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탐험을 나선 초보자를 위한 나침반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경제학> 서평

by Argo



경제. 그리고 경제학.

수 백년, 수 천년 전에도 개인 간의 거래, 국가 간의 거래가 있었고 경제라는 개념은 -막연하게라도-존재했다. 하지만 이런 경제가 학문의 형태를 갖춘 건 25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다른 학문들, 이를테면 역사나 철학 등의 역사가 수 천년인 것에 비해 짧다고 할 수 있는 경제학이지만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라 경제학은 실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맺기 시작했다. 어떤 학자의 주장이 힘을 얻느냐에 따라-예를 들어 케인즈 학파가 대두되어 정부의 역할이 강조된, 복지 국가의 등장 같은-국가의 정책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의 국민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평소 경제학에 대해 관심은 있었느나 신문이나 관련 서적에서 마주치는 난해한 용어들과 각종 곡선, 수식들의 향연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때문에 경제학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래서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경제학>을 접했을 때 내심 기대했다. 이 책이 내 경제학 탐험의 첫 걸음이 되기를, 책을 읽고 나면 경제학에 대한 애정(?)까지는 아니더라도 흥미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내 바람은 과연 이뤄졌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정성들인(?) 서두로 시작하지 않고 대충 책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고 말았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내 기대에 부응했고 경제학이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학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를 포함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경제학하면 온갖 수식과 예측, 숫자들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가 접하는 경제는 대게 언제 집값이 오르고, 주식의 등락은 어떻게 되는지, 한 해 경제 성장은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이것들과 관련된 각종 용어와 전문가들의 전문가스러운-복잡하고 어려운-조언과 전망의 집합이다.


하지만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경제학>은 그런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보다 본질적인 질문, 경제학의 시작부터 제시되었던 중요한 질문에 대해 다룬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익숙한 경제학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되는 이 책의 경제학 탐험은 그래서 의미가 있고 경제학이라는 산을 오르려는 탐험가들에게 훌륭한 길라잡이가 되어 줄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좋은 돈벌이'와 '나쁜 돈벌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돈벌이는 좋은 돈벌이와 나쁜 돈벌이로 나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남을 기쁘게 한 대가로 돈을 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손님을 속이거나 가격을 담합해 돈을 버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내게 흥미로웠던 것은 애덤 스미스의 생각에 '도덕적인', '철학적인' 개념이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좋음'과 '나쁨'은 가치 판단의 영역에 속한다. 좋은 돈벌이와 나쁜 돈벌이를 구분하려면 무엇이 좋고 나쁜지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책을 펼치기 전에 경제학이 숫자와 이론-예를 들어 수요와 공급과 관련된-으로만 이루어져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던 나에게 이 사실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철학, 특히 고대 철학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철학자들은 각기 나름대로 '좋은 삶'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어떻게 하면 좋은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했다. 경제학도 이처럼 단순화시킨다면 "좋은 돈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나쁜 돈벌이는 감소시키면서)좋은 돈벌이를 어떻게 촉진시킬 것인가"다. 스미스가 처음 경제학의 기틀을 잡을 때 부터 시작된 이 질문은 지금까지 유효하며 이제까지 나온 여러 학자들의 주장은 이 대명제에 대한 각자의 생각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자들은 각자가 살았던 시대 상황에 따라 스미스가 제시한 '좋은 돈벌이'와 '나쁜 돈벌이'의 개념을 적절히 변화시키고 그들이 생각한-스미스의 의도에 충실했든 안 했든-좋은 돈벌이 촉진법을 연구했다.


스미스는 경제 활동이 단순히 부의 소유자만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소유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도덕적 조건에 일치할 때만 인정받을 수 있다. 책에서는 스미스가 말한 '자본주의의 도덕적 조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자유경쟁 시장은 공정한 규칙을 따르는 경쟁의 장일 것. 특히 자본을 움직이는 사람이 공정성을 의식하는 사람일 것.
2. 자산을 사업에 활용하지 않고 임대하여 이익(이자 및 지대)을 얻으려 할 경우, 그 행동이 자산을 건전한 용도로 쓰는 데 도움이 되고 사회 전체의 부를 촉진할 것.
3.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지 않고 상호이익 관계를 맺으며 약자 측의 능력도 활용할 것.

놀랍지 않은가? 스미스의 주장은 지금의 자본주의의 행태와는 크게 다르다. 현재-과거에도 그랬지만-대두되는 자본주의의 문제의 대다수는 개인의, 그리고 특정 집단의 과도하고 이기적인 사익 추구에서 발생한다. 물질적인 성공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그렇기에 개인은 사기나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기업은 비용 절감이라는 달콤한 핑계하에 노동자의 건강을 무시하거나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을 자행한다. 스미스가 다시 눈을 떠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나쁜 돈벌이가 판을 치는 현실에 개탄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존 스튜어트 밀, 앨프리드 마셜, 존 메이너드 케인스,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은 위에서 말한 스미스의 대명제- "좋은 돈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나쁜 돈벌이는 감소시키면서)좋은 돈벌이를 어떻게 촉진시킬 것인가"-에 대해 자기의 생각을 당시의 상황에 맞춰 재해석하려고 했다. 스미스가 세운 대명제는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시대에 따라 자본의 형태나 사람들의 행동 양상의 변화가 있었다. 그렇기에 '좋은 돈벌이'와 '나쁜 돈벌이'에 대한 생각은 필연적으로 조금-혹은 많이-씩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경제학은 단순히 과거의 이론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하는 학문이라는 걸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책을 덮고 나니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다. 사회사상가로만 생각했던, 한물간(?) 인물로 생각했던 카를 마르크스가 실은 경제학에도 영향을 미쳤고 그의 주장에 근거해 일어난 공산주의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어도 그의 생각에 담긴 자본주의에 대한 고찰은 아직도 유용하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조건적이고 이기적인 사익 추구가 왜 나쁜 것인지, 스미스가 제시한 좋은 돈벌이에 담긴 도덕성, 공정함에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 때문에 자유주의자로만 생각할 수 있는 스미스가 오히려 자유의 한계에 대해서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배운 건 덤이고.


나처럼 경제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있거나 경제학을 배우고 싶은데 에피타이저처럼 가볍게 접근하고 싶은 사람, 일정한 방향성을 잡고 시작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이 매우 유용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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