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은 왜?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은데요> 서평

by Argo



"요즘 2,30대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 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이제 막 30대가 된 나 또한 이 말에 어느 정도 해당된다. 그렇다면 나를 포함한 청년들은 왜 정치에 관심이 없을까? 먹고 살기 바빠서? 시민의식이 부족해서?


이 책은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이유, 더 나아가 혐오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정리한다.

"상대편의 실수에는 크게 분노하면서도 자기편의 잘못에는 눈 감는 정치, 조금만 달라도 악으로 낙인찍는 정치, 국민의 이익보다 내 편의 이익이 더 중요한 정치. 이런 정치에 실망한 것이다" -25p


먹고 살기 바쁜 것도 맞다. 입시 전쟁을 치르고 어렵사리 입학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취춘생과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하는 청년들에게 정치는 당면 과제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자기네 당이 어떻고 저 당이 어떻고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겠는가.


하지만 근본적으로 정치는 청년친화적이지 않다는 게 문제다. 기성 세대들은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 더 정확히는 자기네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 - 이유에 대해 우리들이 받은 교육이 잘못되서, 편향된 정치 커뮤니티에 속해 있어서 그렇다고 비난한다.


기성 세대들, 특히 민주화 운동에 참여해 한국의 민주주의 신장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청년들의 행태는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일장연설을 늘어 놓아서라도 청년들을 '계몽'시키고 '변화'시키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변화해야 할 대상은 청년일까?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은데요"라는 제목에는 내 생각 - 혹은 많은 청년들의 마음 -이 함축되어 있다. 10대 후반에는 진보에, 20대 초반에는 보수에 마음을 주었던 나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매번 "빨갱이" 탓하는 보수에 지치고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줄곧 "정의"와 "공정"을 외치던 진보에 실망한 내가 선택한 건 정치적 무관심이었으니까.


그러다 최근 코로나 사태를 비롯해 조국 사태를 관망하며 다시금 정치에 관심이 생겼다. 내가 아무리 정치에 무관심하려 해도 내 일상은 정치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동안 미뤄두었던 정치 공부를 하고 싶었다. 거창한 이론이나 '주의' 말고 무엇보다 생생한 정치 이야기, 특히 내 나이대의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다행히 제목에 끌려서 선택했던 이 책은 이런 내 소망(?)을 충족시켜 주었다.


10대 때부터 정치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 활동을 하고 어느 국회의원의 언론 담당 비서까지 했던 저자는 청년인 우리가 왜 정치에 무관심한지, 그리고 청년 정치, 청년 정치인을 위해 이 사회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설득력 있게 주장을 전개한다. 또한 청년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면 우리의 일상이 망가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한국 정치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많은 부분이 있지만 내게 인상 깊었던, 평소 내가 생각했던 점과 같았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대화와 타협의 부재.

일명 "내로남불"이라고도 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각종 안건, 특히 민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안건을 앞에 두고도 사사건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상대방을 비난한다. 그 과정에서 과거에 자신이 했던 말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민주주의식 갈등 해결법인 '대화'와 '타협' 대신 '멱살잡이', '고성', '떼법', '네거티브 전략', '날치기', '색깔론' 등이 판을 친다.


두 번째, 청년 정치인은 얼굴 마담일 뿐.

몇 년 전부터 2030의 표를 잡겠다고 비교적 젊은 정치인 -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 40대도 껴 있다. 기성 정치인들의 '젊음'과 우리가 생각하는 '젊음'은 사뭇 다른가 보다 - 을 내세우는 정당이 많아졌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2030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을까? 각종 정책에 자기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저자는 고개를 젓는다. 이들은 실제적으로 정책에 관여하지 못할 뿐더러 그저 구색맞추기에 불과하다. 특히 당론에 반대하면 가차없이 내쳐지는 한국 정치판의 특성상 지지세력도, 기반도 없는 청년 정치인이 소신 있는 발언이나 행동, 정책 제안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현행 공직선거법 상 청년 정치인들이 기성 정치인들의 무기인 인적 물적 네트워트를 뛰어 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정치 생명을 연장하고 싶으면 조용히 기성 정치인을 따라야 하는 현실 때문에도 그렇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청년 정치인이 등장할 수 있는 토양이 전무한 실정이다. 저자가 예를 든 독일을 보면 각 정당의 청년위원회는 정당의 동원인력이 아닌 엄연한 하나의 기구다. 개별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고 만 14세부터 가입이 가능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이른 나이에 정치에 입문한다. 그렇기에 10대 때부터 정당 활동을 하며 쌓은 내공으로 20대에 의원에 도전하는 것이 가능하다.


세 번째, 장기적 비전의 부재.

현재 기성 정치인들은 지금 당장의 정권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을 뿐 국민의 민생이나 미래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저자가 타다금지법을 통해 지적했듯, 당장의 표를 얻기 위해 각종 이익집단에 휘둘리는 모습을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거부한 채 그저 어떻게 하면 표를 얻을까, 어떻게 하면 정권을 잡을까 고심하는 모습 속에 한국 정치의 미래는 없다.


저자의 견해 중 많은 부분이 내 생각과 비슷했지만, 실제로 정치(판)를 경험했기 때문인지 문제에 대한 분석이나 의견 제시, 대안의 도출 등이 매우 날카롭고 현실적이었다. 단순한 관찰자에 불과했던 나로서는 모를 수 밖에 없던 내용들, 특히 정치 - 혹은 정치인 - 비하인드 스토리도 간간이 나와서 매우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저자가 10대 때 경험했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사뭇 다른 분위기라든지, 정치무관심자였던 시기에는 몰랐던 유승민 국회의원에 대한 일화라든지, 단순히 정치적 견해 뿐만 아니라 몰랐던 사실을 알 수 있어서 유익했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2030, 청년 정치인이 되고 싶은 사람, 청년들의 생각이 궁금한 기성 정치인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인상 깊었던 구절들

정치는 이런 것이다. 옳고 그름이 명백하지 않은 다양한 가치 사이에서 최선의 대안을 마련하는 것. 수많은 질문과 해답을 찾아서 미완성의 그림을 그려가는 것 말이다. -36p
하지만 그 아이디어를 끄집어 내는 것은 삶에 대한 이해가 없고서는 불가능하다. -47p
정치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편견과 차별을 깨는 것이다. -61p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그들을 대변하는 정당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건 정상적인 일이다. 갈등 없는 국회는 일당독재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무엇을 가지고, 어느 수준에서 싸우느냐도 중요하다. 국민의 이해를 놓고 싸우느냐, 자기들의 권력을 놓고 싸우느냐가 그 나라 정치의 수준을 가른다. -87p
하지만 북한은 본인들 이해관계에 맞추어 제 갈 길 가고 있는 나라일 뿐이다. 숱한 화해의 손짓에도 그들이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한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건 낡은 민족주의에 불과하다. 99p
어떤 사건이 상대 진영을 상징하는 의제가 되어버리면 철저히 외면한다. -1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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