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삶에 관하여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많은 사람이 남았지만,
우리에게 비록
땅과 하늘을 움직이던 예전의 강인함은 이제 없지만
그것이 바로 지금의 우리지만,
시간과 운명에 의해 약해졌으나, 강인한 의지의
영원한 용사의 침착함으로
노력하고, 구하며, 찾고, 포기하지 않으리라.
- 알프레드 테니슨, 율리시스
나는 지금 영화 <록키>의 주제곡인 "Gonna fly now"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금관 악기 - 내 귀에는 트럼펫으로 들리는 - 로 시작하는 이 곡은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깊은 향수를 주는 노래다. 록키 시리즈의 마지막인 <록키 발보아>에서도 이 곡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어쩌면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최후의 시합을 앞두고 훈련하는 부분에서 이 노래가 흘러 나온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록키가 달리고 샌드백을 치고 무수히 많은 땀을 흘리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제는 록키 계단으로 유명해진 필라델피아 박물관 계단에서 불끈 쥔 주먹을 치켜든 록키의 뒷모습이 떠오를 무렵 노래는 끝난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중 한 사람인 실베스터 스탤론. 록키 시리즈로 잘 알려진 그는 <람보> 시리즈와 <익스펜더블> 시리즈 등에 출연하였고, 그로 인해 액션 배우로도 유명하다. 나는 이 두 시리즈를 통해 이 배우를 알게 되었고 그가 단순히 액션에만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록키를 보기 전까지는.
실베스터 스탤론이 출연한 영화들을 유심히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스탤론은 영화 배우로서 그리 좋지 못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아니, 배우가 될 수 없는 조건을 타고 났다고 봐야 한다. 분만 과정 - 의사가 겸자로 분만을 시도하는 겸자 분만을 시도하다 얼굴 신경 일부를 건드리는 의료 사고를 일으켰다 - 에서 얻은 언어 장애와 안면신경마비로 인해 표정 연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대사를 분명하게 발음할 수 없다는, 배우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때문에 스탤론은 배우의 꿈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장애로 인해 따돌림을 당하고 문제아로 낙인 찍힌 그에게 이제 그 장애는 배우의 꿈마저 가로막고 있었다.
하지만 스탤론은 기껏해야 단역이나 조연배우를 맡으면서도, 그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려 나이트클럽 문지기, 경비원, 피자 배달부, 식당 종업원 등의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이런 말을 자주 들었을 것이다.
'안면신경마비가 있으면서 배우를 하겠다고?'
'발음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배우가 되겠어?'
시각 장애인으로 태어나 세계적인 가수가 된 스티비 원더. 어릴 때 그에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너는 흑인에다 시각 장애인이니 평생 주물 공장에서 주전자나 만들다 죽을 거라고. 하지만 그는 지금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 되었고, 이는 스탤론 또한 마찬가지였다.
스탤론은 배우로서의 전망이 어둡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독학으로 배워 쓰기 시작한 시나리오 중에는 무하마드 알리와 척 웨프너의 경기를 보고 영감을 얻은 작품이 있었다. 이 작품이 바로 우리가 아는 록키 시리즈의 첫 시작이다.
실제로 이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많은 제작자들이 이 시나리오를 마음에 들어했고, 스탤론에게 팔라고 했으나 그는 자신을 주연배우와 감독으로 삼지 않으면 절대로 팔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흥행을 위해 유명 배우를 쓰고자 했던 그들은 이런 스탤론의 요구를 거절했고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스탤론이 주연배우만 하기로 협의 하면서 간신히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험난했던 그의 인생처럼 <록키>라는 영화의 제작 과정 또한 순탄하지 않았던 것이다.
스탤론은 왜 이 영화를 자신이 직접 찍고 싶어 했을까? <록키>의 시나리오를 썼을 당시 그는 무일푼이나 다름없었다. 심각한 경제적인 위기에 처해 있었고 이 시나리오를 팔기만 하면 꽤 큰 돈을 받을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돈을 마다하고 자신의 작품을 지켜냈다. 이런 그의 행동은 스탤론의 인생사와 <록키>의 내용을 살펴봐야 이해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록키>라는 영화는 "권투영화"다. 하지만 '권투'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할 뿐,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전부는 아니다. 록키, 그리고 스탤론.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 없는 록키를 통해 스탤론은 권투를 통해서 이런 메시지를 전달한다. 어떤 악조건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가자고. 그리고 설령 패배해도 괜찮다고. 내가 15회까지 견딘다면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록키는 스탤론 자신이자 자신의 인생을 녹여낸 영화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장애로 인해 숱한 고통을 겪어야 했고 심지어 꿈조차 멀어져만 가는 상황에 처 했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무명 복서가 챔피언과 대등하게 싸우고 15회까지 견뎌내어 자신을 증명한 것처럼 이런 악조건에서도 자신은 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노라고 말하고 있다. 영화 자체가 그의 삶이었기에, 바로 자기 자신이었기에 그는 이 영화를 끝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영화 <록키>의 기록적인 흥행 - 1976년 최고 흥행작이자 북미에서만 제작비의 100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 으로 스탤론은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그러면서 차례차례 록키 시리즈를 세상에 내놓지만 이전보다 박해진 평가가 뛰따랐다. 또한 몇 몇 작품의 흥행을 제외하곤 손을 댄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자 배우로서, 그리고 제작자로서의 스탤론의 입지는 흔들리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록키는 포기하지 않았고 쓰러지지 않았다. 자신을 배우로 인정받게 해준 <록키>의 마지막 이야기, <록키 발보아>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인생을 담아, 그 뜨거움을 담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동을 안겨 주었다.
<록키 발보아>는 챔피언이었던 과거를 뒤로하고 성공한 사업가가 된 록키가 등장한다. 로키의 나날은 겉으로 보기엔 괜찮아 보인다. '한 때' 영광의 시기를 보낸 챔피언은 제법 괜찮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비교적 안락한 노후를 보내는 듯 하다.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고 이 정도면 꽤나 성공한 인생이 아닌가 할만큼 좋아 보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 안에 있는 깊은 갈증을 느낀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복싱"에 대한 열망이었다. 그는 다시금 링 위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갈망한다. 노쇠한 그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무명 복서였던 그 때처럼 다시 달리고 샌드백을 치고 몸을 단련한다. 그리고 그는 젊은 챔피언을 맞이해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끝내 판정패를 당하고 만다. 하지만 링을 떠나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퇴장하는 록키의 입가에는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고 "예전의 강인함"은 없어진지 오래지만 "강인한 의지"는 여전했던 노장의 이야기는 마침표를 찍는다.
록키의 마지막이자 어쩌면 스탤론의 인생 회고라고 부를 수 있는 <록키 발보아>. 감동 포인트가 많아서 어느 한 부분을 최고의 장면이라 말하긴 어렵지만 그중에서 영화의 중반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록키가 일침(?)을 가하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나이들어서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내 체면은 생각하지 않느냐고, 언제까지 내가 당신의 그림자 속에 있어야 하냐고 화를 내는 아들에게 록키는 담담히 말한다. 아들의 탄생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동시에 변해버린 아들의 모습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 그리고 스탤론의 삶을 담은 대사를 던진다.
하지만 얼마나 세게 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얼마나 심하게 맞고도 버틸 수 있는지, 그러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가 중요한거야. 얼마만큼 이겨내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야. 승리란건 그렇게 얻는거다!
(But it ain't about how hard you hit. It's about how hard you can get hit. and keep moving forward. How much you can take and keep moving forward. That's how winning is done!)
스탤론, 그리고 록키의 삶은 강한 펀치 한 번으로 상대를 때려 눕히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 많은 오디션에서 탈락하고 거절당하며 놀림을 당했던 스탤론과 무명 복서였던 록키는 세상이 그들에게 가하는 무수한 펀치를 맞으며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앞으로 나갔다. 이들은 타인의 시선과 조롱이 두려워서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쏟아지는 펀치를 그대로 맞으면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전진할 뿐. 현실의 조건을 탓하지 않고, 또 자신의 실패를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 갔다. 그리고 끝내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증명해냈다.
성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록키의 "무모한"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어쨌든 "판정패"를 당했으니까. 하지만 예전 글에서 인생에서 성공을 정의하는 것이 그리 단순하지 않음을 말했듯 록키 스스로에게 이 패배는 단순히 성공과 실패로 판가름 할 수 있는 결과가 아니다. 그에게 이 시합은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난 보잘 것 없는 인간이야. 하지만 상관없어. 시합에서 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아폴로가 내 머리를 박살내도 별로 상관이 없어. 15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아무도 끝까지 가진 못했거든. 내가 그때까지 버티면,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 있으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거야."
때로 우리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내는" 느낌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조울증을 겪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느낌이 익숙하다. 뚜렷하게 나아지지 않는 병의 증세는 나를 지치게 하고 그간의 노력들이 허무하게만 느껴지게 만든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록키와 스탤론을 떠올리며 '버티는 삶'에 관해 생각하곤 한다. 조울증의 무게에 질식하지 않고 버텨내는 것.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뚜렷한 성과나 어떤 결과를 내놓는 것보다 하루를 버티는 것이 성공이니까. 그리고 나는 희망한다. 내가 끝까지 버티고 버텨서 원하는 지점에 다다를 수 있기를. 동시에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그 여정을 지속했던 것에 만족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