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행에만 너무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아가는 탓에 이따금씩 찾아오는 행복 또는 행운이라 부르는 일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 같다. 기쁘면 기뻐하면 되고 행복하면 행복하다고 말하면 되는데 이게 참 어렵다. 언제부터인지 이렇게 돼버렸다.
나에게 행복은 혼자만 오지 않는다. 그 뒤에 약간의 다른 감정들을 함께 몰고 온다.
그래서 늘 행복한데 슬프다. 슬픔이 없는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 듯이. 그냥 행복해하기만 하면 왠지 안될 것만 같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온전해질 순 없는 걸까? 생각하다가 이번에는 끝까지 글 하나를 써보자고 마음먹고 스쳐가는 생각들을 글자로 변환 중이다.
며칠 동안 알 수 없는 울적함에 글을 쓰다 지우길 몇 번이나 반복했다. 책이 너무 감사하게도 잘되고 있고 꿈에만 그리던 베스트셀러 표시도 달아봤고 마침 생일도 겹쳐서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다. 그런데 가슴 한편에는 자꾸 습관성 불행을 스스로 만들어내려 하고 있다. 갑자기 들이닥친 불청객 같은 행복이 나에게는 어색하고 낯선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익숙한 상태로 회귀하기 위해 삶의 조명을 조금 줄이고 뜨뜻미지근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눈 앞에 찾아온 행복에 약간의 우울을 섞는다. 한편으로는 이렇게나 행복을 느끼는 법을 모르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란다.
하루에 하나씩 평균적으로 나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글을 올린다. 몇 년씩이나 반복된 일은 아침에 눈뜨면 핸드폰을 확인하는 일처럼 습관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어플을 켜고 스쳐가는 수많은 누군가의 사생활 또는 생각들이 날아들어온다.
그런데 참 이상한 건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많은 이들의 행복이 가득한 각본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여다본다. 아니, 보고 싶지 않아도 노출된다. 현대인의 삶이라고 싸잡아서 일반화하고 싶진 않지만, 어플을 지우지 않는 한 거역할 수 없다. 설령 어플을 지웠던 사람들이라도 이내 다시 깐다. Sns를 지운다는 건 소통의 단절을 의미하니까.
몇 년 동안 안부를 묻지 않아도 팔로우만 해놓으면 친절하게 상대의 최근 소식들을 노력하나 하지 않고 알 수 있다. 그러니 점점 표현은 쓰지 않아 굳어가는 물감처럼 딱딱해진다. 더 굳어지기 전에 모처럼 삶에 들이닥친 기쁜 소식들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기뻐하면 행복을 느끼는 법을 연습하는 데 도움이 될까. 책을 홍보해야 하는데 콘텐츠를 만들다가 이내 관두고 이 글을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인스타그램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희망보다 약간의 절망을 올리려 한다. 어쩌면 이게 더 누군가의 숨통을 틔워줄 것 만 같아서
<시작할 용기가 없는 당신에게>라는 책을 쓴 작가의 글. 그래도 홍보는 한 줄이라도 하고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