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살 권리
일본의 국민작가를 넘어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지만, 그의 라이프스타일에는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회피형 자아의 특징이 자주 드러난다. 하루키의 매스컴을 기피하는 경향도 그중 하나다.
텔레비전에 출현하지 않는 것은 물론, 남들 앞에 나서는 일조차 거의 없어 일본에서는 하루키가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뉴스가 된다. 거기에 대해 하루키는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고 실망하는게 싫어서'라고 말한다.
"너무 낯을 가리는 성격으로,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항상 표정이 굳어집니다."
잘생긴 얼굴은 아닐지라도 지적이고 도회적인 풍모를 갖춘 하루키는 매력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인물이다. 남 앞에서 부끄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이지만, 본인은 그렇게 느끼며 사람 눈을 피하며 살고 있다. 자녀를 갖지 않은 삶을 선택 했다는 것도 그런 일면을 보여준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히 저 같은 사람은 집에서 겨우겨우 일을 해내는 편이에요. 그런데 아이가 있으면 해낼 자신이 없어져요. 의외로 빈틈없이 꼭 맞추어 일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거기에 새로운 존재가 끼어들면 일을 시작할 수 없게 돼요."
참으로 솔직한 발언이다. 섬세한 감성을 지닌 창조자는 자기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스스로 지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현실에서 필요 이상의 부담을 차단해야 한다.
- 오카다 다카시, <마지못해 혼자입니다>, 67~68p
며칠 전에 엄마와 결혼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엄마에게 결혼을 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으나 - 비혼에 가깝기는 하지만, 미래는 모르는 것이므로 - 만약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가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위에서 인용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사례를 이야기 해줬다. 그제서야 엄마는 '어느 정도'는 수긍하는 모양이었다.
2,30대에게 '비혼'이라는 말은 비교적 낯설지 않은 단어다. 비자발적이든 자발적이든 비혼은 조금씩 '젊은 세대'에게 실현가능하고 상상할 수 있는 삶의 형태가 되었다. 하지만 4,50대를 비롯해 부모세대와 그 이후의 세대들은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혼과 육아가 삶의 핵심 혹은 전부라고 생각한다. 비혼이나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하면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그래도 애는 낳아야지" 같은 말을 쉽게 들을 수 있고 굳이 비혼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더라도 명절 때마다 "애인은 있느냐", "결혼은 언제 하느냐", "애는 언제 가질거냐" 같은 말을 자주 듣지 않았는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사례를 들었을 때, 그의 인터뷰 내용을 읽었을 때 딱 내 마음과 같다며 무릎을 쳤다. 누군가에게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나는 나 자신의 삶, 삶의 시간표, 생활의 흐름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이 정해진 틀을 바꾸고 싶지 않다. 성격적 특징 - 내향적이고 비사교적이며 인간관계에 흥미가 적은 - 도 있겠지만 이런 이유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나 극적인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능한한 이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방해할 만한 무언가를 사전에 차단한다.
유교적 가족주의가 대세인 한국에서 이런 생각은 위험한 사상이라고, '틀린' 삶이라고 간주되기 쉽다. 평범함을 중요시하는 문화, 평균적인 삶에 대한 열망이 큰 분위기도 한 몫 한다. 졸업 > 취업 > 결혼 이라는 일종의 공식을 따르지 않으면 뭔가 뒤쳐진다는 느낌 뿐만아니라 해당 집단에 소속되지 않음으로써 느껴야 하는 소외감 또한 짊어져야 한다. 이런 여러 가지 요인이 공식을 따르는 관성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물론 스스로 주체적인 선택에 의해 삶을 살아간다면 기존의 삶을 사는 것도 좋다).
하지만 조울증을 겪으면서 이미 일반적이지 않은, 비평균적이며 비평범한 삶을 사는 내게 비혼이나 딩크족 선언은 이상하거나 꺼림직한 말이 아니다. 더군다나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한국에서 사는 내게는 법이 정한 테두리와 인권 안에서 자유롭게 살 권리가,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를 추구할 자유가 있다.
우리는 대게 자신과 다르면, 그리고 다수와 다르면 '틀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는 '틀림'보다 '다름'의 문제가 더 많음을, 그리고 '맞다'와 '틀리다'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문제가 그리 많음을 느낀다. 무엇인가 틀리다고 느껴진다면 혹시 그것이 '다름'의 문제는 아닌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틀리다고 내린 결정이 이성이나 합리, 인권 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위치에 따른 선택은 아닌지, 혹은 단지 감정적인 결정에 의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