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배우는 중입니다.
남편은 오랫동안 팔꿈치의 통증을 호소했다.
아이가 너무 어려 미루고 미루다
둘째가 돌이 다되어갈 무렵, 수술을 결정했다.
남편은 병원에 입원하였고,
나는 홀로 육아를 시작했다.
첫째 날, 두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놀리고
전쟁을 치렀다.
자기 전에 화장실에 가지 않겠다는 아들과
한 시간여를 대치했다.
밤 열시반이 넘었다.
결국 지친 내가 인내의 끈을 놓쳤다.
“화장실 가지 마라, 너 알아서 자, 엄마는 간다.”
버럭 화를 내고 냉정한 얼굴로 돌아서 내 방으로 갔다.
‘달칵,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또 한참 시간이 지나고
‘끼익’하며 방문이 열렸다.
책 한 권을 들고 들어오며
“엄마, 이거 읽어... ”
나는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자
“엄마, 나 쉬 다했어요.”
내 눈치를 살짝 보며 포옥 안겨오는 아들.
“그래? 잘했어, 아들”하며 안아주었다.
이제 자러 가자하니 군말 없이 따라오는 아들,
아들은 제 침대에 눕고 나는 바닥에 누웠다.
“자자, 엄마가 기다려줄게”
서러움이 남았는지
몇 번을 거짓울음을 짓고 칭얼거렸다.
올라가서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속삭이자
금세 숨소리가 느려졌다.
밤 열한시 반
두 아이 모두 재우고 누웠다.
분명 너무나 피곤한데
잠을 잘 수 없었다.
왜일까.
후회였다.
미안함이었다.
조금만 그 자리에서 기다려줄 걸,
조금 더 다정한 말투로 말해볼 걸,
안아주며 화장실에 가보자고 얼러볼 걸
아마 그랬다면 아이는
“그래! 가보자”하며 갔을 수도 있는데
내가 고작 네 살 아이와 감정싸움을 했구나.
아이는 나에게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는데
“싫어, 안 갈 거야!”하고 반항한 것도 아니었는데
칭얼거리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을 뿐이었는데
왜 나는 화를 내었을까.
아이의 투정에는 그런 뜻이 있었다.
‘엄마, 한 번 안아주세요.’
‘엄마, 나랑 좀 더 있어주세요.’
‘엄마, 나를 한 번 더 바라봐주세요.’
‘엄마, 나 오늘 조금 힘들어요.’
아이는 사랑을 바라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부스스한 머리로 일어난 아들은 나에게 말했다.
“엄마, 좋은 아침이에요!”
그리고 정말 다정한 얼굴로 둘째에게 다가가
싱긋 웃어보이고는 포옹을 했다.
해사하게 웃는 두 아이를 보면서
눈물이 차올랐다.
나를 향한 아이의 사랑은 조건이 없다.
저녁에 버럭 소리를 지른 나라는 사람에게
아이는 삐진 기색 하나 없이 웃어주었다.
아이는 언제나 나를 용서했다.
아이는 어떤 모습이든지 나를 사랑했다.
그 사랑에는 조건이 없었다.
이익을 바라고 주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잘해서 주는 상도 아니었다.
그저 사랑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사랑’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에게
누구보다 큰 사랑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와의 하루하루를 되짚어 보며 깨달았다.
사랑을 배우고 있는 것은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