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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련 Apr 07. 2018

팔자 센 여자

[Book 4] 여덟 단어, 박웅현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에는 이십 대 후반의 여자들이 들어가는 상자가 있다. 그 상자 속에는 어딘가 결혼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을 것이고, 여자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추구하는 오십 대 남자의 상자 속에는 회사 복도에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인사를 받을 만한 위치에 있어야 하고 주말이면 골프를 치러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가 있다. 삼십 대 후반의 남자라면, 회사에서 과장쯤 되어 있어야 하고, 부인과 아이들 한두 명쯤-더 완벽하게는 남자아이 하나 여자 아이 하나-이 있는 집안의 가장이어야 한다. 만약 아이들만 있거나, 부인만 있다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호기심 내지 걱정에 찬 시선을 받게 된다. 모두들 일정한 틀을 만들고 그 틀의 형태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

  물론 그 틀은 대부분 가장 보편적이고 합당한 기준으로 짜인 틀일 것이고, 그 틀을 통해 각 개인이 행복을 찾을 수 있고 사회가 안정을 찾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틀 속에 산다는 것은 틀 밖의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닐까? 그래서 그만큼의 가능성을 빼앗긴다는 말이 아닐까? 사회면 기삿거리가 되지 않고는 이십 대 나이에 대학 교수가 되기도 힘들고, 육십 대 나이에 대학생이 되기도 힘든 사회에는 그 사람들이 던져줄 수 있는 새로운 생각들을 영원히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여자가 왜 그렇게 드세?"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는 사회는 그 사회의 인적 자원의 절반이 가질 수 있는 힘을 포기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가끔은 틀을 벗어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성공한 사람들은 꼭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야 하는가? 대학생은 꼭 이십 대여야 하는가? 윗사람은 꼭 권위를 지켜야만 하는가? 여자는 꼭 여자답게 걸어야 하는가?


        여덟 단어, 박웅현



팔자 센 여자

돌이켜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기가 세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실제로 내 행동이나 말투에 문제가 있었던가?를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다. 순종적이거나 수동적이지는 않았지만, 기를 꺾어야 할 만큼 나대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무튼 주변 어른들의 평가가 그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남자 담임 선생님은 ‘6학년 여자 애들이 기가 세다’는 (주변 사람에게 다 들리는) 혼잣말을 자주 하셨고, 여자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우리 학년이 소풍을 가거나 체험학습을 가는 날마다 비가 왔다는 이유로 ‘너네들 기가 세서 소풍 갈 때마다 비가 온다’는 선생님들의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어린 마음에 '그게 우리 탓은 아니지 않나?' 하는 반발심이 들긴 했지만,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쌓여온 '팔자 센 여자'라는 이미지를, '우린 그런 얘길 들어도 되는 건가 보다' 하고 스스로에게 투영시켰을 뿐이다.




나의 학창 시절에는 '현재의 나'를 만드는 데에 큰 영향을 끼친 두 분의 선생님이 계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었던 30대 중후반의 여자 선생님 K,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었던 40대 초중반의 또 다른 여자 선생님 C.

 

먼저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야기를 꺼내보면, 선생님 K는 항상 여성스러운 꾸밈을 하시고 출근하시는 분이었다. 언젠가 수업 시간 중에 꿈꾸듯이 허공을 바라보며 이런 얘길 하신 적이 있다. "메이크업 가면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 매일매일 화장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 아침마다 가면처럼 얼굴에 썼다가 퇴근하고 클렌징할 필요 없이 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 당시 11살이었던 나는 '메이크업의 고단함'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고, 단지 힘들어하는 선생님이 안쓰러웠을 뿐이었다.


또 다른 하루, 선생님 K의 한마디 때문에 말 그대로 '멘붕'이 온 적이 있었다. "여학생 여러분! 여자들은 걸음걸이가 예뻐야 해요. 걸을 때 양쪽 무릎을 가볍게 부딪히면서 걷는다는 기분으로 걸으면 일자 걸음을 걸을 수 있어요. 걸을 때는 항상 무릎을 부딪히면서 걸어요!"


이 상황에 내가 멘붕에 빠졌던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나는 그때까지 '남자와 여자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때도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건 내게 '화장실을 따로 써야 한다'거나, '남학생은 치마를 입을 수 없다'는 정도의 문제였다. 게다가 난 대체적으로 2차 성징이 늦은 편이었는데, 키가 작거나 왜소하지는 않았지만, 브래지어를 한다거나 초경하는 시기가 친구들보다 1~2년쯤 늦었다. 신체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이성에 대한 관심이 참 늦어서 20살 때까지 이성친구를 사귀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땐 남자인 친구나 여자인 친구나 나에겐 그저 친구였을 뿐, 다른 것이 없었다.


아직도 두 무릎을 사뿐히 부딪히며 일자 걸음을 걷는 습관이 남은 나에게, 선생님 K는 좋은 일을 하신 건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몇 번 '걸음걸이가 예쁘다'는 칭찬을 들은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11살에 느꼈던 그 충격의 무게는 말로 설명되지가 않는다. 아직도 그날 교실의 분위기와 창문 바깥의 하늘, 선생님의 표정까지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여자는 달라야 한다'는 가르침에 대한 충격이 보통 크지 않았음을 증명해준다.




두 번째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선생님 C와의 기억이다. 선생님 C는 중학교 1학년 때 우리 담임 선생님이셨고, 3년 내내 사회과목을 담당하신 선생님이었다. 나이는 40대 중반이셨는데, 당시의 나보다 키가 작으셨고 단정한 커트머리를 하신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셨다. 그때는 이런 말이 없었지만, '츤데레'의 매력을 가진 분이었다. 혼을 내거나 수업 중에는 냉정하시지만, 일대일로 대화를 해보면 따뜻하신 분이었다. 당시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져 학교 수업료를 지원받았던 나는,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대화할 일이 잦았기 때문에 그걸 느낄 수 있는 날이 다른 친구들보다 더 많았다. 나 이외에 다른 친구들도 선생님의 속정을 알았던 걸 보면, 학생들에게 외강내유의 선생님이셨던 건 맞는 기억인 것 같다.


선생님 C에게는 따라다니는 소문이 있었다. 선생님의 남편은 치과의사이고, 본인도 학교 선생님이라 부자이긴 하지만, 불임이라 아이가 없다는 점. 그래서 불임 치료도 받고, 점집도 다니고, 이름까지 바꿔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점. 결벽증이 있어 깔끔 떠는 게 유난해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소문. 크게 눈에 띄지 않는 학교 생활을 했던 나에게까지 이 소문이 알려진 것을 보면 그때 당시 학교에 있던 사람들 중 이 소문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단지 40대 중반의 부부가 아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왜 저런 소문을 달고 사셔야 했을까. 14살의 나는 스스로 옳은 생각을 하기에 너무 어렸던 것 같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그 소문이 불합리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선생님 C는 깔끔한 걸 좋아하시기는 했다. 분필을 커버 없이 그냥 잡으시는 경우가 없었고, 늘 정리정돈이 완벽했고, 다른 선생님들과 도시락을 함께 드실 때에도 음식에 손을 대기 전에 반찬을 미리 다 나누셨다. 하지만 그런 성격 때문에 임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소문은 ‘아이가 없는 40대 부부’와 ‘결벽’을 가진 사람을 은근히 비하하는 비겁함이었다고 생각한다.


최근엔, 선생님 부부는 자발적인 딩크족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선생님은 거의 매일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냐'라고 슬쩍 웃음을 띄우시며 혼을 내시곤 했다. 사실 우리 반에서 그렇게 큰 사고를 치는 아이가 없었고, 우리가 매일 했던 일은 쉬는 시간에 엄청나게 떠드는 일 뿐이었으니까, 아마 장난에 가까운 말이었을 것이다. 점점 추워지던 어떤 날, 사회 수업시간에 이런 얘길 하신 적이 있다. "팔자 세다는 얘기 많이 듣지?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내가 맨날 말 잘 들으라고 하는 것도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돼. 어른들이 너희가 팔자가 세다고 억누르려고 하는 건, 다루기 쉬운 아이를 만들려고 그러는 거야. 팔자 세다는 말, 기죽지도 말고, 무서워하지 마."


우리 반이 30명 정도였는데, 이 말을 기억하는 친구가 또 있을까 궁금하다. 14살에 선생님 C가 해주신 저 말씀은, 14년이 지난 후의 내 머릿속에도 생생히 남아 있다. 어릴 때부터 늘 우리가 기가 세다며 억누르려고 했던 무언의 혹은 언어의 압력들. '팔자 세다'는 말을 두려워하지 말라던 선생님의 말씀에 안도했던 어린 마음. 선생님의 말씀대로라면 '기가 센' 여자는 다루기 쉽지 않은 여자라는 말이니, 요즘 세상의 트렌드와도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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