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그 방을 생각하며>를 생각하며
내일과 투표 당일은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사전투표 첫 날인 오늘 투표하러 갔다. 예상대로 사람은 많지 않아서 5분도 안되서 끝났다. 빠른 투표에 안도의 한숨 - 코로나로 인한 불안감 때문에 - 을 내쉬고 투표장을 나오는 순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는 뿌듯함보다 뭔가 모를 ‘공허함’이 마음 속에 자리했다.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집에 오는 길에 김수영 시인의 <그 방을 생각하며>라는 시가 머리 속을 떠다녔다. 고등학생 때, 시인을 꿈꾸며 시를 필사했던 노트에는 항상 김수영 시인의 시가 한 자리를 차지했었다. <사령>,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푸른 하늘을>, <풀> 등을 필사하고 암송했던 기억이 아직도 풋풋하게 남아 있다.
<그 방을 생각하며>가 떠올랐던 건 왜 일까? 아마도 화자의 마음, 생각이 나와 비슷해서 그럴 것이다. <그 방을 생각하며>가 쓰여진 시기는 4.19혁명 이후다. “혁명”을 바랬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 “싸우라”, “일하라”는 말들이 헛소리처럼 공허해지고 “가슴은 이유 없이 메말랐다”. 진보했지만 진보하지 않은 상황에서 화자는 실망감에 몸부림친다. 그에게는 이제 방도, 낙서도, 기대도, 노래도, 가벼움마저도 잃었다.
하지만 그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실망을 내일의 희망으로 치환했기에 “스디 쓴 냄새”가 되살아났어도 그는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라.
지난 번에 썼던 서평 -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은데요>라는 책 - 을 읽은 독자라면 알겠지만, 나는 정치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솔직히 이번 투표, 내가 행사한 한 표로 인해 정치가, 한국의 정치 상황이 개벽되리라는 생각은 1도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투표장을 찾았다. 시에서 나오는 것처럼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고 싶었고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이 내 재산이 되길 바랬기 때문이다.
나는 희망한다. 동시에 나는 기대하지 않는다. ‘희망함’과 ‘기대하지 않음’의 모순 속에서 “쓰디 쓴 냄새” 속에 담긴 “달콤한 의지의 잔재”를 찾고 있다.
+투료라는, 정치적 선택에 대해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한 타인을 경멸하거나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행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부적절하며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다. 비록 정치인들이 수준 낮은 행동으로 타 정당을 비하, 비난하더라도 국민들은 거기에 끌려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치인들의 수준이 낮다고 해서 우리 국민들의 수준 또한 낮아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걸 주저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모두 투표 잘하시고 코로나로부터 안전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