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인 날들의 기록

새로운 시작

by 행화당

청명한 햇살이 뜨거워지려 하는 6월 어느 날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가 조금 길었지만 한 편의 짧은 뮤지컬 같은 축가 이벤트와 잘 꾸며진 정원 같은 아름다운 식장, 그리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완벽한 날씨에 하객 분들은 매우 만족하셨다.

성공적인 결혼식이었다.


나는 결혼식과 폐백까지 끝낸 후 뷔페를 돌며 하객 분들께 인사를 올렸고

가까운 친척들을 직접 배웅한 뒤 건물을 나왔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 부부는

결혼식장 앞 테이블이 두 개뿐인 작은 팥빙수 집에서 빙수를 먹었다.

달콤하고 시원한 빙수를 한입 먹으며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숙제를 끝낸 기분이었다. 후련했다.




나에게 결혼식이란 아름답고 행복한 파티와 같은 것만은 아니었다.

결혼식 자체는 잔치이고 축하와 기쁨이 넘치는 것이었지만

결혼식의 꽃이어야 할 ‘신부’인 나는 많이 웃지 못했다.

모든 것이 고되었다.

신부입장을 하면서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참아냈다.

여러 감정이 뒤얽혀있었다.

신랑신부 행진을 하는 때가 되어서야 나는 웃어 보일 수 있었다.

무사히 해내었다는 기쁨의 웃음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주말마다 쉴 새 없이 바빴다.

본디 직장인에게 주말은 한 주를 버텨내는 힘 같은 시간이었다.

주말에는 집을 상쾌하게 정리하고

차분히 정리된 침대에 누워 머리를 비워내야 했는데

매주 주말마다 결혼 준비를 위한 일정이 있으니 고달팠다.

실제로 직장에서의 업무가 많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았던 나는

신부 관리는커녕 오히려 면역력이 떨어져

병원방문이 잦았고

결혼식 전날도 급성편도염으로 수액을 맞았다.




결혼식을 위해서는 챙겨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상견례와 예단, 예물 그리고 양가 친척들과의 인사,

그리고 결혼예식을 위한 장소섭외, 양가 부모님 한복 맞추기, 스드메, 청첩장 돌리기 등.


나는 스스로를 지식과 개념이 있는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론 고집 있는 여성에 더 가깝겠다.

그런 나는 결혼 준비과정에서 부조리한 부분이 있다면 참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허례허식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씩씩하게 “예단은 안 할 거야. 오빠도 내 말에 꼭 동의해야 해!”하며 외치기도 했다.


남편은 나의 의견을 거의 모두 수용해 주었지만

내 의견으로만 되는 것은 없었다.

나의 결혼식이었지만

어른들을 섭섭하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왜 해야 하는지 내 마음속으로의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누구나 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겪어 나갔다.



모든 일에 남편은 내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것을 수용해 주는 남편에게

나는 오히려 불만이 있었다.

나 혼자만 모든 준비를 해나가는 것 같았고

내가 옳은 결정을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 들었다.

내가 상대를 실망시킬까 봐 마음을 졸였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뭐든 좋아”하는 말이 무게처럼 쌓였다.

버거웠다.

하지만 그가 나를 믿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참고 해나갔다.




결혼 준비가 하나의 일이 되어버린 나에게 ‘로맨스’는 마지막 희망이었지만

남편은 그 부분에 서툴렀다.

결혼반지가 택배박스에 꽁꽁 싸여 문 앞에 굴러다니는 걸 본 나는 엉엉 울고 말았다.

프러포즈도 안 받았는데 문 앞에 반지가 굴러다니다니,

남편이 손에 끼워줬으면 하고 기다렸던 물건이

투박한 모양새로 떨어져 있는 걸 보자니 힘

들게 붙잡고 있던 인내의 끈이 뚝하고 끊어졌다.




남편은 나를 서운하게 할 생각이 없었다.

거리가 먼 주얼리샵에 직접 가는 것보다

택배로 받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서로 힘들었던 마음이 터져 결국 우리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도 그대로 많이 힘들었던 것이다.

결정권을 나에게 주더라도

그 과정에서 내 기분을 파악하려 부단히 노력했고

내가 부탁한 모든 일을 해내 주려 노력했다.

또 양가 부모님들의 입장도 고려하느라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둔감한 그가 그 많은 것은 신경 쓰고 있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날, 별다른 이야기 없이 같이 껴안고 울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와 내가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위로가 온몸을 뒤덮었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알았다.

나는 의미와 분위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기에

남편이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서운함을 가졌던 것이었다.

다른 환경에서 30년을 넘게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결혼 준비는 우리가 팀이 되어하는 첫 프로젝트였다.

의견이 다르면 맞춰야 했고,

힘들어도 끝까지 함께해야 했다.

중간에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큰 프로젝트였다.

우리는 결혼을 준비하며 서운한 부분이 있으면 얘기하여 풀고,

성공하면 그대로의 기쁨을 나눴다.

힘든 날에는 서로 등을 두드려주며 위로했다.

또 누군가 내 배우자를 힘들게 하면 적극적으로 방어해 줬다.

누구도 이 프로젝트를 대신해주지 않았다.

끝까지 서로를 붙들고 나아갔다.



이제 알게 되었다. 결혼준비는 결혼식 하루만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평생을 함께할 ‘우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쉽지 않은 것이 당연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