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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ubris

30분

변화는 자연의 본성이자 인간의 운명

by Argo

AM 2:45. 눈이 떠졌다. 어제 낮잠(혹은 저녁잠)을 안 잤기 때문인지 졸음이 밀려왔고 대략 세 시간 전, 며칠 전부터 조금 변한 일상의 패턴에 대해 고민하며 잠들었다. 지금 잠든다 해도 3~4시간 뒤에 잠이 깰거라는, 예감 아닌 예감을 하면서.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침대에 누워 들려오는 클래식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냥 더 잘까? 패턴을 조금 바꿔보는 거야. 어제 새벽에 산책하니까 좋았잖아. 새벽에 일어나는 걸로 바꿔보는 건 어때?'

'아니면 요즘처럼 지금 일어나서 밥먹고 할 일 하다가 아침에 자든가. 7시나 8시에 자서 오후 1시쯤 일어나는 거지. 어제도 그랬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어.'


나는 고민을 하다 밥 달라는 위장의 목소리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잠깐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어제 요리했던 순두부 찌게에 식사를 했다. 그리고 소화도 시킬 겸 산책하러 나갔다.


밖은 제법 추웠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새들도 잠을 자는 건지 지저귐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약간의 추위를 느끼며 늘 그랬듯 담배 연기와 함께 서늘한 새벽 공기를 마셨다.


AM 4:44분 실제보다 조금 더 밝다.


담배를 연달아 피고 조금 더 맑아진 정신으로 걷기 시작했다. 해가 아직 뜨지 않았지만 하늘은 점점 밝아지는 듯 했다. 새벽이라 계속 깜박이는 신호등을 보며 김광균의 <와사등>을 떠올렸다.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늘 가던 공원으로 가는 길, 하늘을 보니 어렴풋이 해의 그림자가 보였다. 아까 담배를 피던 장소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아직 해가 뜨려면 멀었겠지, 집에 들어갈 때까지 저 상태로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공원에 도착해보니 왠지 다른 길을 걷고 싶었다. 그래서 최근에 개척한(?) 산책 코스로 발길을 돌렸다. 귓가에는 내가 좋아하는 그룹 Queen의 <Play the game>이 끊임 없이 재생되었고 나는 틈나는 대로 따라 불렀다.

"When your feeling down and your resistance is low

Light another cigarette and let yourself go

This is your life, don't play hard to get..."


프레디 머큐리가 연인과 헤어진 후 썼다는 <Play the game>. 그의 삶과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내가 태어난 날에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했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그에게 특별한 애착을 느끼게 한다. 그에게 삶은, 사랑은 무슨 의미였을까.




한참을 걷다 보니 아파트 담장에 만개한 장미들이 그 자태 뿐만 아니라 향기 또한 한껏 자랑하고 있었다.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진한 장미향이 콧속으로 가득 들어왔다. 이것이 내가 새벽 산책을 사랑하는 이유다. 밤을 열렬히 사랑한다던 모파상의 어느 소설 속 문장처럼, 나는 어두운 시간에 깊이 빠져 있다.


슬슬 집을 향해 발걸음을 돌리면서 영화 록키의 주제곡인 <Gonna fly now>로 음악을 바꿨다. 요즘 글 쓸때 반복해서 듣는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영화의 장면이 떠오른다. <록키 발보아>에서 다시 링 위에 오르기 위해 운동을 하는 록키의 모습 말이다. 달리고 또 달리다 필라델피아 박물관 앞에서 손을 번쩍 든 록키의 뒷모습이 생각날 무렵 집 근처에 도착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 보니...

AM 5:14 터너의 그림이 생각나는 하늘

30분이 지났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하늘이 내 눈을 가득 채웠다. 언젠가 미술관에서 봤던 터너의 그림처럼 하늘의 색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마도 터너는 이런 미묘한 빛의 변화, 빛과 공기가 만나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을 담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마음 속에서 어떠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진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하늘을 감상하며 은은하게 퍼지는 찔레꽃 향기 또한 마음에 담았다. 짧은 시간 사이에 변화하는 하늘과 며칠 전부터 피기 시작한 찔레꽃을 보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떠올렸다.

변화를 두려워 하는 사람이 있는가?
변화 없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우주의 본성 중에 변화보다 더 사랑스럽고
친근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무가 변하지 않는다면 너는 더운물에 목욕할 수 있는가?
음식물이 변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가?
그 밖에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변화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너 자신의 변화도 그와 똑같은 것으로 보편적 본성에게는
똑같이 필요하다는 것을 너는 보지 못하는가?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7장 18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어떤 심리학 이론에서는 인간에게 고유의 성격이나 기질이 있는데 그것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지금 발생하는 문제는 자신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 때 이 말에 동의했고 그래서 원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탐구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들 어떠하며 이런들 어떠하리"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여러 심리검사와 각종 이론을 연구하면서 깨달은 건 인간은 결코 본래의 자신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희미한 구분선만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 그 누구도 자신이 어떠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고 또 그것에 맞춰 현재를 살 수 없다. 다만 그 희미한 선을 따라 달라져 온 자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고 현재에 맞게 자신을 재창조 할 수 있을 뿐. 물론 타고난 기질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틀의 역할을 하지만 그 틀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다.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으니 어제 읽다가 덮어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읽었던 부분을 떠올리다가 인상 깊었던 부분이 생각났다.

"그런 일이 당신에게 어느 날 조만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우선은 그런 일이 일어나는 날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살아야 하고, 그런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보기 위해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살아남아야 할 책임감이 당신을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겁니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자살에 실패한 우울증 환자 12,000명을 치료했던 프랭클은 그들의 자살시도가 미수에 그친 후에 하는 말에 대해 언급한다. 자살이 실패한 후 그들은 기뻐했고 후에 회고하길, "(자살을 시도한)당시에도 자신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고, 의문에 대한 해답이 있었으며, 삶에 의미가 있었다"고. 내가 자살 시도 직전에 마음을 바꿨던 것은 미래의 불확실함, 바꿔말하면 변화가능성 때문이었다. 조울증으로 인해 절망하던 나는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거고,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을 봤을 때 더 이상 희망은 없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다는 점은 역설적이게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나쁘게 변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좋게 변할 수도 있다. D-day날, 밤새 한 잠도 못자고 고민을 거듭하다 마음을 다잡고 지긋지긋한 삶을 끝내기로 결심했을 때 창가에 비치는 햇빛을 보게 되었다. 어두웠던 새벽이 끝나고 아침이 찾아왔다. 그 순간에 나는 마음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직 쓰지 못한 글들이 생각났고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 멈춘다면 그토록 사랑했던 글을 쓰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삶의 횡포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패배한 채로 끝내도 좋겠냐는 물음이 절망 속에서 솟아나왔다. 결국 나는 다시 살기로 선택했다.


미래는 알 수 없고 현재는 끊임 없이 변한다. 불확실함, 그리고 변화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희망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노력한다. 프랭클의 말처럼 "인간이 삶의 부정적인 요소를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창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 하는 것"이므로.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미래가 반드시 내 기대대로 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포기한다면 일말의 가능성조차 사라지니까. 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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