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Hubris

조언의 정석

나쓰메 소세키가 말하는 조언

by Argo

어제는 친구와 통화하다 잠이 들었다. 약간 졸려서 침대에 누워 통화를 하다 잠에 취해 헛소리 - 살짝 꿈을 꾸면서 꿈 내용이 섞인 말을 했다 - 를 하다 얼른 자라는 친구의 말에 그대로 잠이 든 시각은 9시 반. 보통 때라면 일어날 시간에 잠든 것이기에 나한테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다 되어 갔다. 원체 불규칙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드문 일이라 신기했다. 더 잘까 하는 고민을 잠깐하다 일어나 샤워를 하고 차가운 메론을 조금 먹었다. 엄마와 <그레이 아나토미>와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하다 산책하러 나갔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재밌게 본 엄마는 비슷한 드라마를 추천해 달라고 했고 보지는 않았지만 괜찮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그레이 아나토미>를 알려줬다. 다행이 넷플릭스에 있길래 며칠째 밤을 새워가며 보고 있는 엄마. 한국 드라마와 미국 드라마의 차이 - 한국 드라마는 법정물이어도 법정에서 연애하고 의학물이어도 병원에서 연애하지만 미국 드라마는 해당 영역에 충실하다는 것 - 를 말해줬었는데 실제로 보고나니 정말 그렇다며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시시해졌다고 한다.




어슴프레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얼마간 걷다가 집에 돌아왔다. 책상에는 엊그제부터 다시 한 번 필사하겠다고 펼쳐 두었던 나쓰메 소세키의 글이 적힌 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몇 번째인지 모를 필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도 많이 필사해서인지 이제는 다음 내용을 대략적으로 기억하는 이 글을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면서 죽음에 대한 소세키의 생각과 조언을 하는 그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소설과 거기에 나타난 생각들,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글 또한 마음에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오늘은 그것보다 조언하는 그의 태도가 더 깊이 다가왔다.




조언이란 기본적으로 내 입장에서 타인을 바라보고 타인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자신의 생각이 바탕이 된다. 따라서 조언을 하는 사람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자신의 생각을 그 대상에게 전달하게 되고 여기에는 다분히 주관적인 요소가 담겨있다.


그런 점에서 조언은 양날의 검이다. 조언자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자신의 관점과 생각을 지나치게 주장하여 대상자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고 잘못 인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언자는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 이것이 과연 대상자에게 합당한 말일지, 그 사람의 상황에 맞는 것인지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자신은 "죽음이 삶보다 고귀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자신은 죽음이 좋다고 여기면서도 고통에 빠져 자신을 찾아온 사람에게, "죽음 이상으로 괴롭히는 처절한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 선듯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리 평범해도 사는 쪽이 죽는 쪽보다는 내가 본 그녀에게 적당했기 때문"이라는 판단이 들어서다.


나쓰메 소세키의 글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의 글에는 인간에 대한 불신, 염세적인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읽고 나서 마음이 따듯해진다기 보다는 시린듯한 아픔을 느끼게 하는 글들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소설도 그렇고. 하지만 <유리문 안에서>라는 산문집, 그가 죽기 전 신문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둔 이 책을 읽다보면 다른 글에서 나타난 것과는 다르게 따듯함을 느끼게 된다. 겉은 딱딱하고 차갑지만 그 안에는 일말의 온기가 있는 글이라고 해야할까. 자기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말하면서도 타인을 생각하는 사람. 인간을 향해 냉소적인 시선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과 마주하는 그를 보면 알 수 없는 감동을 느낀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다. 너무 잘 알려진 말인데 그만큼 힘든 일이기도 하다. 자신의 입장이 아닌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이것이 잘 이루어진다면 세상사에서 벌어지는 많은 갈등들은 대부분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힘들다해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또 다른 인류의 한 사람"과 마주하는 방식이니까.



+엄마는 요즘 이십대처럼 살고 있다. 모범생으로만 살았던 엄마는 이십대에 마땅히 즐길 법한 일들과 거리가 멀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밤새워 놀아본 적도 없고 이리저리 놀러다닌 적도 없었다고 한다. 그저 열심히 공부했을 뿐. 그러다 요즘 밤낮으로 넷플릭스를 보는 재미에 빠져 있다.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하던 엄마가 이런 모습을 보이니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변화도 괜찮은 듯 하다. 무엇보다 재밌어하는 엄마를 보는 나도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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