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클라우드 <카뮈x최수철> 서평
작품은 작가와 작가의 삶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작품에는 작가의 삶과 경험, 생각 등이 투영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그의 삶과 연관시켜보곤 한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이번 클래식 클라우드 <카뮈>는 내게 뜻깊은 책이었다. <이방인>을 10번 이상 읽을 정도로 푹 빠져있는 나에게는 언젠가는 카뮈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럼으로써 그의 작품과 그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이 세상에 나왔고 감사하게도 서평단에 당첨이 되었으니까.
아직 나는 <이방인>이외의 카뮈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어떻게 카뮈를 좋아할 수 있냐고, 카뮈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첫 눈에 빠져버리는 사랑도 있듯 <이방인>에서 느꼈던 강렬함만으로도 나는 카뮈에게 반했다.
어떤 한 사람을 만나 그 사람과 가까워질 때는 어느 한 부분이 마음에 들고 그러다 그의 다른 부분들이 눈에 들어와 결국에는 다양한 모습을 사랑하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이방인>을 통해 카뮈와 가까워지고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면, <카뮈>를 읽으면서 나는 비로소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마치 이전에는 스쳐지나가며 '좋은 사람 같아'라고 호감을 느꼈다면, 지금은 '만나보니-혹은 이야기해보니-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라며 사랑에 빠진 거랄까.
이 책은 카뮈의 생애와 그의 작품에서 중요하게 작용했던 장소와 사람을 중심으로 카뮈와 그의 작품을 만나보는 시간이다. 저자가 직접 그곳들을 방문하며 느꼈던 감정과 함께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한편의 여행기를 보는 느낌도 든다. 카뮈 탐험대의 일원으로 카뮈의 흔적을 추적하는 것 같기도 하고.
탐험대에게는 유능한 인도자가 필수적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불문학을 전공하고 소설가인 저자로부터 풍부한 문학적 지식과 탁월한 해석을 통해 카뮈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다.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 여러 장소를 옮기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장소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 어떤 힘, 그 무언가를 부여한다. 카뮈는 알제, 타파사, 오랑 등을 거치면서 각기 다른 삶의 변곡점을 마주했다. 어떤 장소는 그에게 힘을 주기도 하고 영감의 원천이기도 했다. 반면에 다른 사람에게는 좋다고 여겨지는 곳이 그에게는 악몽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앞에서 작품에는 작가의 삶이 반영되어 있다고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보다 더 많은 요소가 더 깊이 반영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카뮈 하면 <부조리>와 <반항>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역시 그랬다. 카뮈가 말한 부조리에는 세계 뿐만 아니라 '나'의 부조리 또한 포함된다. 카뮈는 이 부조리를 인식하고 여기에 굴복해서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거센 풍랑을 헤치고 나가는 것, 마치 연어가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산란을 하듯 인생에서 마주치는 부조리에 저항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카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신의 삶, 반항, 자유를 느끼는 것, 그것을 최대한 많이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사는 것이며 최대한 많이 사는 것이다."(237p)
카뮈가 폐병으로 고생했던 것처럼 나 또한 그런 병이 있다. 때문에 이따금 절망과 좌절에 휩싸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세계와 나 자신에게 존재하는 부조리에 압도당한다. 이번에 <카뮈>를 읽으면서 부조리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더해 그것에 대한 '저항'이 있음을 새롭게 배웠다. 카뮈와 나는 다른 인간이고, 그렇기에 각기 다른 인생을 살테지만 그가 가졌던 저항 정신만큼은 나 또한 간직할만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삶은 비극적이지만, 절망하기에는 충분히 아름다우며 절망적인 '상황'에 굴복하는 것이야말로 절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니 그의 작품들이 읽고 싶어졌다. 카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 좋아할 만한 이유를, 카뮈가 멀게만 느껴졌던 사람들에게는 가까워질 단서를 제공해 줄 클래식 클라우드의 <카뮈x최수철>. 꼭 읽으세요, 아니 두 번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