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취미 생활
감각이 예민한 편이다.
시각, 후각, 촉각, 미각, 청각 모두 그렇다.
일주일 전에 본 사람의 머리길이 차이를 알아보기도 하고, 한 번 본 사람의 얼굴은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채도와 명도 차이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색들도 구분한다. 침대에 까는 이불도 내가 좋아하는-20년 넘게 좋아하는- 비슷한 촉감의 이불들만 깔아야 한다. 냄새도 잘 맡아서 싫어하는 비린내를 귀신같이 알아낸다. 특히 음식에서 해산물-생선 구이 말고는 해산물을 안먹는다. 특히 날 것들과 어패류. 당연히 회도 초밥도 안 먹는다-을 썼을 때는 미각과 후각으로 금새 알아차린다. 조그마한 소리도 잘 들어서 잘 때 꼭 클래식으로 화이트노이즈를 만들어 놔야 잔다.
그래도 오감 중에 비교적 예민한 감각을 고르자면 후각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공공장소나 익숙하지 않는 곳에 가면 괴로울 때가 많다. 온갖 냄새가 섞여서 코를 자극하다 못해 머리까지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그러면서 담배를, 그것도 독한 말보로 레드를 피는 아이러니).
호감도 향기에 따라 달라진다. 그저 그렇다고 생각한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 향이나 그 사람의 이미지와 알맞는 향이 나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고 사람이 괜찮아 보인다. 실제로 요 며칠 전 편의점 알바생의 향기가 너무 좋아서 하마터면 무슨 샴푸쓰시냐고 물어볼 뻔 한 적도 있으니까.
이런 내 후각의 특별함은 어린 시절에도 찾을 수 있다. 7살 무렵이었나, 엄마가 2주간 성지순례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도 아빠는 경계의 대상이자 불편함의 상징이었으므로 엄마가 없는 2주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대용물(?)로 엄마가 즐겨 입던 옷을 방 한쪽에 걸어놨다. 그리고 엄마가 생각날 때마다 아빠가 화를 내거나 불안하게 할 때마다 옷에 남아 있는 엄마의 냄새를 맡으며 마음을 달랬다.
그래서일까. 향수도 여러 개를 쓰고 - 지금 세어보니 9개다- 그것도 하나만 뿌리는 게 아니라 여러 개를 레이어드해서 뿌린다. 올해에는 디퓨져도 아예 직접 만들어서 쓰고 있다(향수도 직접 만들려고 오일도 사놨는데 아직 만들지는 못했다). 지난 번에 만들었던 디퓨져는 왜 때문인지는 몰라도 향이 잘 안나서 실망했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르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감각이 예민해서 고생스럽고 고통스러운 것도 많지만, 그만큼 좋은 점도 있다. 주위의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차려서 위험에 대비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변화를 알아내 중요한 정보를 얻거나 알맞는 칭찬과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점은, 내가 좋아하는 감각-예를 들면 좋아하는 향기라든지,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라든지-을 느끼면 행복함과 만족감의 정도가 매우 높다는 거다. 싫어하는 감각의 자극에 쉽게 기분이 다운되고 나빠질 수 있지만 반대로 좋아하는 감각으로 행복해질 수도 있다.
예전에는 이런 내 예민함이 부정적으로만 여겨졌다. 실제로 사람들은 감각의 예민함을 부정적인 요소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남들은 그냥 넘길만한, 아예 지각도 못하는 그런 감각을 나 혼자 느끼고 고통스러워 하는 걸 이해하지도 이해받지도 못하니까. 하지만 얼마전부터 내 예민함이 사랑스럽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각이 예민해서 불편하기도 하지만, 이런 예민함이 없었다면 고흐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색감의 아름다움과 터너의 그림에서 잔잔히 번져가는 빛의 색을 깊이 느끼지 못했을테니까. 그리고 잠깐 맡은 향기로 과거의 추억을 꺼내보거나 교향곡에서 연주되는 각기 다른 악기들의 특색을 구분하고 그 다름으로 인해 얼마나 곡이 풍성해지고 다양한 매력을 갖게 되는지도 몰랐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