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클라우드 <베토벤> 서평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베토벤'이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의 이름 뿐만 아니라 그가 청력을 상실했음에도 음악에 전념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클래식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 중 하나도 '베토벤'이고.
그래서일까. 클래식 클라우드 <베토벤>편 또한 지난 번 <카뮈>편과 같이 나를 기대하게 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나에게 베토벤은 빠질 수 없는 음악가이기도 하고 비록 장르는 다르지만 같은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베토벤이라는 예술가가 보여준 예술에 대한 헌신은 경외와 존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으니까.
지난번 <카뮈>편에 대한 서평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클래식 클라우드의 매력은-예술가의 경우-작품과 예술가 각자를 조명할 뿐만 아니라 이 둘 사이의 연관성 또한 살펴본다. 특히 장소-사람-시간의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예술가와 작품을 조망하는 방법은 예술가와 작품 둘 모두의 이해를 높일 뿐만 아니라 예술가가 어떻게 한 작품을 만들어냈는지, 또 이 작품이 예술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등 작품과 예술가 사이의 상호작용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는 베토벤이 머물렀던 장소, 의미있었던 장소를 둘러보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 베토벤이 그곳에서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만난 사람들,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베토벤에게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한 장소에서 만난 사람과 보낸 시간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도 알 수 있다.
이 책은 베토벤을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본다. 첫 번째는 인간 영웅으로서의 베토벤과 두 번째는 예술가로서의 베토벤이다(영웅이라는 말이 거슬린다면, 그냥 '인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우리는 왜 베토벤의 음악과 베토벤의 삶에 열광-혹은 숭배-하는가? 또는 왜 경외심을 가져야 할까?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럴 수 밖에 없다"다.
앙드레 지드는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나는 이 가슴 떨리는 이야기에서 무엇보다 그의 고귀함에 마음이 간다. 우리는 인간의 나약함, 포기, 타락 같은 것들을 익히 알고 있으며, 오늘날의 문학은 그런 것들을 들추어내는 일에만 지나치게 능란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 보여 주어야 할 것은 긴장된 의지에서 얻게 되는 바로 그 자기 초월이다."
나는 이번 <베토벤>편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앙드레 지드가 말한 "긴장된 의지에서 얻게 되는 자기 초월"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앙드레 지드는 또한 서문에서 "인간의 행복은 자유가 아니라 의무의 수용에 있다"고 했는데 이 말 또한 베토벤에게 딱 들어맞는다. 베토벤은 청각의 상실 가운데서 아마도-그의 유서를 통해 짐작컨대-의무감 내지는 사명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음악가, 작곡가로서의 삶이 끝장날 위기 가운데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음악, 예술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는 그 위기 가운데 예술에 대한 자신의 의무-"아, 내가 원하는 것들을 모두 다 만들 때까지 이 세상을 떠난다는 일은 불가능할 것 같구나"라고 쓴 유서에서 알 수 있는-를 깨닫는다.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고 했다.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베토벤은 그런 상황에 굴복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죽음 대신 선택한 예술은 베토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고, 이것은 우리가 그를 숭배하는 이유기도 하다. 또한 우리는 베토벤의 승리, 중대한 역경을 극복해 낸 그의 영웅적 면모에 감탄할 뿐만 아니라 그가 행동으로 보여준 삶의 의미, 또 그것에 대한 의지-빅터 프랭클이 말한 의미를 찾고자하는 의지-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의 음악적 성취는 신화 속 영웅의 위업이 아니다(물론 그런 측면도 있지만). 베토벤은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당면한 고통에 고뇌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고통에 굴복하지 않고-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으며 자신의 삶을 끝까지 살아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프랑스의 음악학자 밀이 베토벤과 호메로스를 동일시한 것도 과언은 아니며, 여기에 덧붙여 나는 이런 베토벤의 모습이 카뮈가 말한 '반항하는 인간'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카뮈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은 클래식 클라우드 <카뮈>편을 참고. 깨알 같은 홍보랄까?).
이 책은 베토벤의 인간적 면모와 예술가로서의 모습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베토벤에 대한 이해와 작품에 대한 감동을 배가시킨다. 특히 예술가로서 베토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과 고뇌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결과, 즉 우리 앞에 지금까지 남아서 칭송받는 베토벤의 작품들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 이런 과정은 과정의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과정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면서 결과의 아름다움 또한 배가시킬 수 있다.
지금은 불세출의 음악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베토벤이지만 그가 처음부터 명성을 날렸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소년 가장 노릇을 했고, 귀족들의 후원과 대중에게 명성을 얻기 위해 즉흥 연주와 작곡-그것도 자신의 스타일을 일정 부분 포기한 채-에 매달려야 했다. 그는 그 당시 만연해 있던 음악적 양식과 스타일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기에 좋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했고 사람들의 외면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점차 확립시켜나갔으며 결국에는 대중의 환호 또한 이끌어 냈다. 그리고 베토벤은 청각 상실이라는 고통 앞에서, 심연의 절망 속에서 '단단'해 졌다. 더 이상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라주모프스키>를 작곡하면서 쓴 질문에는 이런 그의 다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세상의 그 무엇이 음악으로 영혼을 표현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느냐."
일본의 어느 작가는 인간의 변화 조건에 대해 시간을 달리 쓰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사는 장소를 옮기는 방법 밖에 없다고 했다. 예술가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도 시간과 사람, 장소가 어우러져야 한다는 걸 베토벤을 통해 알았다. 베토벤에게는 재능이 있었지만 그 재능을 펼치기 위해서는 그를 후원해 줄 사람과 그를 키워줄 멘토가 필요했다. 또한 그의 예술혼을 불태울 장소와 시간이 필요했고. 지금은 과거처럼 예술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고 예술가들의 자립이 상당 부분 가능하지만 베토벤 당시에는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으로만 살기에는 힘들었으며 대게 귀족들의 지원을 받으며 그들에게 묶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베토벤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그를 후원해주는 귀족들에게서 연금을 받는 대신 그들의 취향과 의도에 맞는 곡을 써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베토벤 또한 대다수의 예술가들이 고민하는 문제로 씨름해야 했다. 대중들에게 팔릴 만한 음악을 만들을 것인지, 아니면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할 것인지 말이다. 이른바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에서의 갈등은 지속적으로 베토벤을 괴롭혔고 이 문제는 말년에서야 자신만의, 베토벤만의 스타일을 고수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놓고 고뇌하는 베토벤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한 번쯤은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름하야 '나 다움'에 대한 고민 말이다. 베토벤은 예술가이기에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자부심, 집착이 강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후원자들과 대중의 반응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우리 또한 살면서 주위 사람이나 사회의 압력에 의해 '나 다움'을 포기한 채 그들의 요구와 기대대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베토벤이 끝끝내 '베토벤 다움'을 지켜냈듯, 우리도 '나 다움'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전보다 더 많이 베토벤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책에서 소개된 음악들-특히 QR코드로 친절하게 알려주는 음악들을 포함해- 중에 내가 아직 들어보지 못한 곡들도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듣게 되어 다행이었다. 베토벤과 그의 음악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 그의 빛나는 명성 아래에 숨겨져 있는 눈물과 땀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클래식 클라우드 <베토벤> 편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