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낫느냐고 묻지 마세요. 저도 모르거든요.
내가 이렇게 서재에 앉아 있노라면,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병환은 이제 다 나으셨습니까?"하고 묻는다. 나는 똑같은 질문을 몇 번씩이나 받으면서, 그때마다 머뭇거리다 결국엔 언제나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게끔 되어 버렸다. 그것은 "예, 뭐 그럭저럭 살고 있습니다."라는 이상한 인사였다.
(...)
"그야 물론 다 나았다고는 말씀 못하실 테죠. 그렇게 자주 재발을 하시니. 뭐, 원래의 병이 계속되고 있는 거예요."
이 계속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좋은 것을 배웠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뭐 그럭저럭 살고 있습니다." 라는 인사를 그만두고 "병은 아직 계속 중입니다."라는 말로 바꾸었다.
- 나쓰메 소세키, <유리문 안에서>
위궤양을 달고 살았던, 회복과 재발을 반복하다 결국 위궤양으로 사망한 나쓰메 소세키. 그도 자꾸만 들려오는 병의 경과에 대한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병이 다 낫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병이 쉽게 낫지 않는 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괴롭고 답답한 일이다. 계속 그런 말을 듣다보면 걱정해서 물어보는 것일테지만, 병이 낫지 않는 이유가 나한테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어쨌거나 탐탁지 않는 질문임에는 틀림이 없다.
위궤양의 회복과 재발을 반복하며 수시로 요양을 했던 나쓰메 소세키처럼 나의 조울증 또한 회복과 악화(혹은 재발)의 순환을 반복한다. 발병이 있으면 당연히 완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뭇사람들의 사고로는 만성질환인 조울증의 특성을 이해하기 어려운 듯 싶다. 조울증에 대한 지식, 정신질환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조울증은 어떤 병이고 그래서 그런 거라고, 구구절절 이야기하기엔 그들이 이해할 거라는 보장도 없고 나 또한 그런 일로 힘을 빼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대체로 "그저 그래요. 조금 괜찮아졌어요." 이런 정도로 말하고 만다.
언젠가 심리교육 시간에 담당 의사선생님께서 조울증을 고혈압에 비유한 적이 있었다. 고혈압 또한 조울증 보다는 아니지만 평생 관리해야 하고 완치가 힘든 편에 속하기 때문에 비슷한 점이 있다. 고혈압 환자들이 꾸준히 약을 먹는 것처럼 조울증 또한 꾸준한 약물치료와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완치는 아니지만 비교적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그러니까 너무 절망하지 말라는 것이 의사 선생님의 말이었다.
몇몇 글에서 밝힌 적이 있지만 조울증은 현재 완치의 개념이 없는, "재발률이 높고 만성적인 경과를 보일 가능성이 높은 정신질환"이다. 조울증 환자의 "약 25~50%가 자살을 시도하며, 실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는 15~19%로 매우 높다". 뿐만 아니라 조울증 환자들은 증상이 상당 부분 나아진 후에도-보통 '관해'라고 부르는 상태-여전히 회복되지 않는 심리사회적 기능으로 인해 "여전히 중대하고 지속적인 대인관계 문제를 경험하고, 사회적 그리고 직업적 장애로 고통받는다"(이상 <양극성 장애 : 조울병의 이해와 치료>,대한우울조울병학회, 시그마프레스>에서 인용).
그렇기에 조울증은 여타 만성질환과는 궤를 달리하는 고통이 있다. 신체질환 또한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조울증은 정신질환일 뿐만 아니라 신체질환과 사회적, 직업적인 문제까지 초래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조울증의 여파로 인해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과는 꽤나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요즘 뭐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정말 곤혹스럽다. 작가를 준비하고 있기에 딱히 무엇을 하고 있다, 공무원 준비처럼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좋고 상대방이 이해하기 편한 답변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명절 같이 안면은 있지만 그리 친하지 않고 내 사정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을 만날 만한 기회를 가급적이면 만들지 않는다. 설명하는 것 자체도 피곤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저런 훈수들을 늘어놓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내가 조울증 환자라는 것이 이전처럼 부끄럽지는 않다. 대놓고 "나 조울증이야"라고 떠벌리지는 않지만, 말해도 괜찮겠다 싶은 사람들에게는 조울증이 있다는 걸 밝힐 정도는 되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아직 "이제는 좀 괜찮아졌어?", "병은 다 나았니?", "그건 언제 다 나아?" 이런 말을 듣는 게 너무 힘들다. 차라리 아예 내 병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도 종종 든다. 혹시라도 자신이 이런 말을 했던 사람이라면, 말하기 전에 한 번만, 아니 두 세번 생각했으면 좋겠다.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도 듣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이 될 수 있으니까. 그 대신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 나을 거 같다. "요즘 재미있는 게 뭐야?", "전에 이런 거 좋아했는데, 지금도 그래?". 섣불리 우리의 병에 대해, 우리의 앞날에 대해, 우리의 마음에 대해 짐작하고 동정하고 충고하고 공감한다고 말하지 말았으면 한다. 같은 조울증이라도 각각 다른 증상을 보이고 그 정도도 다르기 때문에 쉽게 '공감한다', '안다'고 말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조울증도 아니면서 다 아는 척 말하는 게 우리가 볼 때는 말도 안될 뿐더러 심지어 가소롭기까지 하니까.
친척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몇몇 분들에게 내 상황을 알리긴 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앞에서 말한, 부담스럽고 곤혹스러우며 괴로운 질문들을 지속적으로 한다. 하지만 외삼촌 한 분 만은 그런 질문을 전혀 하지 않는다. 다만 몸은 건강한지, 운동은 잘하고 있는지,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그리고 그걸 하고 있는지만 물어본다. 그리고 항상 몸이 건강하면 그걸로 됐다고, 인생은 마라톤이니까 너무 빨리 뭔가를 하려고 하지말라고, 조급해하지 말라는 말을 하신다. 조울증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시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큰 힘이되고 눈물날 정도로 정말 고맙다.
2년전에 보내신 삼촌의 문자를 아직도 간직하고 틈틈이 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삶은 살아가며 후회하고 반성하고 행동하고 또 반복하고 그렇게 사는거야 가치관만 잃지 말고...잘자"
나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삼촌이 해주셨던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