over the movie, which is the literal threat. There's [also] the notion that what's happened in the movie is the end result of choices that Ethan Hunt has made in his life. It's Ethan's past come back to haunt him. It's the fallout of all his good intentions.”
문자 그대로의 의미와 상징적인 의미로서의 ‘fallout’을 모두 담고 있다는 말이다. 즉, 핵무기 테러리즘의 위협을 시사하는 ‘낙진’, 주인공 에단 헌트가 과거에 행했던 선의의 발로가 ‘좋지 못한 결과’로 되돌아오는 상황을 모두 시사한다.
극의 시작부터 에단 헌트는 동료 한 명의 목숨을 구하느라 핵무기의 원료에 해당하는 플루토늄 확보에 실패한다. 앙숙과도 같은 CIA 요원의 목숨을 구했다가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다.
그러나 곁에 있는 한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수천수백만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선의와 책임감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지나치도록 넘치는 자질이라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이 목숨마저 걸게 하는 반면, 극단적 신념이나 개인의 영달을 최고선으로 삼는 다른 누군가에겐 한없이 무력하다. 소중한 사람을 희생해야만 이룰 수 있는 대의라는 것에 더 이상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재미있는 영화라면 능히 그렇듯 러닝타임 147분이 지나치게 빨리 지나갔다. 나와 주변에만 매몰되어 있던 시야가 넓어졌다. 단 1초의 아슬아슬한 차이를 여느 때라고 생각하는 스파이들의 안위와 카슈미르의 어느 구호 캠프와 세계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엔딩 크레디트가 지나가면 마블 영화처럼 쿠키라도 떡밥으로 던져주지 않을까 허무맹랑한 기대를 할 정도로 영화가 끝난 것이 아쉬웠다. 이 마음이 옅어져 흔적도 남지 않은 어느 날 예기치 않아 더 반가운 손님처럼 다음 편이 나와주길 기대한다.
영화관 밖 세상은 여전히 덥다. 밀도 높던 시간은 다시 느슨하게 흐른다. 아, 내일이면 또 출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