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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련 Aug 15. 2018

그냥, 나처럼 생긴, 나

[Book 11]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속물적'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지만 그녀가 아름다워야 사람들이 자신을 다르게 대한다는 것도 안다. 그녀는 자신의 투쟁을 이중적이라고 묘사했다. "저는 아름다움의 진실에 눈을 뜨고 싶어요. 그러나 제 자아가 그걸 가로막죠. 아름다움에 집착해선 안 된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집착하죠. 신경 쓰고 싶지 않지만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어요." 가브리엘은 자신의 몸을 가리키고 머리를 쓸어 올린 후 말했다. "전 나이가 들면 이 모든 걸 잃게 되리란 걸 알아요. 하지만 가능한 한 오래 간직하고 싶어요." 그녀가 이런 내적 갈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브리엘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소리가 모두 들리는 듯했다. "예뻐 보이면 기분이 좋아요. 그러나 외모를 중요시해선 안 돼요. 하지만 외모는 정말 중요하죠."


우리는 여성에게 아름다움이 주는 권력을 누리라고 강조하는 이야기를 각종 미디어를 통해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아름다움은 다른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일종의 권력을 부여해준다. 그러나 이 권력의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직해지는 것이 좋겠다.


우선 이 권력은 타고나지 않으면 획득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 할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자주 했다. "네 젊음이나 미모를 너무 자랑하지 마라. 그건 네가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고 아무리 노력해도 간직할 수 없는 거란다."였다. 우리는 아름다움이 민주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그런 이유로 아름다움이 여성에게 주는 권력은 언제나 불평등을 내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움이 주는 권력은 불안정한 토대에 서 있다. 이 권력은 다른 사람들이 인지해주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이를 좌지우지하는 누군가가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오로지 당신만의 권력도 아니다. 심지어 놀라울 정도로 엄격한 소멸 기한이 주어진 권력이다. 젊음과 아름다움의 상관관계는 거의 불변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이 권력은 여성이 세상에 발을 내딛으면서 사라지기 시작하는 괴기한 성격의 권력이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러네이 엥겔른




그냥, 나처럼 생긴, 나



사실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우선 읽어야 할 책'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책이 덜 괜찮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아마 '내가 예상하는 내용 그대로' 일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맞았다. 책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내가 예상한 것 이상이나 이하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별로라는 말은 아니고,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여자에겐 공감되고 아파하며 읽힐 책이고, 남자에게는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깊어질 책이다.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책을 당겨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최근에 내 마음속에 새로운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나는 나처럼 생겼다.'는 발견. 이 말 한마디로는 완전한 설명이 안 되겠지만, 가장 짧게 요약하자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둔 이후로 특별히 격식을 차려야 하는 날이 아니면 화장을 아예 하지 않고 지냈다. 평범한 외출을 하게 되는 날에는 자외선 차단제를 얇게 두 번 발라주는 게 내 화장의 전부가 됐다. 원래 화장품이나 꾸미는 것에 욕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더욱 '꾸며진 나'와 멀어진 삶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아, 난 이렇게 생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느낌이 마치 가톨릭이나 개신교에서 말하는 '계시'같은 갑작스러운 그런.. 밑도 끝도 없이 떠오른 생각에 스스로 당황할 정도였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두 번 했다. 부산에서 한 번, 서울에서 한 번.


부산에 있는 회사가 나의 첫 회사생활이었는데, 그때는 주 5일 풀메이크업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사실 그렇게 딱딱한 문화를 가진 회사도 아니었고, 모든 여직원들이 풀메이크업을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었는데, 내겐 이유를 모르는 강박이 있었다.


20대 중반의 초짜 회사원이었고, 왠지 회사 사람들 앞에선 편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았고,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꼼꼼히 베이스 메이크업을 하고, 보일 듯 말듯한 잡티는 컨실러로 가리고, 눈썹과 립은 단정하게 하고, 볼터치로 생기를 더하고, 인조 속눈썹으로 눈을 강조하는 풀메이크업을 매일 했다는 사실이 지금은 꿈인가 싶다. '매일 속눈썹을 붙이고 다녔다니..' 정말 스스로도 감탄사가 나올 만큼 부지런했나 보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닐 때는 화장하는 시간이 줄었다. 우선 회사 여직원들이 거의 대부분 민낯에 가까운 얼굴로 출근을 하는 분위기였다. 마침 나도 몸이 좋지 않은 날이 많아지면서 화장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깨끗한 피부 표현과 생기 있는 입술은 포기를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때 나에게 붉은빛의 틴트는 브래지어와 동급인 아이템이었다. 하지 않고는 외출할 수 없는 것. (요즘 브래지어마저 거부하는 운동이 있다는 걸 알지만, 아직 나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급인 것 같아 '할 수 없는 일'이라 해두고 넘어가겠다.)


화장하는 게 어색해질 무렵까지 민낯으로 지내던 어느 날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난 원래 이렇게 생겼지.' 하는.


여태 나는,

동양인답게 또렷하지 않은 이목구비로는 남들 앞에 자신 있게 나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요즘은 30대가 30대로 보이면 안 되는 시절이라서 당연히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믿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전체의 내 모습이 아니라, 아무도 그렇게 날 쳐다보지 않을 가까운 거리에서 '결점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30년을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들이 마치 용암처럼 뿜어져 나오는데, 나에겐 너무나 당황스러운 감정의 분출이었다. 아마 여자로 살면서 '반드시 예뻐져야 하나?'를 고민하는 여성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건 사람의 본능이라 배웠고, 아름다워지려는 것 또한 여성의 본능이라고 공공연하게 말을 하는 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나에게 이런 생각들이 밀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덕분에 이런 책도 읽었고, 이런 글도 남기게 되었다. 아마 외모적인 부분에서 좀 더 스스로를 편안하게 만들라는 뜻이 내 안에서 분출된 게 아닌가 싶다.


사실 남자도 잘생겼다는 칭찬에 기분이 좋듯이 여자들에게도 예쁘다는 말이 칭찬의 뜻인 건 분명하지만,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말속에 갇혀 살고 있는 자신을 자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누군가에겐 예쁜 사람이고, 또 누군가에겐 평범한, 또 다른 누군가에겐 못생긴 사람이겠지만, 그런 판단이 내 삶에 끼어들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렇게 늦게 다시 공부하기 시작한 나는, 거울보다 더 많이 봐야 할 중요한 것이 있는 삶을 선택했다고 믿는다. 지금부터 난, '그냥 나처럼 생겼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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