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은 모두의 것
"밥 다 먹었으니까 이제 딸기 씻어 먹자. 이것도 니가 해줘."
"아니 내가 장도 봐오고 요리도 다하고 상도 다 차렸는데 디저트도 준비하라는 건 양심이 없는 거 아냐?"
"그건 그러네. 너도 알겠지? 요리하고 상 차리는 것만 해도 힘든데 설거지 같은 뒷정리까지 하면 얼마나 힘든지. 그러니까 남자들이 여자가 식사 준비하면 설거지는 해야하는 거야. 맞벌이하면 더 그래야 하고."
일요일 아침, 유튜브로 미사 생중계를 보는 엄마를 두고 산책을 나섰다. 인근 아파트 단지들 경계를 천천히 돌다 만난 왕벚꽃을 한참 들여보다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집에 와서 장 봐온 걸로 된장찌게를 끓이고 밥 먹을 준비를 해놓으니 이불 속에서 쉬고 있던 엄마가 슬쩍 식탁에 앉아 감탄사를 연발한다. 심지어 콧노래를 부르면서 춤까지 춘다.
재작년부터 엄마의 건강이 상당히 안좋아졌다.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살아온지 어언 60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화가 빨리 찾아온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증명하듯 엄마의 건강, 그리고 활동 반경과 에너지는 급격한 하락 곡선을 그렸다. 덩달아 지금까지 엄마가 부담하던 가사노동은 다른 가족 구성원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이혼하기 전부터 아빠는 가사 노동에서 거의 제외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몇 년전부터 집을 나간 - 가출은 아니고 분가 - 형을 제외하면 엄마가 내려놓은 가사 노동은 내 몫이었다. 이혼 후에는 이혼의 여파인지, 세월 탓인지 더욱 가사노동을 힘겨워하는 엄마를 대신해 많은 부분을 내가 하게 되었다.
요즘 느낀 거지만, 나와 엄마의 가사 분담은 절묘하게 잘 나눠져 있다. 오늘 그랬듯 장보기는 거의 내 몫이다. 어렸을 때 할머니 손 잡고 시장에 장보러 다녔던 탓인지 장보는 것은 여느 주부 못지 않다. 가격 비교는 물론이고 - 조금 더 싼 물건을 사기 위해 동네 마트 2군데는 방문한다 - 품질 확인과 유통기한 확인은 기본이다. 야채나 과일의 신선도 확인도 곧잘 한다. 엄마가 재확인할 필요도 없다. 전체적인 집관리 또한 내 몫이다. 형광등 교체, 커튼 레일 달기 등 잡다한 일을 처리한다. 거실을 비롯해 방 바닥 청소, 쓰레기 버리기, 재고조사 - 매주 1회, 식품과 기타 생필품의 재고를 조사하고 부족분을 다음 장볼 때 사오는 것도 내 일이다 - 와 관리, 빨래 꺼내기 등 힘이 필요하거나 엄마가 장애로 인해 하기 힘든 일의 대부분을 내가 한다. 아, 그리고 이전에 비해 확연히 늘어난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요리"다. 예전에도 나름 했었지만 요즘에는 거의 6~70%를 내가 한다. 입맛이 까다롭고 - 엄마보다 훨씬 음식 솜씨가 좋은 할머니 손에 자란 탓에 - 식성이 다르기 때문에 - 난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만 엄마는 아니다. 오죽하면 매운 음식 요리할 때 엄마는 냄새도 괴롭다고 방에 들어가 있을 정도니까 - 종종 요리를 했었다. 그래도 1주일에 서너 번, 파스타나 김치찌게 등 내가 좋아하는 요리만 '특식'처럼 해먹었지, 지금처럼 하루에 2끼 이상 내가 차려먹고 엄마를 위한 요리도 하진 않았다. 지금은 밥은 엄마가 준비하고 어쩌다 국을 끓여 놓거나 반찬을 해놓는 정도다. 혼자 차려먹는 건 예전에 마스터했고 이제는 일상적으로 요리를 하는 수준이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앞으로 아빠처럼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나는 어릴 때부터 아빠의 가정폭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자랐다. 어떻게 보면 제대로 된 '반면교사' 역할을 한 게 아빠다. 다행히 어릴 때 모범적인 가장의 모습 - 매일 아침 마당을 쓸고 청소 등 집안일에 열심이셨던 할아버지 - 을 보고 자랐기에 망정이지 이게 아니었다면 나도 아빠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했을지도 모른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할아버지의 영향 덕분에 아빠의 모습과 행동이 잘못된 것인 줄은 알았지만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읇는다고, 은연중에 아빠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매주 한 번씩 가족회의를 하자고 했다. 엄마도 아빠랑 살면서 이전의 좋은 모습들을 많이 잊어버렸고 부정적인 아빠의 의사소통 방법이나 행동을 닮은 게 있었다. 서로 부정적인 모습들을 개선하고자 했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가족회의 시간에 우리는 한 주 동안 있었던 일을 나누고 그 안에 있었던 갈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과할 일이 있으면 하고 그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해 모색한다. 현재의 가사 분담 또한 가족회의를 통해 서서히 이뤄진 것이다.
아빠가 집을 떠난 지 1년이 넘은 지금, 나와 엄마는 '가족'을 배우고 있다. 지난 글에서 '결혼'을 살아있는 생물이라 했는데 가족 또한 그렇다. 가족은 노력하지 않으면 '가깝고도 먼 당신'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갈등을 해결하고 차이에 대해 협상하며 진실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배우는 중이다. 때때로 이전의 부정적인 모습이 튀어나와 다투기도 하지만 대화와 소통의 끈을 놓지 않는다. 너무나도 다른 성격과 사고방식 때문에 다툴 여지가 많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갈등하며 또 화해하고 대화하고 웃고 함께 살아간다. 함께 살 날들이 얼마나 남았을지는 모르지만 함께 사는 동안 행복하게 살고 싶다.
이제 딸기쨈하느라 힘들어서 밥도 안먹고 자는 엄마를 깨워 뭐라도 먹게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