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ail of Argo

누군가의 25년

by Argo

코로나 19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자고 일어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는 감염자 수에 숨이 턱턱 막히기도 하고 틈만 나면 네이버 검색창에 내가 사는 곳에 신규 환자가 등장하지는 않았는지 쳐보며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확진자는 763명, 사망자는 7명이다. 사망자가 생겼다는 기사를 처음 봤을 때 사망자가 생겼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이내 나는 다른 것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서 부유하고 있다.


25년.

첫 사망자가 정신병동에 입원했던 시간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코로나로 인해 누군가가 사망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실제로 댓글들도 거기에만 주목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죽음을 알리는 활자들 속에서 25년이라는 시간이 마음 속에 깊이 박혔다.




나는 지금까지 폐쇄병동에 3번 입원했다. 가장 오래 있었을 때가 2주~3주 정도로 그리 긴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폐쇄병동에서 보냈던 시간은 내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자 마음 속 깊이 담아둔 흔적으로 남았다. 입원했던 곳의 시설이 좋았고 의료진도 인격적이었지만 폐쇄병동이라는 장소, 그리고 그 곳에 있는 환자들, 그 환자 속의 '나'는 평범하지 못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할, 그리고 경험하지 못할 일들을 겪었으니까.


폐쇄병동. 대게 정신병동을 다르게 부르는 폐쇄병동은 말그대로 "폐쇄"되어 있는 장소다. 내가 입원했던 곳은 대학병원으로 한 건물의 한 층을 폐쇄병동으로 쓰고 있었다. 출입구는 한 곳으로 안과 밖에서 잠그게 되어 있으며 의료진 또한 열쇠가 있거나 누군가 열어주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었다. 비상구가 두 군데 있지만 그곳들도 열쇠가 있어야 안에서 열 수 있기 때문에 문을 통해 외부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창문 또한 작기 때문에 창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한마디로 탈출이 불가한, <쇼생크 탈출>의 앤디도 꼼짝없이 퇴원할 날만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는 곳이었다.


봉쇄된 문, 타인의 허락이 있어야만 열리는 문은 단순히 열리지 않는 문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자유 또한 닫혀있다는 뜻이다. 자유의 문이 닫힌 환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으며 정해진 시간에 자야한다. 이것은 입원한 날부터 퇴원하는 순간까지 지켜져야 하는 절대적인 규칙이다. 또한 병동의 프로그램에 따라 시간을 보내야 한다. 오전과 오후에 각각 두 시간씩 진행되는 각기 다른 프로그램은 입원한 환자들의 다양성-질환의 종류와 증상의 정도, 연령대 등의 편차-을 고려하여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대게의 경우-적어도 나에게는-지루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유일하게 기다렸던 시간은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야외활동으로 폐쇄병동과 연결되어 있는 옥상-물론 높디 높은 펜스가 빈틈없이 막고 있다-에서 배드민턴이나 제기 차기 등을 하는 시간이었다. 비록 제한된 공간과 제한된 시간이었지만 유일하게 바깥 공기를, 그 속에 스며있는 희미한 자유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니까.




자유가 없다는 것. 이것이 폐쇄병동의 가장 큰 문제다. 자살, 자해 위험이 있는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복도와 휴게실 등 병실을 제외한 모든 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 수시로 의료진들의 확인을 받고 관찰하는 시선을 느끼며 지내는 건 불편함을 넘어 불쾌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내가 재발을 막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불쾌함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정신질환자들은 폐쇄병동에 입원하는걸까? 인간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해도 무방할 '자유'가 거의 박탈당하는 곳에 입원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환자의 안전과 증상의 개선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폐쇄병동에 입원하는 경우는 자의입원과 강제입원으로 나뉜다. 환자 스스로 입원의 필요성을 느끼고 제발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자의 입원이라면 보호자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입원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판단에 의해 강제적으로 입원하는 것이 강제 입원이다. 입원이라는 측면에서 이 둘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퇴원'이라는 관문을 놓고 보면 큰 차이가 있다. 자의입원의 경우 의료진의 동의가 있어야 하지만 대게의 경우 환자의 요청에 의해 퇴원이 가능하다. 환자의 의사가 꽤 반영되는 자의입원과 달리 강제입원의 경우 의료진과 보호자의 판단에 따라 퇴원 여부가 결정된다. 내 경우에는 세 번 다 자의입원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하기에 증상이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고 생각되면 의료진과 보호자와 상의 후에 퇴원했다. 하지만 내가 입원했을 때 봤던 대다수의 환자들은 의료진과 보호자의 의견에 따라 환자의 소망과는 다르게 입원해 있어야 했다.


폐쇄병동에서의 삶은 보호된 삶, 자유를 담보로 얻은 안전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자해와 자살을 막기 위해 그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각종 물건들의 반입이 금지된다. 유리로 되어있는 화장품 병도 안되고 심지어 수건의 길이까지 제한된다. 전자기기의 반입도 금지되는데 단순 기능이 있는 mp3만 가능하다. 이런저런 제약들이 많은만큼 생명을 위협할 만한 요소가 극히 적다. 그리고 증상의 안정을 위해 외부의 스트레스 요인을 상당 부분 차단하기 때문에-정신질환의 경우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가족과의 불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기타 여러 생활 스트레스나 중요한 사건의 발생으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충격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쉬운 곳이 폐쇄병동이다- 그만큼 회복될 가능성도 크다.


그럼에도 환자들의 대다수는 폐쇄병동에서의 생활을 반기지 않는다. 이미 증상이 너무 심각해져서 각종 기능의 저하가 뚜렷하고-대개 이 경우는 영구적인 손상을 의미한다- 의사표현이나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으며 일상 생활을 유지하기 힘든 환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환자들은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한다. 어쩔 수 없이 폐쇄병동을 찾는 것이지 기쁘고 반가운 마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첫 사망자의 25년에 마음이 간 이유는 폐쇄병동에서의 25년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를 비롯한 장기 입원 환자와 오랜 시간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 그리고 그 보호자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폐쇄병동 입원과 관련된 법이 개정된 이후로 년 단위의 장기 입원이 매우 힘들어졌다. 따라서 대다수의 환자들은 길어야 몇 개월 정도 있다가 퇴원한다. 하지만 어떤 환자들은 보호자들의 능력 부족-경제적인 문제나 가족 구성원의 사망 혹은 질병 등 기타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환자를 돌볼 수 없는 경우-이나 무관심 때문에 폐쇄병동이나 정신요양원에 보내져 장기 입원을 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내가 만났던 환자들 중에는 장기 입원까지는 아니더라도 환자의 회복과 삶의 질 향상에 별로 관심이 없는 보호자들도 꽤 있었다. 그래서 그냥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을 복용시키거나-이게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증상에 따라 약을 적절히 조정하도록 보호자가 의사와 소통해야 하는데 이 과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환자가 문제행동을 일으키지 못하게 약물을 과하게 처방받도록 하기도 한다. 그리고 상태가 나빠지면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시설로 보내거나 주간보호센터로 돌린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보호자들의 행동을 잔인하다며,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정신질환자로서 그들을 이해한다. 개중에는 애초에 환자에게 관심과 애정이 없기 때문에 방치하고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게의 경우 처음에는 어떻게든 환자의 증상 개선을 위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다가 더 이상 진전이 없음을 보고 포기하거나 탈진해서 손을 놓아버리는 경우가 많다. 부모교육에 참석했던 엄마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장기간-최소 5년 이상, 대게 10년 이상-정신질환을 앓은 환자의 보호자들이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러 방법을 시도했음에도 나아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보호자-보호자가 부모라면 둘 다 혹은 한 명이-의 건강 문제-실제로 어떤 보호자는 심장 질환이나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까지 생겼다-까지 생기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내버려둔다고. 그래서 약물이 늘면 느는데로 놔두고 생활-특히 식습관-도 마음대로 하게 하고 점차 증상이 심각해지면 주간보호센터를 비롯해 단기적인 돌봄시설에 맡기다가 결국에는 요양원 같이 장기적인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곳에 맡긴다고 한다.




첫 사망자의 경우 어떤 사유로 25년간 폐쇄병동에 입원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그가 보냈을 25년의 세월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만은 안다. 30대 후반에, 직장인이었다면 한창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을 그 때에 폐쇄병동의 문을 두드렸을 그는 자신의 끝을 예상했을까. 자신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리라는 것을, 그것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을 겪다가 사망한다는 걸 생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정신질환 중에서 대표적인 만성질환으로 꼽히는 조울증을 앓고 있는 나는 첫 사망자에게 연민과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 어쩌면 나도 그 사람처럼 되었을 수도 혹은 가깝거나 먼 미래에 그렇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주 만족할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일상 생활을 유지하고 있지만 늘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며 산다. 질환의 특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낙관적인 미래가 쉽게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인 기준에서 볼 때 그마저도 상당히 힘들고 고된 과정이니까.


눈을 감는 순간 어쩌면 그는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사는 게 좋은 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정신질환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죽음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길고 긴 투병의 시간, 증상과 주위의 편견, 각종 제약들과의 싸움이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죽음이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죽음을 향해 걸어갈 필요까지는 없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의 죽음이 무겁게만 다가오지 않았다.


첫 사망자, 25년간 폐쇄병동에서의 삶을 마감한 그를 생각하며, 그리고 나를 비롯한 만성적인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삶에 평안이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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