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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ubris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

비의 심술

by Argo

비가 오는 날에 듣는 음악이 몇 개 있다. 정확히 말하면 몇 개의 곡과 몇 개의 목소리다. Travis의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나 Damien Rice의 <The Blower's Daughter>, 김예림의 <Rain>을 비롯한 곡들이 생각날 때가 있고 Billie Eilish, Amy Winehouse, 김광석, Sia 등의 목소리가 빗방울 사이에서 나를 부르기도 한다.


밥을 먹고 침대에 누워 포만감을 즐기다가 집을 나섰다. 밥 먹을 때 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니 당연히 우산을 챙겼다. 비가 조금 오길래 이 정도면 우산 쓰고 담배 필 수 있겠다며 얼른 우산을 펴고 Billie Eilish의 <when the party's over>를 들으며 걸었다. 얼마 안가 내가 주로 담배 피는 장소에 도착했다. 비가 많이 안 오길래 우산을 접을까 고민하면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순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꼭 담배 피러 나가려고 할 때마다 그랬다. 집을 나설 때 혹은 이제 막 담배에 불을 붙였을 때 귀신 같이 쏟아지는 비. 그럴 때 나는 Travis의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라는 노래를 떠올린다. 비야, 왜 내가 담배피려고 하면 더 내리는 거니?


보통 이런 상황에서 Travis의 그 노래를 틀지만, 오늘은 그냥 Billie Eilish의 목소리만 듣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조금 우울해서 그랬을까. 비소리와 함께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마음 속에 착 달라 붙었다가 떨어지지 않는다. 간간이 해석이 되어 들리는 가사들도 우울한 기분을 톡톡 건드린다.


우울에 대처하는 자세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리기 위해 즐거움을 찾는다. 신나는 노래를 듣거나 흥겨운 분위기를 만든다. 반대로 오히려 우울한 기분을 더욱 느끼려는 사람도 있다. 슬픈 노래나 영화를 보고 그 슬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내 경우는 대체로 우울함을 더 느끼려는 쪽이다. 때때로 우울함에서 벗어나려고 하기도 하지만 대게 그 우울함 속에서 잠겨 있다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다. 바닥을 찍고 다시 올라온다고 할까. 가벼운 정도의 우울함은 그냥 거기에 몸을 맡긴다. 조울증 덕분에 우울함의 밑바닥을 여러 번 경험했고 그래서 우울이 이제는 친구처럼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비오는 날 생각나는 노래가 있어서,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늘상 음악을 달고 살지만 시간이 지나도 음악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감사의 마음은 작아지지 않는다. 음악이 없었다면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다. 음악 만세, Billie Eilish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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