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ail of Argo

한 달 간의 유예

무섭지만, 그래도 가야하는

by Argo

3월 10일.

원래 내가 병원에 가야하는 날.


코로나로 인해 1주일 째 외출-가벼운 산책(을 빙자한 흡연 타임)을 제외한 외부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대전은 현재 모든 공공도서관이 잠정 휴관 중이라 빌리고 싶었던 책도 포기한 채 집콕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최소 한 달 동안 마트를 가지 않을 정도로 식량(?)을 비축해 두었고 담배도 1보루를 사놔서 좁은 공간에서 사람을 마주할 일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코로나로부터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병원을 가지 않을 것이다. 왠만한 병은 그냥 견디고, 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만성질환자, 특히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럴 수 없다. 우리가 먹는 약은 정해진 시간에 먹어야 하고 지속적으로 먹어야 한다. 하루 이틀 정도는 빼먹어도 큰 문제는 안 생기지만-체내에 남아있는 약효가 지속되는 기간 만큼은-그 기간이 길어지면 재발을 비롯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위험이 매우 높다.


따라서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병원을 가야했다. 3월 10일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하루 사이에 확진자가 3명이 추가되었고 은근히 좁은 대전의 특성상-대전인은 알겠지만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목이 정해져 있다. 내가 다니는 병원도 그 쪽에 있어서 더욱 걱정되고-점차 늘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하므로 어쩔 수 없다. 지난 주부터 미리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확진자가 안 생겨서 보류했었는데 금방 생겼다. 오늘도 일어나서 고민했는데 3명 더 생겼길래 얼른 다녀왔다.


1주일 정도 만에 탄 버스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1~2명 빼고 거리의 사람들 대다수가 마스크를 썼다. 길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고 자주 가던 스벅에는 직원 밖에는 없었다. 평소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갔던 6층의 병원도 계단으로 갔다.


나의 이런 두려움이 다른 사람에게는 조금 과하게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라면 누구나 다 크고 작은 두려움이 있겠지만, 나는 그게 더 크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정신과 약의 특성상 정신질환자들은 다른 사람에 비해 면역력이 떨어지고 다른 약물과 상호작용시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는 정신과 말고 병원에서 약을 처방 받을 때 늘 복용하고 있는 약을 말하며 같이 복용할 수 있는지를 꼭 확인한다. 내가 먹고 있는 라믹탈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정신과 약이 간에서 대사되는데 때문에 간 기능이 일반인 보다 더 떨어져 있다. 그래서 간에 무리를 주는 약을 같이 먹게 되면 치명적인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나 저러나 정신질환자로 사는 건 여러모로 불편하기 짝이 없다.


얼마 전 코로나로 인해 처음 사망한 사람에 대해 썼던 적이 있다. 같은 정신질환자라 더 마음이 갔던 그 사람. 나는 아니길 바랬는데 어느 기사에 보니 그가 있었던 병원이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한다. 대다수의 환자들이-전부라고 해도 좋을-면역력이 크게 악화된 상태였고 한 방에 여러 명, 그것도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 마치 ‘감옥’처럼 수용되고 있었다. 역학 조사를 했던 의료진은 이 병원이 매우 열악한 환경에 속한다며 집단 발병이라는 아주 특이한 결과가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엄마는 이 기사를 보고 하루 종일 마음이 먹먹했다며 힘들어 했다. 나 또한 편치 않았다. 누가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것도 아니고 치료 또한 어려운 병인데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다니. 지난 글에 조심스럽게 밝히긴 했지만, 기사를 읽고 나니 사망한 사람이 정말로 행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25년간 갇혀서 불량한 환경에서 지내다가 비로소 자유로워졌을테니까.


처방 받을 수 있는 약이 최대 한 달이라 한 달치 약을 받아 집에 왔다. 지난 번에 받은 약과 예전에 받았던 약, 그리고 이번에 받은 약을 포함하면 약 2달치의 약이 있다. 이전의 메르스 사태를 보나 코로나의 확산 정도와 감염률을 볼 때 절대로 2달 안에 끝날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 4월까지는 버틸 수 있으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작년 말부터 먹었던 우울증 약-웰부트린-은 예정대로 3월 10일까지만 먹기로 했다. 약 3개월 간 먹었던, 재발을 막아준 고마운 약과 반가운 이별을 하게 됐다. 지옥 같았던 3개월, 암흑의 겨울을 지나 어느 덧 3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또 다시 살아남았고 봄을 맞이할 것이다. 내년에도 이 봄을 또 마주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봄은 더 밝고 기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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