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은 기억이 있나요?
이제는 양극성 장애로 부르는 조울증-그럼에도 여전히 이 이름이 곧잘 쓰인다-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증'과 '울증'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신의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은 조증과 울증이 단지 기분 변화만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양극성 장애 환자에게 기분 하나 컨트롤 못하냐고 말하기 쉽다.
그렇지만 조증과 울증은 기분 변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분 그 이상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기분 뿐만 아니라 사고, 생각의 속도, 자존감, 인지능력 등 다방면에서의 변화는 환자의 삶을 롤로코스터에 태워 춤추는 곡선을 그린다. 언제 끝날지, 어떤 코스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없는 롤로코스터 말이다.
조증일 때는 KTX를 타고 빠르게 달리는 기차 옆의 풍경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산다. 모든 것이 빠르게, 빠르게, 또 빠르게 흘러가고 그에 맞춰 나도 빨라진다. 행동이 빨라지고 생각은 탁구대 위에서 운동중인 탁구공처럼 이리저리 정신없이, 산만하게 움직인다.
반면, 울증일 때는 무궁화호 혹은 비둘기호-이 기차를 안다면 당신의 나이는 아마...?-를 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나도 세상도 행동도 생각도, 모든 게 다 느려져서 마치 나 혼자 느림의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울증 상태에서 사고의 지연과 행동이 굼떠진다.
모든 게 느려진 울증의 시기에서 환자를 괴롭게 하는 증상 중 하나가 "반추"다. 사전상 의미는 "어떤 일을 되풀이하여 음미하거나 생각하다"인데 울증에서는 주로 부정적인 사건이나 잊고 싶은 기억들이 반추의 순환에서 나를 집어삼킨다.
양극성 장애는 환자에게 광범위한 인지 능력의 저하를 불러일으킨다. 그 중에는 기억력의 저하도 있는데 구멍이 송송 뚫린 치즈처럼 기억에 부분적인 공백이 생긴다. 안타깝게도 그 공백 중에는 좋은 기억이 나쁜 기억보다 더 많은 것 같다. 부정적인 것들에 집중하는 울증의 시기에는 안 그래도 나빴던 기억이 잘 떠오르는데, 반추의 순환이 시작되면 머리속에서 안좋았던 기억들이 끊임없이 재생된다. 아마도 이런 반추 때문에 양극성 장애 환자들이 울증일 때 자살충동과 자살시도가 빈번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나 또한 반추 과정에서 과거에 내가 저지른 잘못이나 경험했던 부정적 사건들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거기서 느낀 죄책감과 수치심 등을 곱씹다보면 삶보다는 죽음에 더 가까이 갔으니까.
웰부트린 덕분인지, 조금은 나아진 상황 덕분인지는 몰라도 우울 상태가 제법 괜찮아진 요즘은 비교적 약한 기억들, 쉽게 말해 이불킥할만한 사건들이 종종 떠오른다. 심각한 사건이 떠오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다가도 내 몫으로 느껴지는 부끄러움에 나 혼자만 되새기고 있는 기억으로부터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영화에서 특정 기억을 삭제하는 기술이 나온다. 양극성 장애는 긍정적인 기억을 좀 더 지우고 부정적인 기억은 더 선명하게 보존하는 것 같다. 그래서 기억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다리가 끊어져 있는 강가에 다다른 것처럼 어디선가 막히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부분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언젠가는 좋은 기억들도 되새김질하는 반추가 있을까. 잊고 싶은 기억이 아니라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도 꾸준히 재생되는 그런 상태 말이다. 그래야 좀 더 공평하지 않냐고, 대답해 줄 사람 없는 질문을 마음 속으로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