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Hubris

좋은 삶이란?

정해지지 않은, 그러나 또 정해진.

by Argo

<코치 카터>라는 영화를 봤다. 아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기 위해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투쟁하는 카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의 가장 깊은 공포는 무력함이 아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공포는 측정할 수 없는 우리의 강함이다.
우리의 어둠이 아니라 밝음이다.
그게 우리를 두렵게 한다.
소심한 행동은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네 주위에서 불안하지 않도록 움츠리는 것은 전혀 현명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빛을 발하도록 되어 있다, 어린이가 그렇듯이.
우리 일부 만이 아니라 모든 이가 그렇다.
우리 자신의 빛을 발하게 할 때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때 우리의 존재는 저절로 다른 사람들을 해방시킨다."


카터가 위원회의 결정에 반발하면서 코치직을 사임한 뒤, 마지막으로 찾은 체육관에서 한 학생이 카터에게 한 말이다. 그 학생은 카터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말한다. 카터의 헌신은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마지막 경기에서 아쉽게 패배하고 말지만 학생들 중에서 11명이나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한 반에 1명 진학할까 말까한 고등학교에서, 3명 중 1명이 감옥에 가는 지역에 사는 학생들에게는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좋은 삶이란,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내겐 다소 해묵은 질문을 다시 하게 되었다. 조울증 이전에도 이런 생각을 자주 했었지만, 조울증 이후에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자살'이라는 단어 앞에서 나는 진지하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질문할 수 밖에 없었다.


죽음은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마치 바람에 겨와 쭉정이가 날아가고 알곡만 남는 것처럼, 죽음은 우리가 본질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조력자의 역할을 한다. 나 또한 자살을 통해 마주한 죽음 앞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신화학자 조지프 켐벨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삶 자체는 의미가 없다. 우리 각자가 의미를 갖고 있고, 그걸 인생에 갖다 붙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꾸 인생의 의미를 묻는 건 시간 낭비다.
당신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던져진 존재'로서의 인간은 의미도, 목적도 없이 태어났다(물론 유신론자들은 이 생각에 반대할 것이다). 때문에 각자 자신이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 대해 정의를 내려야 한다.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무엇이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지를 스스로가 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일하고 통일된 하나의 정의가 존재하지 않음을, 저마다 삶의 의미가 다를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의미 있는 삶, 좋은 삶에 대한 논의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비슷한 단어가 '성공'인데 이마저도 물질적인 성공에 초점을 맞추고 이것만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물질적인 성공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저마다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렇게 성공을 정의한다고 해서 내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다만 과연 그것만이 성공일까, 다른 길은 없는가 라는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좋은 삶, 의미있는 삶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생각나는 시 두 편이 있다. 그것은 바로 랄프 왈도 에머슨과 에밀리 디킨슨의 시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랄프 왈도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들에게 존경받고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거짓된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음미할 줄 아는 것
타인에게서 최고의 장점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뼘의 정원을 가꾸든,
혹은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 세상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이라도 삶이 수월해졌음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다
내가 만약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를
막을 수 있다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내가 만약 한 생명의 고통을 덜고
기진맥진해서 떨어지는 물새 한 마리를
다시 둥지에 올려놓을 수 있다면
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에밀리 디킨슨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제목이 없기로 유명하다. 보통은 첫 문장에서 명명한다.)


위의 두 시에서는 물질적인 성공이 아닌 다른 성공에 대해서 말한다. 두 명의 시인 모두 이타적인 행동, "자신이 한때 이 세상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이라도 삶이 수월해졌음을 아는 것"과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라고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에 대한 보통의 정의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시들에서 언급하는 성공은 거창한 게 아니다. 생각보다 작은 일들, 돌이켜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때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이 이것이 뭔가 거창하고 심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고 나서 '뿌듯함'이나 '보람'을 느낀다. 대게 이런 느낌은 자신이 의미 있다고 여기는 일을 할 때다. 그리고 여기에는 각자가 생각하는 삶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에는 글을 쓰는 행위에서 보람을 느낀다. 더 나아가 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다. 실제로 나는 내 글을 잘 읽었다고, 도움이 되었다는 말에 힘을 얻고 보람을 느낀다. 이것이 내 삶의 의미이고 내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다.


앞에서 말했듯, 삶의 의미는 다양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자신이 정의한 삶의 의미에 따라 사는 삶이 행복한 삶, 좋은 삶이 아닐까? 그 삶의 정의가 올바르냐 라는 문제가 있지만 이것을 포함해 포괄적으로 삶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일생에서 매우 중요하며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목표 지점 없이 발걸음을 내딛는 달리기 선수가 없듯, 우리가 삶이라는 여정을 제대로 걷기 위해서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결정해야 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삶의 의미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그것에 따라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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