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Hubris

내가 평생 가지지 않을 두 가지 물건

아쉽지만 이번 생에서는...

by Argo

얼마 전 엄마의 전동 스쿠터를 주차해 볼 기회가 있었다. 목발 보행이 힘들어져서 스쿠터를 타게 된 엄마. 사용한 지 5년은 넘었는데도 내가 운전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키를 꽂고 양쪽 손잡이에 위치해 있는 레버를 당겨 전진과 후진을 해 주차에 성공했다. 주차하는 거라 제일 낮은 속도로 낮춰 놓고 운전했지만 미약한 속도에서 오는 속도감이 야릇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마치 내 안에 숨겨놓은 질주 본능이 꿈틀거리는 듯 했다.




나는 운전 면허가 없다. 내 인생 계획대로라면 스물 넷이나 스물 다섯에 딸 예정이었다. 하지만 스물 넷에서 스물 다섯으로 넘어갈 무렵 인생 최대의 난적, 조울증을 만나게 됐고 그로 인해 인생 계획은 안드로메다로 사라졌다. 당연히 운전 면허 또한 실종되었고.


조울증 초기에는 운전 면허고 뭐고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 때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 시기였으니까. 그러다 5년째에 접어든 지금, 증상도 상황도 안정적이어서 이따금 운전 면허가 생각이 난다.


내가 알기로는 정신질환자의 경우 운전 면허 취득시 전문의의 소견서가 필요하다. 아마 내가 운전 면허 취득을 위해 소견서를 부탁드리면 담당 의사 선생님은 써 주실 것이다. 꽤 오랫동안 진료를 받아왔고 꾸준히 치료와 관리를 해왔으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나는 운전 면허를 따지 않기로 한 결심으로 되돌아 간다. 나는 왜 운전 면허를 따지 않는 걸까?




차와 관련된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건 둘째 치더라도 내가 운전 면허를 따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조울증 때문이다. 조울증과 관련된 여러 서적, 특히 외국에서 나온 책들을 보면 조울증 환자의 조증 재발시 취해야 할 조치 중에 빼 놓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차 키"와 "신용카드"를 압수하거나 멀리 치우는 것이다.


대게 조울증을 단순히 '감정 기복'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조울증, 다른 말로 양극성 장애라고 하는 이름에는 이런 뉘앙스가 적잖이 있는 게 사실이다. 조울증은 조증과 울증이 있다는 의미고 양극성 장애는 각각의 극, 양극의 사이를 왔다갔다한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그저 감정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조울증을 설명하는데 부족하다. 감정의 영역 말고도, 그리고 그 감정에서 파생되는 여러 증상들은 생각보다 더 크고 다양하며 파괴력이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차 키와 신용카드를 멀리해야 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울증 환자가 조증 상태가 되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증상이 있는데 그 중에는 과소비와 충동성의 증가가 있다. 평소에는 사치품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수십, 수백만원의 명품을 구매한다고 신용카드를 사용하거나 사업을 한다며 빚을 지는 경우가 있다. 또한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과속이나 이와 비슷하게 흥분을 느낄 수 있는 일들, 폭음, 무분별한 성관계 또한 포함된다. 외국 서적, 특히 차가 필수적인 미국에서 나온 책들은 한결 같이 이런 증상들로 인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차 키와 신용카드를 조증 시기의 환자에게서 분리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엄마의 스쿠터를 운전하면서 느꼈던 속도감은 분명 짜릿했다. 속도를 최대로 해서 달리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조증일 때 차 키를 압수해야 하는 이유도 명백하게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상태라면 별다른 문제 없이 운전을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울증이란 질환이 내가 아무리 관리를 잘하고 치료를 잘 받는다 해서 재발을 하지 않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재발할 지 모른다. 내가 비록 재발 징후를 예민하게 알아차려서 비교적 재발 위험이 낮고 예후 또한 좋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해서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미국에 산다면 모를까 대중교통으로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는 - 물론 시간이 좀 걸리고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 한국에서 살기 때문에 차 키가 없다해서 큰 문제는 없다. 그저 서른인데 - 그리고 남자인데 - 운전 면허가 없다는 것을 신기해 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조금 불편할 뿐.


신용카드도 그렇다. 지금은 백수 상태라 신용카드를 만들 수도 없지만 나중에 수입이 생겨도 신용카드는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신용카드가 있으면 여러 모로 편리하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의 '나'는 미래의 내가 감당해야 할 고통을 예상하지 못할 게 뻔하다. 조증의 열기에 사로잡혀 "이건 사야해!"라고 외치며 열심히 신용카드를 긁을 테니까.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의 '나'한테 돌아갈 것이고.




누군가는 이런 내 생각이 너무 예민하다거나 소심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그리고 경험하고 있는 조울증의 세계는 극도의 불안정성이 지배하는 곳이다. 나는 내가 조울증에 걸릴 거라는 것을 단 한번도 예상해 본 적도 없었고 조증과 우울증 시기에 겪었던 증상들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괜찮다고 해서 내일도 괜찮을 거란 보장이 없는 게 조울증이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경험했던 조증이 너무나 끔찍했고 그 때의 기억과 행동의 결과로 지금까지 힘들어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발을 막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여러 부작용을 겪으면서도 약물치료를 단 한번도 중단한 적이 없고 상담을 비롯해 다양한 방법으로 관리를 지속하고 있다.


모든 조울증 환자가 나처럼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어쩌면 내가 지나치게 과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일 수도 있다. 각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고 조울증 환자마다 경험하는 증상이 다르므로 무엇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각자가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뿐이다. 나는 차 키와 신용카드가 주는 편리함과 유익을 희생해서라도 재발을 막고 싶기에 이런 선택을 한 것이다. 지금의 내 선택이 최선이길 바라며 조울증을 겪는 다른 사람들도 각자에게 최선의 선택을 했으면, 그리고 그 선택으로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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