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Hubris

깜박깜박

그러니까 노오오오력

by Argo

약을 먹기 시작한지 어언 5년째. 자타공인 약잘환(약 잘먹는 환자)인 내가 약을 챙겨 먹는 건 식사 시간에 밥먹는 것처럼 쉽고 자연스럽다. 먹고 나서 앱으로 체크도 하니까 왠만하면 까먹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내게도 한 가지 문제가 있으니...... 그건 바로 약을 먹은 기억이다. 제 때에 약을 먹는 건 습관이 되서 잘 챙겨 먹는다. 하지만 약을 먹고 나서 잠시 후, 혹은 자기 전에 ‘어...? 내가 약을 먹었었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억이 깜박깜박, 왔다갔다 한다.


특히 요즘들어 이런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전부터 생각했던 방법을 오늘에서야 실천했다. 그것은 바로 약통에 약을 넣어두기. 다이소에서 사온 약통에 약을 넣어두고 꺼내 먹으면 기억이 깜박깜박하더라도 약통을 보고 확인할 수 있다. 검은 밤의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 저녁 약통은 검정 매직으로 색칠해주고 약을 채워넣고 나니 이제는 더 이상 약 먹은 기억으로 신경 쓸 필요가 없겠구나 했다.


내가 이렇게 깜박깜박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약간의 수면 부족과 무언가에 정신이 팔렸을 때(?) 그런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연구에서 증명 되었지만 수면 부족은 현저한 인지기능의 저하를 가져온다. 아주 부족한 건 아니지만... 밤과 새벽이 아닌 시간대에 조금 졸리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 어쩌면 이게 더 큰 원인일수도 있다 - 최근에 할아버지 회고록 작업이 끝나고 이전에 비해 글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성격상 무언가에 꽂히면 온 관심이 거기에 쏠린다. 어릴 때부터 해왔던 여러 검사에서 늘 ‘집중력’ 항목이 손에 꼽을 정도로 우수했었는데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어딘가에 빠지면 다른 ‘모든’ 것들이 뒤로 밀린다. 그래서 생활에 필수적인 일들 - 식사, 운동, 샤워 등 - 을 처리하면서도 “마음은 콩 밭에 가 있다”는 속담처럼 거기에 신경을 쓴다. 그동안 회고록 작업하느라 억제(?)해 둔 창작욕이 불타오르다보니 하루 종일 어떤 글을 어떻게 써 볼까 고민하고 집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영역에서 쓸 주의집중력을 온통 여기에 쏟아 붓는 탓에 약통까지 필요한 것이다.


얼마 전에 필사했던 <명상록>의 내용에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으라고, 그것이 절대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부분이 있었다. 부족함이 있고 그것이 외부의 조력으로 개선될 수 있다면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내 깜박깜박하는 기억을 위해 약통의 도움을 받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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