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교수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

by 서원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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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교수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부와 영광을 누릴 대로 누린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삶은 전쟁이고, 나그네가 잠시 머무는 곳이며, 죽고 나면 명성은 잊힌다.'' ''당장 세상을 하직할 수 있는 사람처럼 행하고 말하고 생각하라.''고 했다.

-루크레티우스는 ''우리는 없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무시한다. 삶은 그런 식으로 소진되며, 죽음은 예기치 못하게 다가온다.''

-삶이 곧 죽음이라면, 그리하여 이미 죽어 있다면 여생은 그저 덤이다.

-사람은 두 번씩 죽는다. 자신의 인생을 정의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어 삶의 의미가 사라졌을 때 사회적 죽음이 온다. 그리고 자신의 장기가 더 이상 삶에 협조하기를 거부할 때 육체적 죽음이 온다. 죽음이 아직 오지 않는다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보다 성심껏 선택할 수 있다. 공포와 허무를 떨치기 위해 사람들이 과장된 행동에 나설 때 상대적으로 침착할 수 있다(p19).

-마이크 타이슨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링에 오를 때는 맞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p23).

-우리가 행복이라는 말을 통해 의미하는 것은 대개 잠시의 쾌감에 가까운 것.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p23).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하면 거치게 된다는 심리 변화 4단계 '부정-분노-체념-인정'을 오롯이 밟아나가는 것이다. 자신은 충분히 단련되어 있으므로 그중 어떤 단계를 건너뛸 수 있다고 자만하지 말자(p27).

-태어남과 동시에 우리는 시간의 강물 속으로 던져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몸이 자라고 마음이 영글어간다. 흔히 '성장'이라고 부르는 이 사태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먼저, 성장한다는 것은 주변과 자신의 비율이 변화하는 것이다. 성장은 익숙하지만 이제는 지나치게 작아져버린 세계를 떠나는 여행일 수밖에 없다. 예상치 못했던 어느 순간, 사랑하거나 미워했던 이의 부고를 듣는다. 이 부고 역시 우리의 시야를 확장시킨다(p35).

-사람의 얼굴에는 누구에게나 어떤 빛이 깃들게 마련이고, 그 빛이야말로 그 사람의 후천적인 얼굴을 완성합니다. 아름다운 얼굴빛은 운복한 생활을 한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고, 사적인 행복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넓은 '공적인 행복'을 추구할 때 깃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p50).

-기대는 높을수록 충족되기 어렵고, 낮을수록 의외의 만족감이 있다. 최고를 열망했던 미야모토 무사시는 마침내 천하제일 검객이 된 뒤에 이렇게 중얼거렸다. 기대했던 것보다 기쁘지 않다(p62).

-대학 간판 말고는 딱히 자존감을 얻을 거리가 없는 인생을 살아갈 사람에게는 수능 성적이야말로 자기 인생의 결정적 지표일지 모른다. 그러나 미래를 향해 활보해나갈 사람들에게 대학 입시는 지나가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그 에피소드를 위해 온통 수단화된 공부만 하라고 다그치는 분위기 속에서 고교시절을 보내야만 하는 청소년은 불행하다(p74).

-더 큰 문제는 그 싫어진 공부가 곧 공부의 전부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에 고교 시절을 갈아 넣은 뒤,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취업을 대비하라는 사회의 명령을 듣는다. 그리하여 취업이라는 목표에 대학 시절마저 갈아 넣고 나면, 시험을 위한 수단이 아닌 또 다른 종류의 공부가 존재한다는 것도 모르고 나머지 생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자신은 공부라면 다 지긋지긋하게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믿으면서(p75).

-인생에는 굴곡이 많아서 자신이 장차 지도자가 될지 안 될지 우리는 사실 알 수 없습니다. 예전에 별거 아니었던 이가 새로운 상황을 만나서 빛이 나는 경우도 흔하고, 한때 뛰어나 보이던 사람이 결국 진정한 실력을 갖지 못한 이로 판명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리고 지도자라는 자리가 꼭 좋은 것이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지도자에게는 책임이 따릅니다. 책임은 대개 무겁습니다. 무거운 것을 들고 있다 보면 힘이 듭니다. 오랫동안 힘든 상태가 지속되면, 우울해집니다. 우울한 나머지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그뿐 아니라 일을 너무 잘해도 사람들이 시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위 지도자의 영광에는 이렇게 힘든 면이 함께 하곤 합니다(p85).

-우리는 종종 쉬고 싶다. 아닌 게 아니라, 밤에 제대로 쉬지 못하면 아침을 제대로 맞을 수 없다. 주말에 제대로 쉬지 못하면 월요일을 제대로 맞을 수 없다. 방학 때 제대로 쉬지 못하면 새 학기를 제대로 맞을 수 없다. 실로 쉬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는 얼마나 종종 불면과 숙취 끝에 월요일을 맞는가. 우리의 주말은 얼마나 종종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으로 망쳐지곤 하는가. 그리고 우리의 방학은 왜 우리의 기대보다 짧은가. 그렇다면 잘 쉬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쉬기 위해서는 일단 열심히 일해야 한다. 무엇엔가 열심히 종사하지 않은 사람은 잘 쉴 수도 없다. 열심히 종사하지 않은 사람의 휴식에는 불안의 기운이 서려 있기 마련이다. 쉰다는 것이 긴장의 이완을 동반하는 것이라면, 오직 제대로 긴장해본 사람만이 진정한 이완을 누릴 수 있다. 당겨진 활시위만이 이완될 수 있다(p86).

-어쩌면 인간은 다 쓰레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마주치는 개들에게 속삭인다. 네가 좋아하는 인간이라는 포유류는 사실 좀 그렇단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쓰레기일지는 몰라도 순수에 가까울 정도의 전폭적인 쓰레기는 아니기를 바란다. 최소한의 존엄에 대한 환상이 있어야 인간은 제정신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p102).

-미국에서 유학을 한다고 하면, 영어도 잘하고 성격도 발랄하고 양인들하고 오순도순 지내다 귀국하는 줄 아는데, 그것은 큰 오해다. 제3세계 늦깎이 유학생에게 영어가 모국어처럼 편해지는 날은 쉽게 오지 않는 법. 양인을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수줍은 유학생, 교환교수들이 허다하다(p109). 유학생이 잃을 것은 제3세계 갑질 교수의 쇠사슬이며, 얻을 것은 난데없는 신비함과 보다 넓은 지식의 시장이다.

-여러분이 현실사회에서 타인과 사는 일의 고통과 영광을 얼마나 잘 겪을 마음의 준비, 즉 정치적 덕성을 습득했느냐는 것입니다. 즉 얼마나 성숙한 정치 주체가 되었느냐 하는 것이, 졸업생들이 염두에 둘 만한 평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p115).

-직장을 다니다 보면 누구나 가끔 확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나. 이게 다 뭐 하자는 짓이지 하는 생각이 뺑소니처럼 자신을 치고 달아날 때가 있지 않나. 상대적으로 편한 직장에서 '꿀을 빨고' 있다고 해서 그 뺑소니차가 비켜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존재가 수단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 때면, 자신을 제약하는 권위를 납득할 수 없을 때면, 다시 말해 자신이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라는 느낌이 들 때면 누구나 그 난폭한 뺑소니차에 치일 수 있다(p122).

-자신 있고 겸소한 학자보다 자신 없고 무례한 학자가 많은 것이 대학 사회입니다. 인기 교수나 정치교수는 예외 없이 허학자들입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은 역사의식에서 나옵니다. 젊은 교수들이 주류에 서서 쉽게 인정받기보다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비주류에 서서 자기 자신의 고유한 길을 완강하게 걸어 나가기 바랍니다(p136) .

-실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 사랑을 통해서 인생의 권태를 이겨내고, 사랑의 상상 속에서 협애한 자아를 넘어 보다 확장된 삶을 경험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인간들은 대부분 사랑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 누추하다(p162).

-영화가 갖는 이 마술적인 힘. 영화는 아마도 우리가 실제로 밤에 꾸는 꿈의 형태와 가장 가깝다 할 것이다. 밤만으로는 부족하여 대낮에도 꿈을 꾸고자 하는 자들은 오늘도 극장으로 향하여 마음 저 깊숙이 보고 싶었던 것들을 스크린 위에서 본다(p242).

-인간이 구원되었다, 행복하다, 라고 말할 때는 많은 경우 대상으로부터 자신이 거리를 유지할 때라기보다는, 기꺼이 스스로 목매고 싶은, 스스로 그것 때문에 부자유스러워지고 싶은 어떤 대상을 찾은 경우다. 고전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인 셈이다(p286).

-예술의 인간에 대한 궁극의 공헌은 만들어내거나 향수하기 위해 사들인 예술품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그러한 예술품을 만들거나 향수하는 과정에서 동시에 고양된 자신의 생 자체에 있다.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예술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장소가 일상임을 아는 사람이다(p292).

-''우리는 소나기로부터 배울 것이 있지. 소나기를 만났을 때 젖지 않으려 빨리 뛰어가곤 하지만 결국 젖기 마련이지. 처음부터 젖을 각오를 하고 있으면, 젖더라도 적어도 당황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살아 있지만 이미 죽어 있는 그에게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 그가 끼고 다니는 책에 나오는 말대로 하자면, ''공즉시색이요, 색즉시공''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공이므로 ''세상을 꿈으로 보는 것은 아주 괜찮은 관점이다.''(p301)

-리듬만 있어도 사람들은 글을 읽을 수가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은 합니다. 재미도 그래요. 저는 재미없는 글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굉장히 폭넓은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데요. 솔직히 지루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봅니다. 맛없는 디저트를 먹기에 인생이 너무 짧잖아요(p307).

-논리와 증거에 의해서 상대를 설득해야 하는 글쓰기 훈련, 그거 굉장히 중요합니다. 정교한 논리와 사실에 근거한 글쓰기, 그걸 중요한 덕목으로 삼고 있습니다. 비문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지만 비문 남용은 굉장히 불성실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p313).

-책은 인류가 발명한 사람을 경청하게 만드는 정말 많지 않은 매개 중 하나죠. 그렇게 경청하는 순간 우리가 아주 조금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겁니다. 자기를 비우고 남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자세요(p318).

-우리는 권력을 싫어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권력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무작정 싫어할 게 아니라 어떻게 선용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p325).

-정치사상은 철학과 정치학을 매개하는 학문 분야다. 철학자는 추상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학은 굉장히 경험적인 세계, 지금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세계에 치중한다. 정치사상을 연구하면 현실을 바라보면서 상당히 추상적인 생각도 해볼 수 있다(p326).

-찰나의 행복보다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고 했다.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 같은 소소한 근심을 누리는 건, 그것을 압도할 근심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p335).

''인간이 평생 다만 목숨을 부지하는 데 급급하면 불행해지기 쉽다. 살아남는 게 직업이 되면 안 되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적잖은 사람이 그런 지경에 몰리고 있다. 이때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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