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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ubris

용감하거나 혹은 비겁하거나

과연 나는 어디에 있을까

by Argo

작가는 겁쟁이거나 용감한 사람이다. 아니면 겁쟁이면서 동시에 용감한 사람이거나.


글을 쓴다는 것, 그럼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진실을 거론하는 것. '쓰기'라는 단순하고 수천년 동안 인류가 지속해 온 작업에는 단순하면서도 단순하지 않은 원리가 담겨 있다. '진실하게 쓸 것'.


작가를 겁쟁이로 표현할 때, 그것은 몽상가로서의 모습을 말한다.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등장 인물을 통해 무언가 말하려는 소설가부터 자신의 체험을 말하기에 솔직해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언어라는, 정제되고 편집 가능한 수단을 통해 표현하는 에세이 작가까지. 모든 작가는 독자와 심리적 거리, 그리고 물리적 거리를 두고 대면한다. 일종의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행동하는 셈이다. 특히 진실되지 않은 글을 쓸 때 작가는 더더욱 겁쟁이가 된다.


반면에 용감한 사람으로 작가를 묘사한다면 그것은 고도의 정직함, 진지함, 솔직함, 진실함이 그에게 또 그의 글에 있다는 것이다. 내게 글을 가르쳐 주셨던 분이 첨삭을 해주시면서 그 글의 말미에 이런 말을 덧붙이셨다.

글에는 솔직함과 진지함, 진실이 있어야 한단다.


나는 글을 쓸 때면 이 글이 과연 솔직한 글인지, 진지한 마음으로 진실을 담아냈는지 고민한다. 단지 찬사와 인정을 받기 위해 나를 포장하고 가면을 쓴 것은 아닌지,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고 설령 상처를 준다 해도 진실을 말했는지, 혹은 그럴 용기가 있는지 물어본다. 작가가 자신의 모자람이나 수치를 드러내고, 비난과 비판, 모욕을 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 글을 썼다면 그는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이다. 자신의 어두운 면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 타인의 시선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맡은 바 소임 - 글을 쓰는 것 - 을 다하는 사람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용감한 사람일테니까.


테리 탬페스트 윌리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발견하기 위해 글을 쓴다.
폭로하기 위해 글을 쓴다.
나의 혼령들을 만나기 위해 글을 쓴다......
글을 구성하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에,
사랑처럼 위험천만한 일이기 때문에 나는 글을 쓴다.

작가는 늘 이런 위험천만한 일을 하며 그 결과를 세상에 내놓는다. 글을 쓰는 건 단순한 작업에 불과하지만 그 내용과 결과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렇다면 작가들은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자신의 느낌을, 생각을, 내면을 내보이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글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글쓰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글을 쓸 필요가 없다.
- 스티븐 손드하임


때때로 나는 글을 '써야 한다'라는 생각보다 '쓰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마치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목표를 맞추기 위해 날아갈 수 밖에 없는 것처럼,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글을 사랑하지만, 글쓰는 행위가 내 삶의 이유 중 하나이긴 하지만 매일 즐거운 것은 아니다. 때로는 두렵고 불안하며 겁에 질리기도 한다. 평가에 대한 걱정 뿐만 아니라 나 혹은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이 말을 꼭 떠올린다.

글을 계속 쓰렴. 네 자신이 정리되고
네 삶이 나아가야 할 바를 밝혀줄 거야.
- 첨삭글 중에서


비겁함과 용감함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질문한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지. 그리고 또 묻는다. 앞으로 어디에 몸담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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