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아닌 둘
“아빠, 오빠가 결혼하재” 대뜸 말을 꺼냈다.
지금의 남편과 연인이던 시절 만나지 세 달도 채 되지 않아 그가 ‘너 정도는 내가 먹여 살린다.’라는 말을 꺼냈다.
결혼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나였기에 그의 말에 치기가 어렸다 생각해 피식하고 웃어 넘겼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현실적인 이야기에 ‘아, 이 사람이 진심이구나.’하고 생각에 잠겼다.
그 시절 나는 내 인생의 황금기를 살고 있었다. 사회생활 시작 후 모은 돈이 조금씩 모였고, 마음이 맞는 직장동료들이 있어 직장생활도 행복했다. 또래 친구들과 정말 자주 모여 젊은 시절의 삶을 즐겼고, 해외여행도 간간히 가며 새로운 경험들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 내게 결혼은 이 모든 것을 멈추게 할 것만 같았다.
아빠는 말했다.
“니 생각은 어때?”
“나는 2년은 지나서 결혼하고 싶어 아빠”
“2년 지나서 남자친구랑 결혼 할 거야?”
“응, 오빠 좋은 사람이니까.”
“그럼 그냥 지금 빨리해”
이렇게 쉽게 답이 나온다고?
아빠가 너무 내 생각을 하지 않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아빠는 남자는 결혼을 해야 성장한다고 말했다. 내가 나중에 같은 상대와 결혼을 할 것이라면 지금부터 같이 커 나가는 게 좋다는 것이었다.
아빠의 말은 맞았다.
남편은 결혼 전에 분양받았던 집이 있었다. 투자목적이었다. 막상 입주시기가 다가왔는데 그 집에는 일명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붙어있었다.
입주를 할 생각이 없던 남편은 울며 겨자 먹기로 손해를 보고 집을 팔았어야 할 입장이었다. 하지만 하나가 둘이 되자 상황은 달랐다. 둘이 함께 힘써 의논하니 구입이 가능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내가 모은 돈을 보태었고 전세금을 최대한 많이 받기 위해 세입자를 얻는 시기도 조절했다. 잔금 이자를 높게 치르면서까지 결정한 부분이었다. 이후 전세금을 높게 받을 수 있었고 우리는 자가를 가지게 되었다.
결혼이라는 계기가 없었다면 남편은 집을 사지 못했을 것이고, 그 시기를 놓친 우리는 이후에 자가를 마련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감정에 많이 휘둘리며 타인에게 많이 의존하는 성격을 가졌다. 이와 다르게 남편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바로 서며 무던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직장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 내가 하지 않은 일인데 외부에서 민원이 들어온 것이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나는 바로 눈물을 쏟아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위해 같이 외출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다.
나의 하루가 조금은 편안하게 흘러갔다. 그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 직장에 가서도 억울함은 풀리지 않았다. 나의 상사는 오히려 나를 질책하며 사과하라고 종용했다. 자신의 승진에 방해가 될까 이 일을 빠르게 처리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하루가 엉망진창이었다.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남에게 해를 끼치고 상처를 주는 일은 절대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는 건지.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 왔다.
집에 돌아가니 남편이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봤다. 남편은 ‘괜찮아?’가 아니라 ‘괜찮아’라고 말해줬다.
안심이 되었다. 그 전의 나였다면 혼자 방에 틀어박혀 한참을 울었을 것이다.
나와 다른 그라고 생각했는데 감정적이기만 한 나와 달리 침착한 그의 태도가 나와는 달라서 기댈 수 있었다.
그 일은 일주일정도 나를 괴롭힌 뒤 허위신고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 일주일을 어떻게 버텨냈을까... 그 모든 시간을 그가 신경써주었다.
부모님이라면 걱정할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많이 커버린 내가 눈물을 보였다면 부모님은 잠도 이루지 못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아이처럼 기댈 수 있었다.
나 힘들다고, 나 괴롭다고
그는 어른인 내가 의지할 수 있는 큰 기둥이 되어줬다.
2년 뒤 결혼을 준비했어야 할 시기에 우리는 아이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