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을 권리, 상처주지 않을 의무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알기가 참 어렵다는 뜻인데 예나 지금이나 유효한 말이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의 마음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심지어 자기 마음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남의 마음은 오죽할까). 서로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 수 있다면 화목한 가정이 더욱 많았을 것이며 사소한 인간관계에서의 갈등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매년 쏟아져 나오는 책들 중에 인간관계에 대한 내용이 많은 걸 보면 그것이 불가능한 과제임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몇 명의 유명인이 자살했다. 특히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들의 자살은 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의 자살 원인 중에 '악플'이 있었다. 악플러들은 익명성을 담보로 자신들의 생각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냈고, 그것을 감당하다 못해 아까운 생명이 스러진 것이다.
비단 악플만이 아니다. 살면서 의도했든 안했든 주변 사람에게 말로나 행동으로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조심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사실을 말해도 수용자에 따라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상처를 주고 받는 상황이 있다. 내 생각에 이런 문제는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만약, 서로의 마음을 들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마음의 알림이 있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했을 때, "상처받았습니다" 라는 알림이 뜨는 거다. 많은 경우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똑같은 상황과 말, 행동에 상처를 받는다. 상대방이 어떤 경우에 상처를 받는지 알게 된다면 의사소통이나 인간관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상처받았음을 바로 알게 된다면, 그것을 반복할 여지도 줄어들 거라 생각한다. 어지간히 꼬인 사람이 아니고서야 상처주는 말을 반복할리는 없을테니까.
악플러들이 자신들의 추한 마음의 찌꺼기를 배설할 때, 그들의 눈 앞에 그 대상이 상처받았음을, "한 번만 더 댓글이 달리면 자살할 예정입니다", "상대방의 영혼이 죽어가는 중입니다"라는 문구가 뜬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무심코 내뱉은 말이 누군가의 영혼을 서서히 죽이고 있음을, 그리고 그게 댐을 무너뜨리는 한 방울의 빗방울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이끌었다는 걸 알면 그렇게 섣불리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부터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기"라는 내용의 책들을 접한다. 맞는 말이다. 자신의 내면이 강하다면 같잖은 사람들의 말에 상처받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여기서 나는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내용의 책들은 은연중에 상처받는 사람에게 그 책임을 전가한다고 할수 있다. 이는 부당한 일이다. 상처 잘 받는 사람을 채근해야 할 때가 있지만 내 생각에 그런 경우는 별로 없으며 오히려 상처를 주는 사람, 상처를 주는 사회, 강해져야 하고 상처받는 사람을 문제시하는 분위기가 문제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외모만큼이나 각기 다른 내면을 가지고 태어났고 이로 인해 나타나는 성격적 특징이나 기질적인 부분은 그 사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다. 유전적이든 신경생리적인 이유든-최근 연구에서는 내향인과 외향인의 뇌가 다르며 신경전달물질의 작용 기전에 차이를 보인다는 결과가 있었다-생득적인 차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고양이에게 넌 왜 개와 같지 않냐고, 사슴에게 왜 사자처럼 포효하지 못하냐고 하는 것과 같다.
물론 그런 선천적인 부분이 개선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사회 적응이나 자기 계발을 위해-건 나도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그것이 개인에게 압력을 가하고 개인의 자유와 영혼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고통이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 건 맞지만, 인간은 쇠가 아니라서-쇠도 감당할 수 없는 힘에는 부러진다-한계를 넘는 고통에 파괴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한계가 개개인마다 다르다는 거다. 나는 견딜 수 있는 고통이 타인에게는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키가 180cm인 사람이 160cm인 사람에게 당신도 나처럼하면 키가 클 수 있다고 할 수 없듯이, 여러 가지 차이를 무시하고 그저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하는 건 폭력이나 다름없다(내가 성공 스토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기 계발서 무용론을 지지하는 것도. 각자가 처한 환경이 다르고 생물학적인 조건도 다른데 자기처럼 하면 성공한다는 말이 통할 수 있을까).
우리에겐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있듯이, 상처를 주지 않을 의무도 있다. 앞서 말했듯 살면서 상처를 주고 받는 건 필연적이다. 하지만 자신이 상처받는 게 싫다면 타인 또한 마찬가지이며 그렇기에 각자가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을 의무가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특히 요즘 '쿨함'과 '직설적인' 사람이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쿨함, 직설적인 성격과 무례함, 공격적인 성격은 한끗 차이거나 동의어다. 자신의 개성을 지킨다는 미명하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