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밤
'너는 그림을 그릴 능력이 없어'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그때는 반드시 그림을 그려라. 그러면 그 목소리는 잠잠해질 것이다.
- 빈센트 반 고흐 -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나의 환경부터 인간관계 그리고 감정까지도. 업무환경이 변화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강제적으로 고립이 되니 생각이 많아진다. 인간관계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를 탓하긴 하지만 정말 중요한 사람과 아닌 사람들로 확연히 나뉜다. 그동안 어쩔 수 없이 연락해왔던 인간관계는 코로나 때문이라는 이유로 정리가 되었다. 매번 다음에 보자, 여유 생기면 보자라고 말하며 애매한 말들로 불편함을 숨겨야 했는데 이젠 '코로나'라는 강력한 핑계가 생겨버렸으니 어쩌면 다행인가. 이 때문에 나는 벌거벗겨졌다. 인간관계도, 나 자신의 하루도 껍데기가 없는 알몸이 되어 마주하기가 불편하다.
이런 상황에서 글을 쓰려할 때마다 부정적인 감정들만 적혀 몇 문장을 쓰고 지워버리기를 반복했다. 올해 초 다짐했던 운동하기나 매일 글쓰기 같은 것들은 서서히 흐릿해지고 나는 왜 사는 걸까 와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우울감에 빠져버렸다. 상황이 조금 나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억지로라도 노트를 꺼내 펼쳤는데, 우연히 펼쳐진 페이지에 예전에 적어둔 반 고흐의 말이 눈에 들어왔다.
'너는 그림을 그릴 능력이 없어'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그때는 반드시 그림을 그려라. 그러면 그 목소리는 잠잠해질 것이다.
죽은 지 한참 된 반 고흐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순간 머리가 멍해져 버렸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불안은 나의 가장 약한 곳을 겨냥하고 다가왔다. 너는 사랑받을 수 없어, 너는 할 수 없어, 너는 행복해질 수 없어 라고 속삭이며 서서히 나의 온몸을 죄여 오다 이내 좌절과 절망으로 진화했다.
나에게 불안이 다가와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보란 듯이 정반대로 행동하고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어린아이가 거대한 괴물에게 돌을 던지듯이 그렇게 밤을 지새웠다.
서서히 아침이 오자 나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던 목소리는 사라지고 눈 앞에 거대한 괴물은 사실 나의 그림자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다른 삶이 시작됐다. 어쩌면 불안은 내가 만든 그림자 괴물일지도 모른다.
반 고흐 덕분에 다시 글을 쓴다. 물론 당신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지금 나의 이 글의 조각들도 누군가에게 닿아 작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하며
불안과 밤.
<시작할 용기가 없는 당신에게>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