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극전문 공익단체로서, 명동예술극장과 백성희장민호극장, 소극장 판 등 3개의 연극 전용극장을 보유한 국내 최대 연극제작 단체이다. 3개 극장은 저마다의 특색을 갖고 있는데, 관객 중심 레파토리를 지향 하는 명동예술극장, 작가 중심의 창작 극장인 백성희장민호 극장, 연출가 중심의 실험 극장인 소극장 판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2019년 명동예술극장에서는 사회적 이슈를 담아내는 신작을 많이 선보이는데, 17세기 프랑스의 천재 희극작가였던 몰리에르의 작품인 <스카팽의 간계>는 하층민의 양식있는 시선을 통해 지배 계층의 탐욕과 편견을 조롱하는 내용이며, 이번 공연에서는 <스카팽>이라는 공연명으로 임도완님께서 연출하셨다.
<스카팽> 공연 전에 배우들이 직접 종이로 만들었다는 가면을 쓰고, 국립극단의 하나 스튜디오에서 직접 기초연기를 배워보는 시간을 가졌다. 몰리에르의 희극을 몸으로 만나보는 움직임 클래스라고 하여 '몸리에르'라고 명명하였는데, 클래스 이름이 귀에 쏙 들어온다. 클래스는 가면을 가지고 진행되는 18세기 이탈리아의 전통극 형태인 ‘코메디아 델라르테’를 기반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9개의 가면마다 눈코입의 크기, 눈썹의 모양, 주름의 굵기와 길이, 광대의 굴곡, 골격의 형태가 달라서, 가면을 보자마자 어떤 인간의 특성이 떠오르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심술궂어 보인다, 주눅들어 보인다, 성나 보인다 등등..그 특징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목소리 톤과 움직임을 연구한다. 그리고 각자 가면을 쓰고는 갑자기 주어진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대사를 치고 연기를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임도완 연출님께서 관객을 바라보는 타이밍, 배우들의 호흡조절, 대사와 움직임의 임팩트를 직접 설명해 주시고, 나를 포함한 9명 정도의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나하나 지도해 주시니 곧바로 연기가 조금씩 향상되는 걸 경험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가면을 써보는 것 자체도 색다른 경험인데,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해본 것은 더욱 생경한 경험이다. 가면이 주는 어색함, 답답함, 불편함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가면이라는 하나의 장막에 가려져서 민망함, 부끄러움 같은 건 사라지고, 오히려 가면의 모습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도 하였다. 가면우울증이라는 것도 웃고 있는 가면 속에 자신의 두려움과 우울증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가면이 주는 긍정적 효과라고 한다면 일종의 자신감 상승 같은거라고 해야할까.
이렇게 <스카팽>이 제작되는 과정을 1시간이나마 몸소 체험해 보고는, 명동예술극장에서 실제 배우들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으니 그 몰입도가 배가 되었다. 역시 전문배우들은 가면을 쓰고도 몸짓과 표정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놀랍긴 하였다. 극의 전개도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나와 그분들의 연기력 차이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었다.
17세기에 활약한 몰리에르의 작품이 오늘날까지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인물의 표면에 드러나는 풍속뿐만 아니라 인물의 내면 깊숙이 파고들면서 인간을 모랄리스트적으로 고찰한 함축성 있는 희극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긴 한데, 연극을 보니 대강 무슨 뜻인지는 알 듯 하다. 기본적인 인간의 심리나 본성이 변하지 않는다면, 17세기에나 21세기에나 시대를 막론하고 모두 공감할 수 연극이 가능하다는 뜻인 것 같다.
연극이라는 무대 자체가 근본적으로 초일상적이어서 짧은 공연시간동안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 펼쳐진다. 연극으로 때로는 통렬한 쾌감과 카타르시스도 느끼고, 때로는 화나고 슬프고 불편한 감정도 가져 본다. 연극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다시 연극을 접하게 되면 또다른 초일상의 세계를 꿈꾸게 되는 반복적인 패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